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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는 적

2일 차(1)

by 레옹

2일 차. 엄밀히 말하면 실질적인 1일 차. 한국을 떠나고 보낸 최초의 온전한 하루. 집을 떠난 것이 한두 번의 일이 아니건만 정말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꼈다.



나는 아침이 오고 잠에게 깨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움직이지 않으면 고요함 속에 숨통이 조여 오는 기분이 들었다. 빠르게, 간결하게, 다음 행동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 냉정한 마음으로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다급한 손길로 최소한의 행낭을 꾸려 숙소를 나서자 마주한 것은 의외로 두근거림이었다. 따스한 햇살 속에 싱그러운 오렌지의 향기를 맡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15시간의 비행으로 생긴 어지러운 피로감이 샘솟는 도파민에 깔끔히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아, 이것이 자유인가?'

두 발이 가벼워진다. 어디로 갈까. 나는 쭉 보고 싶었던 미테랑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중교통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씨옹 광장에서 미테랑 도서관까지 도보 40분. 내 첫 움직임은 오로지 내 발로만 해내고 싶었다.



걸음걸음마다 눈이 즐거웠다.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아파트 지옥에서 벋어나 마주한 파리의 다채로운 건물들은 나에게 큰 해방이었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을 더 재촉하면서도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었다. 구글맵을 보고 있자니 베르시 공원이라는 곳이 경로 근처에 있어 즉흥적으로 발을 옮겼다.



도시 곳곳에 공원을 지어두는 것이 서양의 문화라더니, 과연 작은 공원 하나에서 허투루 하는 것이 없었다. 기하학적인 배치 하며, 신기한 석조상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위들까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나를 반긴다.

회색 속에 초록이라니. 도시 안에 이토록 생생한 자연이라는 것은 오히려 썩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베르시 공원에서 다리를 건너면 미테랑 도서관을 바로 마주 할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eb7b3f369e574ae/10

미테랑 도서관에 대한 내용은 앞서 적어 놓은 바가 있다. 2일 차로 뭉뚱그려 글로 적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건물이기에.



나는 보고자 했던 것을 마주하면서 이제야 시작이라는 것을 느꼈다. 정말 먼 길 왔다는 것이, 강의나 책 속에서나 보던 것을 내 눈으로 보고 나니 실감이 난다. 오싹오싹한 기분이 든다. 나는 혼자 여기까지 온거구나.

발을 멈추고 있으니 잡념이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더 움직여야 한다. 어디로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초기 목표 중 하나로 장 누벨의 아랍 문화원을 생각했었기에 바로 출발했다.



다시 걸었다. 아우스터리츠 역을 지나 파리 식물원을 잠시 둘러보기도 하면서 나를 움직였다. 움직이면 생각을 멈추고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처음 겪는 감정들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편하면 머리가 괴롭고, 몸이 괴로우면 머리가 편하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 그것이 내가 택한 길이었다.



https://brunch.co.kr/@eb7b3f369e574ae/11


또 하나의 걸작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짐을 느낀다. 혼자라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오히려 내가 이렇게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내 마음 가는 곳으로 발길을 이끌지는 못했을 것이 아닌가?

바람 잘 날 없는 갈대와 같은 마음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는 잡념의 연속들. 이러하니, 저러하니. 이래서, 저래서. 결국 마음이라는 것은 본디 요동치는 것이 아닐까? 잡념이라는 것은 본디 일어나는 것이고, 마음이라는 것은 그 장소와 같은 것이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어찌하려 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또 다른 고뇌가 벌새처럼 날아드는 순간. 나는 나를 통제하려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몸에도 수의근과 불수의근이 있듯이 내가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장의 근육이나 항문의 괄약근을 내가 내 뜻대로 조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님은 아니다. 심장은 피를 끊임없이 펌프질해 나를 살 게 하고 항문은 배설물을 배출해 나를 살 게 하듯이 역할이 다를 뿐, 이 또한 나의 것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라고 해서 나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고 해서 나를 전부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금 겸손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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