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희재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내가 진짜 초등학교를 졸업하다니, 진짜 실감이 안 나네.”
중얼중얼하며 안방을 맴돌고 있는 희재를 보면서 나 역시 희재가 14살이 되어 중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질 않는다. 졸업식이 왔고, 강당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희재가 두리번거리며 나와 남편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희재가 청소년기로 접어드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에 희재에게 좀 더 뜻깊은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희재가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여행을 가면 왠지 졸업의 느낌이 좀 더 이어지지 않겠다는 나만의 생각인 거다.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새벽 6시 집 근처 무주리조트 행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캐리어에 짐을 꾸리고 간식을 잔뜩 챙겨 모두 깨워 옷을 입혀 집을 나섰다. 다행히 아이들은 누구 하나 찡찡대지 않고 씩씩하게 일어나 신발을 신는다. 추운 바람이 느껴지는 새벽. 새벽 6시에 눈길을 걷는 종민이는 어떤 느낌일까. 한참 자고 있을 시간에 누군가는 바삐 운전하고 누군가는 어딘가로 향해 걷고 있는 모습을 종민이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종민이는 바닥에 쌓인 눈을 꾹꾹 밟고 길을 걷는다.
목적지에 서서 찬바람에 서로 몸을 숨기려 애쓰고 발을 동동거리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다. 짐을 싣고 아이들과 버스에 올라타 두 시간여 눈을 붙여 부족한 선잠을 자는 사이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광남 관광에서 운영하는 무주리조트 안내자는 여행객의 스키 체험을 위해 패키지 입장권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였고 우리 가족도 4인 리프트권과 장비, 의류 등을 대여했다. 스키 시즌에는 매일 운행하는 버스답게 안내자는 짧고 명료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두 시간여 버스로 이동하는 사이 창가의 수증기는 얼어버렸다. 창밖을 보기 위해 손끝으로 창의 습기를 없애려고 하나 쉽게 닦이질 않는다.
스키장에 도착하니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무주로 가는 길에도 전북지역에 대설특보가 내린다는 기후예보를 보았기에 시기가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 내려 설전 하우스에 도착해 무거운 신발과 스키 장비, 옷을 갈아입었다. 스키장을 처음 방문한 아이들은 낯선 스포츠 장비와 옷을 대하며 낯설어했고 예민한 희재에게는 모든 게 불편하기만 느껴졌는지 내도록 신발이 안 맞고 무겁다며 짜증을 내었다. 그러나, 희재도 자신의 졸업 축하 여행임을 알기에 조금은 참으려고 하는 표정이 느껴져서 다행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딱 한 번 밖에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스키를 들고 남편과 에코라인 앞에 스키를 내려놓고 스키를 장착한 후, 걷기 연습부터 시켰다. 다행히 전날 저녁에 종민이와 남편에게 스키 체험 영상을 보여준 덕에 종민이는 익숙한 듯 스키 장비를 장착한 후 폴대를 들고 조금씩 미끄러지듯 걷는다. 그리고 걷기에 익숙해지자, 언덕 라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향한다.
“그래, 우리도 이제 리프트를 타 보자!”
스키를 타 본 지 언제였더라, 10년 전 나는 남편과 스키 구경을 가자며 당일 여행으로 강원도에 있는 스키장으로 당일 버스 여행을 떠나더랬다. 스포츠에 별로 관심이 없고 평소 운동에 관심이 없던 나는 당일 여행으로 저렴하게 강원도를 다녀올 수 있다는 말에 훌쩍 버스에 올라타서 강원도 스키 리조트에 당도해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커피도 마시다 잠깐 스키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날 남편은 처음 스키를 타며 나를 따라 중급자에 올랐다가 급경사에 놀라 스키를 벗어 던지고 걸어서 라인을 내려갔던 추억이 있다.
차갑고 상쾌한 눈밭의 냄새와 공기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리프트에서 내려서 어쩔 줄 모르는 희재와 종민이, 남편에게 나는 내 나름대로 어설픈 조언을 해주었다.
“자, 꼭 스키는 A자를 유지해야 해.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 때는 왼쪽 발에 힘을 주고 왼쪽으로 돌 때는 오른쪽 발에 힘을 주어 무게를 옮겨가야 해.”
종민이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무조건 스스로 겪어봐야 하는 행동파이기 때문이다.
“엄마, 나 내려갈게요.”
