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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와 펭귄

by 이장원


1. 알바트로스는 활공만으로 수백 킬로미터를 날 수 있다. 땅에 앉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비행에 특화되었다. 번식을 할 때 외에는 거의 땅에 오지도 않는다. 반면 펭귄은 날개가 있지만 조금도 날지 못한다. 닭처럼 살짝 나는 것조차 어렵다.


2. 놀랍게도 알바트로스와 펭귄의 조상은 같다. 48종 조류의 계통도를 유전자 게놈 수준에서 분석하여 재구성한 결과 펭귄과 알바트로스는 서로 자매군임이 밝혀졌다. 둘은 공통조상에서 약 6천만 년 전에 갈라졌다.* 하지만 하나는 비행의 천재이고 하나는 비행을 전혀 못한다. 알바트로스로의 진화는 성공이고 펭귄으로의 진화는 실패일까. 펭귄은 날지 못하지만 물속에서는 돌고래보다 민첩하다. 시속 30킬로미터 이상으로 헤엄치고 수백미터 깊이까지 잠수하면서 바다의 풍부한 먹이를 누린다. 진화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펭귄은 바다를 ‘선택’한 것이다.


3. 지금 우리 사회는 하나의 성공 공식만이 강요된다. 그와 다른 것은 열등한 것처럼 여겨진다. 마치 모든 사람이 알바트로스가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다라는 또 다른 풍요로운 세상이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실속에서 펭귄은 절대 나올 수 없다. 오직 성공이냐 실패냐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나 또한 오늘도 알바트로스로의 진화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 Jarvis et al. (2014), ‘Whole-genome analyses resolve early branches in the tree of life of modern birds’, Science, Vol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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