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가 되면 희재의 휴대폰에는 알람이 울린다. 그리고 희재는 한치의 주춤도 없이 스프링처럼 일어난다. 희재는 방 안의 가족이 깰까 봐 안방 문을 조용히 닫고 거실로 나간다.
나는 이불 속에서 애벌레처럼 웅크려 누워있다. 좀 더 자고 싶은 마음과 아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과 의무감이 나를 압박하여 7시 10분이 안 되어 부스스 일어나 주방으로 직진한다.
종민이는 밤 9시에 남편과 함께 취침을 들기 시작한 이후로 아침 7시 정도에 일어나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자신의 등장을 알린 후, 거실에서 다양한 장난감으로 놀이를 시작한다. 오늘은 종민이의 학교 과제가 종이비행기 접기여서 어젯밤에 접은 종이비행기들로 거실은 온통 비행장이 되었다.
나는 희재가 좋아하는 핫케이크를 구워 슈가파우더를 뿌리고 사과와 귤, 파프리카, 그리고 우유 한 잔을 곁들여 주었다. “눈이 왔어요.” 슈가 파우더를 뿌리면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와, 눈이 왔다.”
평소에 핫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종민이를 위해 계란을 삶았다.
“엄마, 나도 핫케잌 먹을래요.”
종민이가 갑자기 나에게 매달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듯 나를 바라본다.
“그래? 종민이는 핫케잌 안 좋아하는데,”
“좋아해요. 오늘은 먹을래요.”
종민이를 주려고 하나 남긴 핫케잌에 슈가파우더를 잔뜩 뿌려 주었다. 종민이는 책장에서 재미있는 만화 위인전을 한 권 골라 식탁 위에 펼쳐놓고 핫케잌 접시를 받는다. 아침이면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식사하는 습관이 일상이 되었다.
희재가 등교하고 종민이는 어슬렁거리며 화장실에서 양치를 한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는데, 학교에 가야 할 종민이가 보이지 않는다.
“종민이 어디 갔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니 종민이는 안방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꼬물거리고 있다.
“우리 종민이 어디 갔나?”
종민이가 이불을 젖히고 나를 슬쩍 보더니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종민이 없다!”
나는 오랜만에 종민이와 몸놀이를 해볼 양으로 종민이에게 다가갔다.
“여보세요. 우리 아들 종민이를 보셨나요?”
나는 종민이가 덥고 있는 이불을 톡톡 친다.
“여보세요. 귀엽게 생기고 똑똑한 우리 둘째 아들 종민이를 보셨나요?”
종민이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말한다.
“못 봤습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종민이가 없어졌어요. 종민이가 어디 갔을까요?”
다시 이불 안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모릅니다.”
“나종민 목소리인데요.”
“아닙니다. 저는 정종민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우리 아들 나종민 못 보셨나요?”
“못 봤습니다!”
나는 다시 이불을 톡톡 친다.
“똑똑! 혹시 우리 둘째 아들 종민이를 보셨나요? 종민이는 배에 왕자가 새겨진 아이랍니다.”
종민이는 슬쩍 이불을 젖혀 자신의 배를 보여준다. 나는 종민이의 배를 만져본다.
“우리 아들이 맞네요. 우리 아들은 이렇게 배에 왕자가 새겨져 있답니다.”
종민이는 자신의 팔을 들어 힘을 준다.
“여기도 만져 봐. 근육이 있어.”
“어머, 이건 뼈네요.”
종민이는 웃으며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똑똑! 우리 종민이 보셨나요. 우리 아들은 엉덩이가 두 쪽이랍니다.”
종민이는 다시 이불을 젖히며 몸을 엎드려 자신의 엉덩이를 보여준다.
나는 종민이의 엉덩이를 차례차례 톡톡 만져 주었다.
“어머, 엉덩이가 정말 두 쪽이네요. 우리 아들 맞는 거 같아요.”
“아닙니다.”
종민이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똑똑! 우리 아들 종민이를 보셨나요. 우리 아들은 발가락이 다섯 개랍니다.”
“엄마, 누구나 발가락이 다섯 개지. 여섯 개인 사람이 있어?”
“여섯 개인 사람도 있지. 네 개인 사람도 있어.”
종민이와 이부자리에 앉아 한참 놀았다.
“종민이 학교 갈 시간 됐을 텐데,”
“아냐. 멀었어.”
“지금 몇 시인가요.”
거실에 있는 남편은 8시 7분이라고 말해준다. 종민이는 다시 신이 난 얼굴이다. 엄마와 더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민이를 안아주었다. 종민이는 누운 채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나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엄마, 난 엄마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거야.”
“응?”
나는 순간 긴장했다. 나는 종민이를 자주 혼냈기 때문에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미소만 지었다.
“엄마, 이렇게 웃어봐.”
종민이는 흐뭇하고 조금은 웃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나도 종민이를 따라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응, 난 엄마를 이런 표정으로 기억할 거야.”
사실 부끄러웠다. 한없이 종민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시면 비석에 엄마는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잘 놀아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쓸 거야.”
“종민아, 엄마는 죽지 않아. 엄마는 종민이의 아들과 딸을 키워 줄 거야.”
“엄마, 난 딸은 낳지 않을 거야. 아니 딸은 버릴 거야.”
“종민아, 버리는 건 아니지.”
“그럼, 엄마한테 보낼 거야.”
“엄마가 종민이 집에서 같이 살 거야.”
“내가 가난하면 어떡하지.”
“아냐, 종민이는 부자로 살 거야.”
“엄마, 점쟁이가 나는 부자로 산대? 점쟁이가 나는 커서 뭐가 된대?”
“응, 종민이는 영화배우도 되고 선생님도 되고 운동선수도 되고 의사도 되고 건축가도 된대.”
“에이, 너무 많잖아.”
종민이는 엄마가 장난한 걸 아는지 웃는다.
“종민아, 이제 학교 가자.”
종민이와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종민이는 오늘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종민이는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옷을 입었다.
“엄마, 가방 좀 매 주세요.”
나는 별말 없이 종민이 어깨에 가방을 매어 주었다.
“엄마, 엄마가 돌아가시면 뜬구름 출판사를 나한테 넘겨. 엄마 돌아가시면 내가 내 책을 쓸게. 내가 지금 얘기부터 내 얘기를 다 쓸 거야. 내가 형아보다는 못써도.”
“종민이도 잘 쓸 수 있어.”
종민이는 현관으로 걸어간다.
“나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뜬구름 출판사는 만화책은 안 내니까.”
“아냐, 만화책도 낼 수 있어. 엄마랑 같이 만화를 그려보자.”
“그래요.”
종민이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종민이는 어젯밤부터 접은 멋진 종이비행기 여러 개를 손에 들고 나에게 경례를 한다. 오늘은 종민이가 학교에서 종이비행기를 멀리 날리는 날이다.
“꼭 이기고 오겠습니다!”
오늘 나는 종민이의 한 마디로 그동안 종민이와 울고 다투고 상처받았던 나날들이 한순간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늘 아이가 커서 나를 자신을 혼낸 엄마로 기억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희미한 안갯속에서 실낱같은 길을 더듬어 종민이라는 마음의 문을 찾은 느낌이다. 그 문은 종민이처럼 멋지고 화려하지만 튼튼한 문일 것이다. 그래야 종민이 다운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