종민이가 내게 말하고 있는 사이, 경사면에서 올라오지 못한 희재는 뒷걸음치듯 경사면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엄마”
희재와 종민이는 그렇게 살짝 경사가 진 초급자 라인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남편은 아이들을 잡아주겠다고 내려가다가 역시나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역시 시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물론 실패의 연속이란 계속되는 도전이 있어야 실패가 주어지는 것이리라.
“엄마, 나는 잘 넘어지고 있어.”
종민이는 두 어 발자국도 못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벌떡 일어난다.
“와. 종민이가 진짜 잘 넘어지네. 아주 잘했어.”
“종민아, 자 엄마 말을 좀 들어봐. 폴대를 눈에 끌면 속도가 좀. 줄.”
종민이는 내 말을 듣기도 전에 쑥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리고 넘어진다. 종민이는 빨리 앞으로 가기 위해 내 설명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엄마, 나 넘어지기 정말 잘하고 있어.”
벌떡 일어나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미끄러지며 나가다가 오른쪽 그물 난간에 부딪혀 넘어진다. 그리고 다시 또 일어난다. 얼굴을 이미 북극의 알래스카 원주민처럼 볼이 빨개져 있다.
멀찍이 주황색 그물 난간에 누워있는 희재를 발견했다. 희재는 누운 채 툴툴거리고 있다.
“엄마, 일어날 수가 없다고요. 안 빠진다고요.” 누워 꼼짝도 없이 하반신이 그물 난간 밖으로 나가 있다. “희재야, 엉덩이를 움직여 지렁이처럼 빠져나와 봐.”
“안 된다고요.”
희재는 찡찡거리며 무릎을 세워 발을 밀면서 엉덩이를 그물 난간 안으로 빠져나온다.
“잘했어.”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희재야. 엄마가 타는 걸 잘 봐.”
나는 희재에게 경사면을 직진하지 않고 오른 방향과 왼쪽을 구부러지며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희재야, 엄마는 지금 발끝에 힘을 엄청나게 주고 있어.”
희재는 다소 긴장한 표정과 불만족한 표정으로 스키가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다. 희재는 폴대를 움직여 앞으로 10미터 정도 내려가다가 다시 넘어진다.
“엄마, 신발이 스키에서 잘 빠진다고요."
신발을 스키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신발이 왠지 스키에 딱 장착되질 않는다. 뭐가 문제일까.
“희재야, 힘이 빠져서 그런 거 같아. 숨을 좀 돌려봐.
희재는 툴툴거리며 신발을 스키에 장착하려고 겨우 애쓰며 넣는다. 희재도 어차피 경사를 다 내려가야 스스로 끝이 난다는 걸 알고 누가 도와줄 수 없다는 것도 알기에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묵묵히 내려간다.
그렇게 리프트를 세 번을 내리 타고 내려오면서 아이들은 스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희재나 종민이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리프트를 타면서 급격히 실력이 늘어났다.
씩씩하게 넘어지면 언제 넘어졌냐는 듯 벌떡 일어나는 종민이는 마지막에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듯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일어나서 멋지게 탔다. 그리고 처음에 긴장하며 천천히 내려오던 희재는 세 번째 시도에서는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완주하였다. 그리고 희재는 힘들다며 휴게실로 들어가 버렸고 오후 2시가 넘어 종민이도 내려왔다. 나와 남편은 아이들을 휴게실에 쉬게 하고 중급자 코스에서 즐겁게 내려왔다. 오후로 넘어가는 설산은 참 좋다. 젖은 눈밭에 스키로 사각사각하는 굵은 눈의 입자 소리가 참 좋다. 눈보라가 얼굴을 뿌려지며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감쌀 때 왠지 모를 고독감이 참 좋다. 남편은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하는 거 보니 나 혼자만의 느낌인가 보다.
장비를 반납하고 웰컴센터에 도착해 숙소를 배정받았다. 웰컴센터에 서서 백합 동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쌍의 남녀가 동동거리며 손을 잡고 웰컴센터 방면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인인가 보네.”
종민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희재야, 나중에 너도 여자 친구랑 같이 오거라.”
남편은 한술 더 뜬다.
“희재야, 나중에 너도 결혼해서 아이랑 같이 오거라. 종민이도.”
“난 결혼 안 할 건데요.”
종민이가 말한다.
“그럼, 넌 오지 마.”
남편은 보기 좋아 보인다는 듯이 웃는다.
“엄마, 아빠도 저렇게 애인이었어. 엄마 아빠가 결혼해서 너희가 있게 된 거야. 저 형이랑 누나도 연애하다가 나중에 결혼해서 너희 같은 아이가 생길 거야.”
“아빠는 날 낳지 않았잖아요. 낳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어요.”
종민이는 말한다.
