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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록 내 삶이 좋다.

by 진아름

"아기 엄마야? 학생이야?"

"아유~~ 저 애가 둘이에요~~"


일흔을 훌쩍 넘었을 것처럼 보이는 어르신의 말씀에 기분이 좋아진다.

쪽 지어 뒤로 맨머리가 단정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할머니의 눈빛과 음성이 깨끗하다.

참 보기 좋은 모양새를 지니셨다.


우리는 지난 한 달 정도 도서관에서 마주쳤다.

처음에는 공간 공유자였을 뿐이었고, 마주치는 것이 계속되자 서로의 시야에 도장처럼 찍히게 되었다.

최근 며칠 동안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오늘은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기 엄마는 무슨 공부해?"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에게 시시콜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편치 않은 일이다. 이럴 때는 살며시 화제를 상대방에게 돌려본다.


"어르신께서도 항상 책을 많이 보시더라고요."


"응, 나는 이것저것 책 보는 걸 좋아해. 여기 도서관에 신문도 많잖아. 애기 엄마 보니 내 젊었을 때 같네"


"ㅎㅎ"


"집에서 살림한다고 시간을 흥청망청 쓰면 나이 먹어서 아주 후회해. 아기엄마는 열심히 사는 사람 같구먼. 아이들도 똑소리 나게 잘 키우겠어"


"어르신 저는요, 딱히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배우고 공부하는 건 좋아해요. 뭔가 결실을 보여야 할 것 같은 부담감도 있어요. 그리고.. 시간을 이렇게 쓰다 보니 아줌마들과의 친목에 약한 편이에요 "


"자기가 잘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아. 그런 사람들은 가끔 우울하고 작은 억압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지. 불안하거든. 그래도 아기엄마처럼 무언가를 배우면서 열심히 살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될 거야. 그것 자체가 끼리끼리 모이는 친목의 재료야. 아무 걱정 말고 계속 그렇게 살아."


80년 가까이 살며 전쟁도, 독재도, 올림픽도, IMF도 다 보았다는 어르신께서는

몇 년 전 어플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여러 장을 붙여서 동영상을 만들고 자막과 배경음악을 넣는 것을 배우셨지만 지금은 다 까먹었고,

최근에는 chat GPT로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계신다.

살면 살아진다며 눈물을 광광 뽑아내게 만들던 드라마의 대사처럼, 그저 하루하루를 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바라볼 자녀들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때로는 서툰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늙었으나 낡지 않은 채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에 존경스러운 마음도 들고

인생이란 이렇게 살아가도 멋지구나, 안도감에 가만히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삼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생각_27)


친목에 서툰 이 가 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기억하고픈 오늘, 기록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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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