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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가 되는 법

by 진아름

한낮의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습도가 임계치를 지나면 무더위에 지친 몸을 내어주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웬만하면 오전에 시장에 가려고 서둘러 나섰다.

자외선 차단율 99%라는 광고에 마음을 뺏겨 구매한 선캡을 쓰고

통기성이 우수하다는 광고에 홀연히 구매한 마스크도 챙겼다.


쌩쌩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맞은편에서 머리카락이 하얗고 피부가 뽀얀 할머니께서 잔잔한 꽃이 그려진 고운 양산을 쓰고 마주 걸어온다.


좁은 길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자전거에서 내려 손으로 끌며 가던 길을 걸어간다.

어르신 모습에서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겹쳐 보인다.






결혼 전

남편의 집에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였다.


남편의 할머니께서는 연세도 많으시고 거동이 편치 않으셔서 앞마당에 나가는 것 정도를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외출의 전부라고 생각하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주택에서 1층 마당까지 내려오는 것만으로 이미 진이 다 빠지는 것이었다.

그런 어르신께 귀여운 막내손자가

결혼할 색시감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은 너무나 기쁘고도 반가운 까닭에

내가 도착했을 때 할머니께서는 1층에 내려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를 보자마자 손을 덥석 잡으시더니

"복덩이다. 복덩이야. 우리 집에 복덩이가 왔다" 하시며 환대해 주셨다.

덕분에 긴장 속에서도 감사한 마음이 들어 힘이 났다.


할머니께는 3층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계단을 오르시면서도 몇 번 작은 소리

"아주 복덩이가 들어왔어.."

라고 혼잣말을 하셨다.


당시 할머니께 내 첫인상을 여쭙지 않았지만,

나에게 할머니의 첫인상은 따뜻함이었다.

(저는 합격드릴게여 yeah~)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할머니께서는 다정하게 나를 보며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주 복덩이야. 복덩이."


나는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앙~"


할머니깨서는 아주 흐뭇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말씀을 덧붙이셨다.

"아이고.. 그래, 무슨 복을 타고나서 우리 손주를 만났누우~~ 아주 복덩이야 복덩이"


푸하하하하하.

순간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약 0.5초간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정지상태가 되었고 이내 곧 한바탕 함께 웃었다.


양희은 가수님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랫말에

>>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라는 가사가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에 똑같은 교과서와 선생님께 똑같은 학습 내용을 전달받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언제나 따로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의 학습 패턴을 살펴보면,


일단 수업 내용을 잘 듣는다.

앞서 배운 내용과의 흐름을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잘 정리하여 이해한다.

이해를 바탕으로 주요한 포인트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전문제풀이에 적용한다. 응용력이 있다면 고득점이 가능하다.

때때로 오답을 만나게 되면,

오답의 원인을 찾아, 재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 언제나 공부 잘하는 아이는 소수다.


나는 이러한 학습의 과정이 사랑하는 방법과 꽤 닮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관심 있게 살피고,

상대방이 살아온 히스토리를 생각해 보면 상대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누구에게나 행복버튼과 발작버튼은 있는 법, 주요한 몇 가지는 세심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해나가면 된다. 행복버튼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다양한 곳에 적용하면 더 좋다.

때때로 감정적으로 부딪힐 때는 서로 솔직하게 대화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원래 똑똑한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반복적으로 노력하면 잘하게 되는 것처럼,

모르는 문제 앞에서 아는 척 허세부리면 다음에 또 틀리는 것처럼.

공부를 대하는 바른 태도가 체화될수록 점점 수월해지고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도 정성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다만 학업이나 공부는 나 혼자의 힘으로도 이끌고 갈 수 있는데 반해

사랑은 상대방과 함께 하는 것이라 노력의 양이 '관계의 수의 제곱' 정도라고 보면 되려나!

공부는 어렵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콤하다.

사랑은 더더더더 어렵다, 그러나 그 열매는 과연 삶의 최상위 가치와의 만남이 아닐까.






삼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생각_24)


아직 사랑할 기회가 남아있는 자들이여.

당신의 축복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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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