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민이의 알림장을 확인해 보니 받아쓰기 숙제가 남았다.
“종민아, 내일 받아쓰기 한 대. 연습하고 자자.”
“싫어요. 내일 아침에 할게요.”
종민이가 방 안에서 뒹굴뒹굴하며 모르는 체한다. 저녁 9시 반이 넘었기에 강요할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아침이 되어 받아쓰기가 걱정되었다.
“종민아, 아빠와 받아쓰기해라.”
남편은 나의 마음을 아는 듯이 거실로 나온다.
“그래, 연필 가져와라.”
종민이는 식탁으로 가서 공책을 펴고 아침 식사로 모닝 롤에 딸기잼을 먹어가며 받아쓰기가 끝났다.
“엄마, 나 70점 나왔어요.”
“잘했네.”
사실 그랬다. 종민이가 짜증을 내지 않고 시험을 본 그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으면 종일 마음이 안 좋기 때문이다. 종민이도 그럴 것이다.
종민이가 기분이 좋은 듯 받아쓰기를 끝내고 종알종알 쉼 없이 이야기한다.
“엄마, 나 태권도 1장부터 5장까지 다 외워야 한 대. 다음 주에 심사가 있어서 합격하면 주황 띠를 준대.”
“와, 벌써 심사를 봐? 좋겠네.”
“엄마, 관장님이 1장부터 5장까지 다 외우면 올해 안에 검은 띠 줄 수 있대.”
“와. 그렇구나. 좋겠네.”
“그걸 어떻게 다 외우지. 큭. 그래도 해봐야지.”
“잘할 수 있어.”
종민이는 내가 움직이는 대로 나를 따라다니며 이야기한다. 내가 컴퓨터 방에 들어가 앉으니 따라와서 해먹에 앉는다.
“엄마, 건축가가 되려면 어떤 체력을 키워야 해?”
“건축가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해.”
“나 커서도 ADHD약 안 먹고 있다가 사고 치면 안 되는데, 그때까지 나아야 하는데,”
종민이는 자기가 복용하고 있는 약을 자각하고 있어서 좀 놀랐다.
“종민아, 괜찮아. 나아질 거야.”
“그때도 정신이 이상해서 사고 치고 말이야.”
종민이는 웃긴 표정으로 재밌게 말하고 있는데 진심일까? 장난일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종민아, ADHD는 뇌 속에 있는 전두엽이 작아서 생기는 현상이래. 전두엽은 종민이 몸이 커가면서 같이 크게 되니까, 내년이 되면 나아질 거야.”
“전두엽이 안 자랄 수 있지?”
“그런 사람도 있겠지.”
“전두엽아! 어서 쑥쑥 자라거라. 내 전두엽아.”
종민이는 웃긴 표정을 짓는다.
“엄마, 건축가가 되려면 어떤 체력을 키워야 해. 팔 근육? 나무를 들려면 팔 운동을 해야 해?”
“음, 건축가가 되려면 태권도장에서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면 돼. 체력이 크게 중요하진 않아.”
“키는 작아도 돼?”
“키는 작아도 되지. 건축가는 설계하는 사람이니까.”
“엄마, 나는 설계하는 사람이 아닌 나무를 뚝딱뚝딱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설계 같은 건 못해. 난 전략가가 아니라 전쟁가야. 난 대장장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나무나 철을 직접 다루는.”
“아, 그렇구나. 그럼, 목수가 되어야 해. 작업실도 있어야겠네.”
“난 장영실처럼 되고 싶어. 장영실은 대장장이였대.”
종민이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간다.
“종민아, 그럼, 종민이가 짓고 싶은 집을 설계해서 직접 나무로 지으면 되지.”
“어. 나는 직접 나무나 철을 움직여서 지을 거야. 난 전략가가 아니야.”
종민이는 자기 몸을 움직여 사물의 재질을 느끼고 직접 다루는 작업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럼, 예술가가 되어야겠네. 그럼, 미술을 공부해야겠다.”
“어휴.”
종민이는 망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평소에 종민이는 자신이 그림을 못 그린다며 그림 그리기가 싫다고 했었다. 나는 종민이의 표정에 웃음이 났다.
“종민아, 너는 개그맨을 해야 할 거 같아.”
“친구들이 나보고 개그맨 하래. 친구들이 내가 야구를 배우러 화정초등학교로 전학 간다고 하니까 가지 말래. 자기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대.”
“그렇구나. 종민이가 친구들을 지켜주는구나.”
“어. 친구들이 싸우면 내가 못 하게 막고 복도에서 막 뛰어다니는 친구 있으면 내가 못 뛰게 잡아. 그리고 친구들이 준비물을 안 챙겨 오면 내 것 같이 써.”
“잘했네.”
“엄마, 건축가는 돈 많이 벌어? 개그맨이 더 많이 벌어?”
“글쎄, 영화배우나 모델이 제일 많이 벌겠지.”
“그럼 난 건축하면서 모델을 하면 되겠네.”
“그래. 좋네.”
종민이는 책장에서 손흥민 책을 꺼내더니 식탁에 펼친다.
“엄마, 이거 봐. 손흥민이야. 돈을 엄청 많이 벌었어.”
“그건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거야.”
“엄마, 이 사람이 매시야. 매시는 영화배우가 될 거야.”
“한 가지 일을 열심히 해야 돈을 버는 거야. 매시가 영화배우도 하면 운동을 열심히 할 수가 없어서 지금처럼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될 수 없었겠지.”
“매시는 은퇴할 나이가 됐어. 나이가 38인가, 39야.”
“축구 전문가니까 축구 감독이 되겠지. 뭐 영화배우가 될 수도 있고.”
“엄마, 친구들은 꿈이 유튜버나 게이머가 대부분이야. 건축가는 나밖에 없어. 내가 친구들한테 말했지. 게임도 못 하는데 무슨 게이머냐고.”
“잘했네. 게이머는 모니터만 보고 게임만 해야 하는데, 뭐가 재밌겠어. 나무도 만지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일이 즐겁지.”
“맞아.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세계 여행을 할 거야.”
“엄마도 세계 여행 같이 가자.”
나도 맞장구쳤다.
“엄마, 내가 세계여행 시켜줄게.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네.”
종민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엄마, 나는 내가 미래에 뭐가 될지 너무 궁금해.”
“엄마도 종민이의 미래가 너무 궁금해.”
종민이는 일어나 책장으로 가더니 ‘도구와 기계의 원리’ 책과 ‘장영실’ 책을 가져와 내려놓는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야.”
나는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학교 가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데, 종민이는 생각에 빠져있다.
“종민아, 학교 가야지.”
“아직 시간 남았어.”
“엄마, 오늘 관장님 5단 심사 날일지도 몰라.”
“그래? 관장님 심사 보러 갈 때 종민이도 같이 가야 하나? 종민이는 수제자잖아.”
“수제자?”
“제자 중에 최고 제자를 수제자라고 불러.”
“내가 차려! 열중쉬어! 차려! 관장님께 경례를 해.”
“잘하네.”
종민이는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말을 쉬지 않는다.
종민이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 인사를 하며 후다닥 계단을 내려간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