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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필요 없다

by 천경득

“추카추카!!!”

“부럽습니다.”

“진짜 이런 게 된다고?”

“어머, 어머. 대박이다. 밥 사.”


토요일이다. 일주일 중 그냥의 하루일 수도 있고, 금요일의 다음 날이거나 일요일의 전날일 수도 있다.

일을 ‘안’ 하는 날일 수도 있고, 일을 하는 날일 수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로또 추첨일이다.




2024. 12. 28. 지난해 마지막 토요일의 로또 당첨번호는 어이없게 30 31 32 / 35 36 37번이었다.

이례적으로 6개 숫자 모두 30번대였다. 그것도 연이은 번호의 조합.

하지만, 이례적으로 1등 당첨 복권수가 35개로 많았다. 당첨금은 1등이 8억 7,400만 원.




나는 6개 번호 중 무려 5개를 맞췄다. 3등, 152만 원.

번호 1개가 틀려 당첨금 8억 7,248만 원을 날렸다.

번호 1개 차이에 불과한데, 당첨금이 이렇게 차이 나는 것은 온당한가.


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 무한한 암흑의 우주 공간에서 우주선과 연결된 로프가 떨어져 지구와 교신이 끊긴 채 조금씩 지구와 멀어지는 우주비행사의 기분이었다. 미사에 자주 참석하지 않았음에 대한 후회.(냉담자임.)

형언할 수 없는 억울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페이스북에 당첨결과를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들이 좋아요 클릭과 함께 댓글로 축하인사를 건넨다. 축하?


당신들은 정말 누구인가?

내 페친들은 유독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이들만 모여 있는 것일까?


주식 투자자에게 가장 뼈아픈 순간은 주식을 사자마자 하한가를 맞는 것이다.

그런데 더 견디기 힘든 순간은 팔자마자 상한가를 가는 때라는 얘기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마음속으로는 ‘다행이다, 배 아파서 죽을 뻔했네.’라 생각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짐짓 축하라는 가면을 쓰고 나를 놀리는 것이겠지.


내가 세상을 너무 삐딱하게 보는 것일까.

아니면, 불행을 애써 행운으로 환치시켜 괴로움을 잊게 하려는 고심 끝에 나온 위로의 방안일까.


최소한의 공감 능력이 있다면 타인의 불행에 대한 위로의 방식을 고민할 필요 없다.

두통으로 머리가 깨진다는 이에게는 타이레놀이나 애드빌을 주라. 그것이 숙취로 인한 것이든 아니든. 간이 망가지든, 위가 망가지든. 머리가 두 동강 나기 전에.


로또에 있어 4등이나 5등은 행운이고 축하의 대상일 수 있어도, 3등은 일종의 신의 저주 비슷한 것이다.

로또 당국도 유감스럽다. 당첨 결과에 3등 ‘축하합니다!’ 같은 표시는 당첨자를 우롱하는 행위에 불과하므로 재고를 요청한다.


3등 당첨자가 로또의 늪에서 헤어 나올 확률은 로또 1등 당첨 확률보다 낮다.

로또의 노예가 되어, 당첨금 152만 원은 로또 당국에게 다시 회수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3등 당첨은 아무런 이득이 없다.(152만 원이 사라지기 전에 1등에 당첨되는 경우를 빼고는.)



어젯밤 지인들과 노포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중이었다.

한 아가씨가 쓱 들어와 취한 사내들에게 장미를 사달라 내밀었다.

한 송이 4천 원, 세 송이를 1만 원에 주겠다 제안했다.


K가 무심하게 물리치자, 다른 자리로 옮기고 있었다.

장미 송이마다 로또가 한 장씩 매달린 것이 보였다. 다시 불러, 진짜 로또냐 물었더니 진짜 로또라 한다.


K에게 1만 원을 지불하게 하고, 장미 세 송이(로또 세 장 포함)를 내가 혼자 다 챙겼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금요일 다음 날은 오늘,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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