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조금은 낯선 곳에 들린 기억이 있다. 안내 표지판에는 예전 상무(尙武)대라 불리던 군부대 지역을 5·18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시 내용은 주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잡혀왔던 사람들이 어떻게 고문당하고 군사 법정에 서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곳곳에 복원된 고문 도구 또는 이를 재현한 밀랍인형, 그리고 당시에 촬영된 사진 등은 당시의 참상을 전해주고 있었다. 성인이 봐도 매우 끔찍한 광경의 연속이었다.
공원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필자의 감정은 연민으로 시작하여 분노 그리고 궁금증으로 옮겨갔다. 처음에는 잔혹한 당시의 참상에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이 떠올라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어떻게 같은 국민끼리 이토록 잔인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마지막에는 군인들이 왜 이토록 폭력적으로 행동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붙잡혀온 사람들을 향해 상관이 빨갱이라고 강조한들 분명 그중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가혹한 고문을 받았고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한 탓에 군사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비슷한 의문은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했을 때에도 생겨났다. 평화공원의 중앙분수를 중심으로 세워진 대리석 판에 새겨져 있던 사망자들의 인적사항을 보면서 유사한 생각을 하였다. 성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3살짜리 아이를 보고 당시 군인들이 정말 공산주의자라고 간주해서 죽였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두 장소 어디에도 희생자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증언과 유적만 있을 뿐, 집행자들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집행자들은 그저 폭력을 무자비하게 휘두른 주체일 뿐, 인간성이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존재로 그려져 있었다.
사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이 무의미해 보일 수 있다. 단순히 집행자들을 악마화하면 이런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거나 학대하면서 쾌락을 얻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추가적인 설명도 필요 없다. 어디에서나 심성이 악한 사람은 존재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총부리에 저항한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람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악마라고 규정해야 하는 사람은 이들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명령을 수행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에 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이들을 악마화한다면, 분명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들의 악마적 본성을 드러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아니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순히 이들을 악마의 명령을 집행하는 대리인쯤으로 생각하여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속으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하 평범)』은 이런 의문점을 직접 해명코자 한 매우 특별한 책이다. 책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은 끔찍했던 2차 세계대전의 일선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일반 병사들과 하급장교이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브라우닝(Christopher Browning)은 독일 연방 검찰국에서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하면서 이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자료는 다름 아닌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절멸 계획에 참여했던 독일 경찰 예비대의 심문기록이었다. 대대원 전체에서 220명가량의 조사기록을 접한 브라우닝은 이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필자와 유사한 의문을 가지고 그들이 학살에 참여한 계기와 과정 그리고 내면을 파헤친다.
『평범』은 1992년에 발간되었지만, 수정과 보완을 거쳐 1998년에 2판, 2017년에 3판으로 재인쇄되었다. 따라서 약 200쪽 분량의 본문 이외에도 책 출간 이후 벌어졌던 골드하겐(goldhagen) 논쟁에 관한 글과 최근의 연구 성과를 수록하고 있다. 덕분에 저자의 책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인식되고 또한 어떤 면에서 좀 더 진일보한 결과들을 내놓았는지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럼에도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책의 본문에 해당하는 18개의 장(chapter)일 것이다.
본문은 크게 3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첫 부분은 유대인 학살 계획의 전체적인 큰 흐름에 관한 설명이다. 여기에는 유대인 학살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고 누가 주도했으며 어떤 집단이 참여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학살을 담당했던 독일의 경찰 체계, 그중에서도 비밀경찰과 치안경찰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간단히 말해 유대인 학살에 대한 큰 그림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경찰대대가 학살에 참여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필자가 공을 들여 복원한 유제푸프의 학살현장은 매우 자세하면서도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첫 학살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101 경찰대대가 이후에 어떤 작전에 참여하였고 이전과 대비하여 어떤 점이 변화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인 18장은 앞선 설명을 정리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학살과정에서 크게 저항하지 않고 학살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않았는지를 기존 설명들과 대조하며 종합하고 있다. 여기서 브라우닝은 다우어의 전시 야만화 주장을 반박하면서 밀그램의 실험과 죄수와 간수 실험을 인용하며 학살에 대한 단선적인 판단을 경계한다. 그는 당시 독일인들의 반유대주의가 학살의 원인인 것은 맞으나 그것만으로 이와 같은 끔찍한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못 박는다. 브라우닝은 오히려 학살에 참여한 다수가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혹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합리화하며 학살을 수행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짓고 있다.
