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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제일 좋아

by 고진예

내일은 종민이가 곱하기 단원평가를 받는 날이다.


“엄마, 나 내일 단원평가 한 대.”

“그래? 그럼 미리 공부하고 가야지.”

“싫어.”

“공부를 미리 안 하고 가면 50점 맞는다고”

“선생님이 내주는 거랑 다르단 말이야. 그럼 나 현실처럼 할래. 아이패드로”

“음..., ebs 단원평가 출력해 줄게. 아이패드랑 같지.”

“컴퓨터로 하고 싶은데.”


저녁 8시가 넘어서 공부를 하고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요즘 들어 종민이가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아빠를 부르게 된다.


“종민이 내일 단원평가래요. 미리 단원평가 연습 좀 시켜줘요. 어서 아빠한테 가.”


종민이는 쭈볏쭈볏 아빠 옆으로 간다. 남편은 종민이의 엉덩이를 톡톡 치며 얼굴로 종민이의 볼을 쓰다듬는다.


“무슨 공부야. 놀아. 잘 때 됐는데.”

“어이구.”


나는 안 되겠어서 종민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종민이가 전에 수학이 재밌다고 해서 사둔 ebs수학 플러스 교재를 살펴보니 다행히 단원평가가 있다.


“여기 있네. 잘 됐네. 이거 해보자.”


종민이는 흘낏 보더니 고개를 돌린다.


“이거 쉽잖아요. 안 해요.”

“그럼, 백점 못 받기만 해.”

“쳇. 백점 맞아줄게요.”


종민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책을 집어 들고 거실 식탁 의자에 앉는다. 종민이는 간혹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태세를 바꿔 자기 주도로 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자존심이 상하기 싫었던 걸까. 종민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시험지를 바라본다.


“쉽구먼.”

“자, 해보자.”


나는 종민이 옆에 앉아 책을 읽었다.

종민이는 문제를 풀면서 연신 “쉽구먼,” 이런다. 20문제가 끝났다.


“끝났는데 문제가 더 있네. 뭐, 이것도 다 풀어줄게요.”

“그래, 일단 이거부터 채점하자.”


채점 결과는 모두 맞혀서 백점이 나왔다. 종민이의 표정은 이미 왕의 표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종민아, 무슨 일이니?”

“재밌구먼. 쉽네.”


종민이는 나머지 문제도 시작하였다. 나는 종민이가 백점을 맞는 것보다 문제 푸는 상황을 즐기고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스스로 재밌게 공부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푸는 동안 남편이 나와 의자에 앉는다. 남편과 두런두런 얘기하고 있는데 종민이가 시험에 집중을 못하고 대화에 참견하고 있다.


“종민아, 시험 다 풀고 얘기하자.”


남편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종민이의 시험은 끝을 향한다.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엄마,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소와 닭이 합해서 6이래요. 그러면 소와 닭다리가 합하여 16개래요. 그러면 소와 닭은 몇 마리인가요? 이걸 어떻게 알아요?”


드디어 종민이에게 어려운 시간이 찾아왔다. 어려운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다. 아이가 새로운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의 다리가 4개고 닭이 다리가 2개잖아.”

“말하지 마요. 내가 해결할 거니까.”


나는 종민이가 기특했다. 결국 힌트를 주다가 말다가 하며 종민이는 문제를 풀었다.


“소는 두 마리, 닭 네 마리는 8 더하기 8은 16이고, 소랑 닭이랑 합하면 6마리. 내가 맞혔다. 알았죠?”

“응, 잘했네.”

“와, 어려웠다.”


종민이는 내심 뿌듯한 표정으로 웃는다. 내가 채점을 하는데, 중간에 오답이 나왔다.


“틀렸네. 종민이가 모르는 건 아니고 실수한 거 같아.”

“그러네. 이런 건 맞았다고 해줘야지. 엄마 동그라미 쳐요.”

“안돼, 엄마는 못하겠어. 이건 공정하지 않아. 맞았다고 할 수가 없겠어.”


종민이는 자신이 쥐고 있던 연필로 동그라미를 친다.


“안돼. 종민아! 틀린 건 틀렸다고 하는 거야. 맞았다고 하면 부끄러운 거야.”

“아니, 실수한 거라고요. 이런 건 맞았다고 해도 된다고요.”


종민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종민아, 실수해도 틀린 건 틀린 거잖아.”


종민이는 서서히 짜증을 낸다.


“왜요? 맞았다고요.”

“틀린 건 틀렸다고 하는 거야. 엄마는 종민이가 백점 맞는 게 중요하지 않아. 종민이가 재밌게 시험을 보는 게 좋은 거야. 종민아, 백점 안 맞아도 돼.”


그래도 종민이의 분은 가라앉지 않는다. 왜 그럴까.


“종민아, 학교에서도 시험 볼 때 실수한 걸 맞는다고 하니?”


종민이는 내 무릎에 앉아서 목소리가 수그러든다.


“아니요. 명준이가 그래요. 명준이는 막 소리 지르고 우겨요.”

“아, 그렇구나.”

“그래서 선생님한테 매일 불려 가서 혼나요.”


종민이는 학교에서 명준이의 상황이 생각났는지 웃는다. 나는 종민이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을 우격다짐했다는 걸 듣고 내가 원칙을 지켜서 아이에게 얘기해 준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순간 깨달았다. 나는 집에 있는 아이만 보게 되지만, 종민이는 학교와 집을 오가며 세상을 보고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다양한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대상으로서 부모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모의 존재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에겐 굉장히 중요한 위치이지만, 요즘 들어 나는 아이가 학교의 교육을 통해 성장해 가는 느낌을 부쩍 느끼게 된다.


“종민아, 엄마는 종민이가 이대로도 너무 훌륭해. 깜짝 놀랐어. 갑자기 천재가 됐네. 원리를 설명도 잘하고. 왜 이렇게 잘하지?”


한참 종민이를 칭찬해 주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 틈엔가 종민이의 질문이 시작된다. 종민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수없이 질문을 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아마도 어두운 공간이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엄마, 나 수학 잘하지?”

“그럼, 수학 참 잘하네. 나중에 노벨 수학상 타겠어.”

“노벨 수학상이 있어?”

“노벨 수학상이 없나?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이 있어. 물리학과 화학도 수학을 잘해야 해.”

“물리가 뭐야.”

“물체의 이치라는 거야.”

“물체의 이치가 뭐야.”

“물체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땅에서 하늘로 떨어져?”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응. 그게 물체의 이치야.”

“아하.”

“그럼, 화학은 뭐야.”


머리가 점점 저려온다.


“화학은 원소가 합하여 생기는 현상이야.”

“원소가 뭐야.”

“맨날 형이 말하잖아. 원소.”


희재는 매일 종민이를 데리고 포켓몬스터 대결을 한다.


“형, 원소가 뭐야?”


어느새 종민이와 희재는 누워서 발로 차며 투닥거린다.


“물체의 가장 작은 단위야. 산소, 탄소, 이산화탄소...”

“하지 말라고!”


종민이가 자신의 몸을 발로 밀고 있는 희재를 향해 소리친다.


“아이고.”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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