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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을 피하는 하나의 방법

by 천경득

변호사가 왜 맨날 쓰잘데기 없는 글만 쓰냐는 힐난의 목소리(동의는 않지만)가 있어, 오늘은 일반인들에게 꼭 필요한 전문 지식을 한 번 써 본다.




범죄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범죄 1위가 사기죄인 나라다. OECD 회원국 중 사기 범죄율 1위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100명 당 1명이 사기를 당한다고 한다. 사기공화국이다. 게다가 갈수록 사기가 늘고 있다.


세상일에는 모두 음양이 있는데, 사기가 늘면서 퍽치기같은 범죄는 많이 줄었다.

요즘에는 야심한 밤에 술 처먹고 길거리에서 해롱거리다가 뒤통수를 벽돌에 까이는 일이 거의 없다.

범죄자 입장에서도 중고거래를 칭하며 택배 상자에 벽돌을 넣어 보내는 것이 훨씬 손쉽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고(졸업은 안 했지만), 사법시험에도 쉽게 합격했다.

대형 로펌에서도 근무를 했고, 금융공기업 비슷한 데서 감사로도 일했다.

무엇보다 2017년 5월부터 대통령비서실 인사팀장으로, 3년간 청와대 인사와 조직관리를 총괄했다. 아시다시피 이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전·현직 국회의원 중 내가 청와대에 채용했거나 같이 근무했던 사람이 수십 명이다.


한마디로 나는 보통의 사람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지인들 대부분 동의하는 사실이다.

별로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내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별로 사기를 당할 것 같지 않은 경력의 사람이다.

그런데, 나도 자주 사기를 당했고, 당한다.




사법연수원 2년 차이던 2003년의 일이다.

초보 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한적한 도로를 주행하던 중 신호등에 걸려 정차하고 있었다.

작은 봉고가 바로 옆에 서더니, 착하게 생긴 청년이 창을 내리고 길거리에 잠시 차를 세워 보라 손짓을 했다.


나는 뭔 일이지 하며, 순순히(대체, 왜??) 차를 길거리에 댔다.

‘명절 선물을 배달하고 있는데 받을 사람 주소가 틀린 생선이 몇 상자 있다. 어차피 회사로 가져가도 상품으로 못 쓰게 된다. 기름값만 주고 가져갈 생각이 없느냐. 개별 포장이 된 아주 비싼 제주산 옥돔이다.’

이후의 참사에 대해서는 더 얘기하지 않겠다.

몇 년 전 연수원 동기 Y 변호사가 전화를 했다.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17년 차쯤의 변호사 때다.

‘도로에서 선하게 생긴 청년에게 생선을 샀는데, 너한테도 좀 보내줄게. 집에 가져가면 얻어터질 거 같아.’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니다.


작년인가 여하튼 최근에, 하루는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댓글에 어떤 사람이 ‘고시원에 살고 있는데, 며칠 굶었다. 알바조차 자리가 없다. 너무 배가 고프다. 빵이라도 사 먹게 1만 원만 보내 주실 분 안 계시는가. 살려주시라.’고 썼더라.


장발장은 배 고파서 빵 하나를 훔쳤을 뿐이다.

그가 죄짓지 않기를 바라며 거금 10만 원을 송금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K 변호사에게 나의 선행에 관하여 얘기했더니,

“오빠, 돌았어? 미친 거 아냐. 오빠 같은 어리바리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잖아!”


“아.. 그런 건가?”


지난달의 일이다.

당근에 어떤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쓰다 만 샴푸, 치약, 옷, 옷거리 같은 것을 올려놓고는 개당 5천 원에 사 가라고 했다.


역시 고시원에 사는 사람인데, 먹을 게 없고, 배가 너무 고프니 적선한다 생각하시고, 쓸모없는 것이지만 사 주시라는 말이었다. 팔 게 이것뿐이라고 했다.


공짜는 바라지 않는다는 착한 마음에 마음이 짠했다.

“물건은 필요 없으니 그냥 쓰세요. 계좌번호 주시면 적당한 돈을 보내겠습니다.”


그 물건은 아직도 팔리고 있다.


이런 에피소드는 끝이 없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도 사기를 당했다는 기분이었다.(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반복되는 기분.)




지금부터는 20년 차 변호사로서의 전문적 식견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깡패처럼 생긴 놈은 깡패고, 도둑놈처럼 생긴 놈은 딱 도둑놈이다. 사기꾼처럼 생긴 놈은 늘 사기꾼이다.


나는 그사이 수없이 많은 사기꾼들을 만나 변호하는 일도 하고, 고소도 했다.

작가나 감독은 현실을 모른다.


깡패처럼 생긴 놈이 깡패고, 도둑놈처럼 생긴 놈이 도둑놈일 수는 있다.

그러나, 사기꾼처럼 생긴 사기꾼은 없다.


마빡에 ‘나, 사기꾼이요.’하고 써 놓은 사람은 절대 사기를 칠 수 없다.

상대방은 얼굴만 딱 보고도, ‘이 새끼, 사기꾼이네.’하고 경계하기 때문에 절대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사기꾼처럼 생긴 사람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물리적으로 사기가 불가능한 존재다. 역설적으로 가장 믿을 만하다.


경험상 거의 모든 사기꾼은 착하게 생기고,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말을 이쁘게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특히 아주 아주 탈이 좋거나, 베풂과 호의가 필요 이상으로 넘치는 자들이 큰 사기꾼인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케이스는 변호사로서의 윤리가 있으므로 생략함.)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기꾼처럼 '안' 생긴 사람을 멀리하라. 착한 사람은 특히 멀리하라.”


전문가적 지식을 과시했더니, 과연 뿌듯하다.


P.S. 이번 주 토요일의 로또 예상 번호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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