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담가놓았던 간장게장을 꺼내 점심비빔밥으로 먹고 저녁에 체기가 있어 음식을 다 게워내고 말았다. 몇 년에 한 번씩 그런 일이 생긴다. 이번에도 밤새 두통과 체기로 고생하였다. 희재가 생기고 처음인 것 같다.
희재는 내가 숨을 몰아쉬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엄마, 많이 안 좋아요? 병원 가요.”
“괜찮아.”
나는 길게 말도 못 하고 내도록 끙끙 소리만 내며 건넌방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희재는 머그잔에 따듯한 꿀물을 타서 내게 가져 온다..
“엄마, 꿀물을 마시면 좀 나아질 거예요.”
머그컵에 담긴 꿀물을 차숟가락으로 떠서 내 입에 넣어준다.
“고마워.”
마셔도 될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아들이 걱정해서 주는 것이니 먹는 체라고 해야 했다. 그러기를 여러 번 꿀물을 마셨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종민이는 두리번두리번 보고 갸우뚱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다. 종민이는 멋쩍어하며 혼잣말을 한다.
“아..., 나는 가서 자야겠다.”
“종민아, 잘 자거라.”
희재는 운동을 다녀오고 나서도 내가 그대로 있자,
“엄마, 아직도 아프세요?”
나는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었다. 두 팔로 배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희재는 베개를 가져와 기울어진 머리 안에 밀어 넣어준다.
'아. 베개가 있었지. 베개도 없이 내가 머리를 끌어안고 있었구나. 베개를 생각할 틈이 없었구나.'
희재는 내게 베개를 주더니 잠바에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옷을 입은 체로 문턱에 누웠다.
“희재야 가서 자거라.”
“내일 병원 가봐요.”
“그래.”
희재는 그렇게 마루에 누워 나를 간호하고 있었다. 나는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잠시나마 잠이 들었다.
희재의 숨소리도 어느샌가 색색 거리며 잦아진다. 잠이 든 것 같다.
남편이 나의 안색을 살피러 건넌방으로 온다. 남편은 희재를 보라며 눈길을 돌린다.
“희재야, 어서 가서 자거라. 고집 피우지 말고.”
남편의 말에 눈을 뜬 희재는 잠시 슬픈 표정을 짓더니 일어나 잠자리로 들어간다.
“좀 나아졌어요.”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인 토요일,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희재와 종민이가 옆에서 재잘거린다.
“엄마 괜찮아요?”
희재가 먼저 물어온다.
“응.”
목이 마르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고 찬 음식을 먹고 싶었다.
“희재야 엄마 귤 좀 가져다 줄래?”
희재는 주방에서 귤을 가져오더니 까서 한 개씩 입에 넣어준다.
희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몇 번을 받아먹고 나니 기운이 좀 생겼다.
“엄마, 커피 타드릴까요? 따뜻한 커피?”
종민이도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종민아, 괜찮아.”
“에이, 꿀물도 안 드셨네.”
“먹고 있어.”
희재가 서운해할까 봐 얼른 말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간 사이 나는 집 근처의 한의원에 갔다. 다행히 두통이 멎었다. 한의사는 꿀물에 소금을 타서 마시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루를 누워있다시피 보내고 다음 날이 되어 죽을 끓여 조금 먹었다. 희재는 오늘따라 무슨 일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마, 오늘은 시간이 참 느리게 가요. 게임을 할 때도 느리게 가고, 지금도 3시밖에 안 되었어요.”
새벽 대여섯 시부터 일어난 두 아들은 책을 읽다가 게임을 하다가 밥을 먹고 둘이 놀다가 희재는 서빛마루도서관에 가고 오후 두 시쯤 돌아왔다. 하루가 길게 느껴질 만하다. 희재는 저녁이 되어서도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좋아한다. 내가 건넌방으로 오니 희재는 해먹에 누워 책을 보고 있다.
“엄마, 내가 다른 사람보다 걱정이 많잖아요.”
“무슨 걱정을 하고 있니?”
“나 미래에 뭐가 될지 걱정이에요. 대학은 가기 싫고 돈은 벌어야 하는데,”
“희재야, 사람의 걱정의 99프로는 쓸데없는 걱정 이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마.”
“그렇긴 해요.”
희재는 오늘 서빛마루에서 대학 일기라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재미있었다며 한참을 대학 일기얘기를 꺼내놓더니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들었나 보다. 안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희재는 안방 침대에 눕는다.
“엄마, 내가 걱정이 좀 많잖아요.”
“왜. 또 무슨 걱정을 하니?”
희재는 손으로 눈을 씻는다.
“희재야, 희재의 역할은 뭐지? 학생으로서의 역할은 공부를 하는 거야.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면 그게 엄마 아빠를 도와주는 거란다.”
“나 공부하기 싫은데,”
“그래, 그러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면 돼. 엄마 아빠는 그거면 돼.”
희재는 기지개를 뻗으며 일어난다. 그러나 아직 표정은 밝지 않다.
내가 주방을 정리하려고 나오자, 희재는 지나가며 말한다.
“엄마, 엄마가 100살까지 사시면 내가 60살이네. 내가 성공하는 건 보고 가셔야 하니까 100살까지 사세요.”
“희재야, 좀 빨리 성공하면 안 되니. 엄마는 오래 살기 싫어.”
나는 희재의 말이 재밌어서 농담을 했다.
“안 돼요. 엄마 200살까지 사시면 나는 140살이네.”
희재는 내가 몹시 아파하는 게 마음이 무척 쓰였나 보다.
“엄마, 이제 나 그네 타러 가지 않을 거예요. 그 시간에 엄마 아빠랑 시간을 같이 보낼래요.”
희재는 잠을 잘 때도 내게 자신의 옆에 자라며 이불을 정리해 준다. 나는 오늘 아침, 희재의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며 깨달았다. 부모는 자식을 챙겨야 해서 아파도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아이들이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생각이 흐트러지다가도 아이들이 나를 부르면 이내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를 내 자리로 이끈다. 고마워. 희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