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일찍 일어나기로 한 새해 다짐은 잘 이행하고 있습니까?”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습니까?”
새해가 된 지 한참 지났는데, 아직 내 다짐을 기억하고 확인하는 지인들이 있다.
“이봐,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잖아.”라고 논리적으로 반박해 주었다.
“너무 사소한 다짐이어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새해에는 ‘좀 일찍’ 일어나기로 다짐했었다.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잘 이행되고 있다. 심지어 하루는 전날 과음으로 죽을 것 같았는데도 새벽 5시에 일단 일어났다가,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자는 투혼을 발휘했다. 하루가 길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다. 담임선생님이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자퇴서 한 장을 담임 책상에 올려놓고, 다음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금연, 금주 결심을 빼고는 한번 결심하면 바로 해치우는 성격이다. 친구들이 ‘너는 중졸이야, 중졸.’이라고 비아냥거릴 때는 이따금 그때의 결심을 후회하기도 했다.(대학도 중퇴함.) 나는 그때 왜 고등학교를 그만뒀을까. 이유가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유가 있었던 걸까라고까지 생각한다. 새해부터 좀 일찍 일어나기로 하는 다짐처럼 어떤 결심에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삐리가 학교엘 안 가게 되니, 할 일은 없고 하루는 길었다.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추천(“시간 때우기 진짜 좋아!”)으로 김용 작가의 <영웅문>이란 소설(무협지)을 읽었다. 당시 ‘고려원’이란 출판사가 판권 없이 그냥 출판해서 떼돈을 벌었다.(정비석 선생의 <소설 손자병법> 등이 고려원에서 나왔다.) 과장 1도 없이 진짜 24시간 서서, 앉아서, 누워서 풀로 읽었다. 밥은 당연히 먹을 시간이 없었고, 숨 쉬는데도 시간이 든다면 숨도 안 쉬었을 듯한 정도의 집중력이었다. 특히 2부 ‘신조협려’에 나오는 남주인공 '양과'와 여주인공 '소공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 일주일 잠을 안 자고 독서에 몰입했더니 한번 깨진 수면리듬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내 불면증의 근원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엘 갔는데, 좀 더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 공부를 양보했더니 할 일이 없었다. 우연한 짬에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24시’라는 미국드라마를 만났다. 잭 바우어가 24시간 동안 테러를 막기 위해 다이 하드하는 드라마다. 실제로 하나의 시즌에 대략 24시간 정도 걸린다.(그래서 제목이 ‘24시’다.) 24시간에 시즌 하나를 본다. ‘영웅문’과 달리 ‘24시’는 노트북을 깔고 옆으로 누워서도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한 일주일 집중했더니, 방위병 훈련소에서 담배 피우다 잡혀 땡볕에 한나절 삽질한 덕으로 사라졌던 불면증에 다시 나포되었다.
좀 일찍 일어났더니 확실히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는 6시간 정도(씻고, 밥 먹는 시간 제외)였던 할 일 없는 시간이 몇십 분에서 몇 시간까지 늘었다는 것이 특히 달라진 점이다. 시간이 많아지면서 누워서도 할 수 있는 거리를 찾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누워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눈을 뜨고 있는 것 말고는 에너지 소모가 적어서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다. 누워서 하던 짓을 계속하게 된다. 결국 잠을 안(못?) 자게 되어 시간은 더욱더 많아진다.
이제는 누워서 만화나 무협지를 보던 시대는 갔고(팔이 아픔), 대신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티빙 등 OTT(Over the Top?)를 휴대폰으로 본다. 휴대폰 거치대를 만드는 회사의 기술력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역시 비싼 거치대가 좋다.)
시간이 늘어나서 디즈니플러스에 새로 가입했고, ‘조명가게’, ‘강남 비-사이드’ 등을 몰아서 봤다. 김혜수가 주인공인 ‘트리거’ 방영을 기다리고 있다.
계속해서 좀 일찍 일어나고, 따로 할 일이 생기지 않으면 웨이브, 왓챠까지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다. 게다가 이따금 간단하게나마 아침을 먹게 되었다.
대체 좀 일찍 일어나서 얻게 되는 이익은 무엇일까.
과연 ‘새해 다짐’을 계속하는 것이 지속 가능하고, 필요한 일인지 고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