글쓴이가 책에서 가장 유심히 읽었던 부분도 유제푸프의 학살과 18장이었다. 당시 학살 임무를 부여받은 대대의 지휘관 트라프 소령은 조금 유별나다. 일반적으로 영화나 작품에서 그려진 모습과는 악마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학살 명령을 받은 것을 괴로워하면서 심지어 학살에 참여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빠질 기회를 주었다. 더욱이 동참하지 않은 병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부하 장교들을 제지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학살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처형을 집행한 병사들은 유대인을 경부사격으로 처형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사살에 참여했지만, 피가 튀고 희생자와 눈을 마주치면서 점점 학살현장을 이탈하려 하였다. 다수는 학살 충격을 잊거나 극복하고자 술을 퍼마셨다. 독주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지하려 애썼다. 흥미로운 점은 학살과정에서 유대인을 향한 그 어떤 병사들의 분노와 광기가 서린 행동이 없었다는 점이다. 가혹행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병사들은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잔뜩 민감하게 행동했다. 반면 유대인들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놀라웠던 점은 학살과정을 견디다 못해 빠진 병사들에게 아무런 후속 가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몇 마디 협박이나 욕설이 전부였을 뿐 명령을 거부한 병사들은 그 어떤 불이익도 당하지 않았다.
나치 독일군의 다소 인간적인 모습들은 우리가 그동안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군의 전형과 다른 면모다. 우리가 독일군하면 떠올리는 전형은 대부분의 매체에서 그려내는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한 사디스트적인 모습과는 상이하다. 대표적인 유대인 학살 영화 「쉰들러 리스트」, 「컴앤씨」, 「업라이징」의 독일군들은 하나같이 동일한 이미지다. 이들은 유대인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며 재미로 유대인을 죽이곤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미소를 짓는다. 물론 영화적 묘사가 가미되었기에 어느 정도 걸러 봐야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나치 독일군은 모두 인종주의에 흠뻑 심취한 사람들이다.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트라프, 부흐만, 그나데와 같은 장교들의 모습은 이런 이미지에 균열을 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101 경찰대대는 영화에서 그리는 전형적인 독일군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즉 살인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한다. 점차 유대인을 효율적으로 제거하면서 임무에 적합하게 변해간다. 물론 101 경찰대대는 유제푸프와 워마지 학살 이후 한동안 상부에서는 심적 부담감을 이유로 학살 임무를 맡지 않았다. 한동안 경찰대대는 유대인 수송 임무에 배치되었다. 한껏 심적 부담이 덜한 임무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경험은 나중에 1943년의 대학살 명령을 수행했을 때 효율적인 임무 수행의 밑바탕이 되었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평범한 ‘살인 기계’로 변해버린 것이다.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가해자의 생각을 알아야 할까에 대한 의문에 이렇게 답한다. ‘누구나 비슷한 환경에 처한다면, 유사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브라우닝의 주장은 관련 연구를 꽤 접해본 글쓴이로서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교과서에 흔하게 등장하는 아이히만의 사례를 이미 접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은 평범하면서 성실한 관리였지만, 유대인 학살을 좀 더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행동을 했다. 그가 부지런히 움직일수록 더 많은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는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유대인 학살은 그저 하나의 ‘일’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101 경찰대대의 모습이 필자에게 낯설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중요한 의미를 전달해주는 학살을 집행한 평범한 일반인이 어떻게 살인에 익숙해지는가에 관한 점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직접 죽이지 않았으나 경찰 대대원들은 모두 자기 손으로 유대인을 처형했다. 그들은 극한 상황속에서 결국에는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려 했다.
책밖으로
사실 일상적으로 역사라고 하면 희생자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잔인하게 희생자들이 학대당했는지에만 관심을 둔다. 반면 집행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악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101 경찰대대를 보면서 필자가 느꼈던 점은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상당히 어려울 수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에게 마이크를 준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우려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분법적인 선악의 개념으로만 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상당한 역사적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연민해야 하는 희생자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런 이분법적인 구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책 후반부에 언급하고 있는 프리모 레비의 저서 중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은 2차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 끌려가 겪은 경험을 다루고 있다. 레비는 여기서 유대인 대학살을 겪은 산증인으로서 수용소 생활을 특유의 흥미로운 문체로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대인 박해의 서사인 『안네의 일기』와 레비의 글이 다르다고 느끼게 만드는 점은 레비의 책에는 독일군에 대한 설명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레비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힘들게 한 것은 동료 유대인들이었다. 그는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으며, 조금이라도 식량을 얻기 위해서 동료들의 고통에 눈을 감았다. 유사하지만 다른 설명은 『쥐』라는 만화책에도 나온다. 여기서 주인공인 블라덱은 수용소에 끌려갔지만 결국에는 살아남는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거래를 통해서다. 블라덱이 들려주는 유대인 수용소 이야기는 오히려 잔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대인들끼리 서로 투쟁하는 또 다른 전장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애초에 이런 끔찍한 환경을 만든 나치독일이 가장 큰 큰 원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레비의 책은 희생자들의 스펙트럼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다양함을 알려준다.
이런 측면에서 책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금기시되어 있는 회색 지대에 대한 고민을 하게끔 만든다. 물론 여전히 글쓴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런 관점을 취하는 것이 그들에게 공감하는 행동을 비춰지거나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여 희생자들을 더욱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이 모든 고민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