“너희를 낳지는 않았어도 엄마 아빠가 결혼했으니까, 너희와 같이 살 수 있는 거야….”
남편은 종민이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다.
“나는 생부모도 친부모도 가족이에요.”
남편은 종민이의 말이 서운했는지 갑자기 한마디를 한다.
“넌 태어나서 한 번도 얼굴도 못 본 생부모를 가족이라고 하는 건 아니지.”
“그래도 가족이죠.”
“그건 아니지.”
종민이와 남편의 이야기에 희재가 가세하며 투덕거리는 사이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작은 버스 안에는 천정에 보라색 쿠션 장식이 되어 있고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져 있다. 문득, 이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님은 매일 이 리조트 안을 다니시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눈길을 달리며 많은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시겠구나. 그러면 다양한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시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합도 입구에 내려 경사진 골목을 올라 현관문을 지나 312호에 들어섰다. 숙소 공간은 베란다 창 가득 만선하우스의 고급 자라인지 한눈에 펼쳐진 풍경과 그 주변으로 덕유산자락이 펼쳐져 있는 장관이었다. 좋은 풍경으로 배정해 주셨다는 지배인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였다. 오늘은 희재의 졸업여행이었기에 희재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는 그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을 감동하게 만든다.
따듯한 실내로 돌아오니 시간은 오후 5시 반이 넘어가고 몸은 노곤해진다. 슬슬 희재는 집안에 버티고 있으려는 듯 소파에 벌렁 누워버린다. 나는 재빨리 남편을 제 축하여 짐을 꾸려 노천탕에 가자고 재촉하였다. 아이들과 십여 분을 걸어 세 솔 동에 있는 노천온천에 앉아 노천탕 앞으로 쌩하고 달리는 스키어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해는 내려앉고 어둑해진 노천탕 안에는 삼삼오오 남녀노소가 뜨거운 탕에 앉아 그날의 하루를 편안히 마무리하고자 하였으리라.
탕 속에 담긴 뜨거운 몸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발이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몽글거리며 피어나는 수증기로 희재와 종민이는 신기해한다. 호기심이 많은 종민이는 여기저기 탕들을 오가며 기웃거리고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눈바닥을 밟고 탕으로 들어가며 분주히 오고 간다.
희재는 웃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참 좋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간단히 샤워하고 숙소로 돌아가 아이들은 흔한 남매를 보며 시시덕거렸고 나는 오랜만에 운동으로 피곤했던 탓에 일찍 포근한 침대에 몸을 맡기고 깊은 잠이 들었다. 자는 내내 눈 앞에 펼쳐진 높은 설산에 감탄하며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였다.
다음 날 아침,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고 남편은 희재와 종민이를 데리고 어제 다녀왔던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다녀와서 간단히 먹을 아침거리를 사 왔다.
“난 열 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을 거야.”
베란다 앞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서 쓰고 커피를 홀짝 마시며 내가 앉아있는 사이, 남편은 부지런히 설거지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물건들을 정리하였다. 종민이와 희재는 남편을 돕다가 내게 와서 수다를 떨었다. 나는 베란다 앞에 풍경에 빠져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었다. 오전 10시는 희재가 다닐 중학교 배정이 공고되는 시간이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어 교육청 사이트를 열었다.
“희재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중학교로 배정되게 해주세요.”
혼자만의 기도를 열심히 읊조리고 있는 사이, 희재는 내가 쥐고 있는 핸드폰을 확 낚아채더니 검색을 시작했고 중학교가 열람 창에 떴다.
“아.”
희재는 약간의 탄식이 나왔다.
“생각도 인한 학교가 나왔어.”
“희재야, 괜찮아. 희재는 남녀공학을 가고 싶어 했잖아. 잘 됐어. 그래도 희재가 좋은 중학교에 가기를 원했는데.”
나는 말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했지만, 희재는 의외로 의연했다.
“엄마, 선생님은 내게 ‘희재는 똑똑하니까 그 학교에 가서 학교를 일으켜 세우라.’고 하실 거예요.”
“맞아. 희재야, 중학교는 크게 상관없어. 희재가 어딘가서든 잘 지내면 되는 거야.”
결정된 상황에 관해 우리는 매우 긍정으로 전환하기에 바빴다.
“명문으로 고등학교가 명문이지. 중학교는 그런 거 없어.”
“맞아, 잘 된 거야. 두발도 자유래.”
“두발이 뭐야?”
갑자기 종민인가 물었다.
“으응, 두 발이 묶이지 않는 거래. 너 발!”
희재가 종민이의 발을 툭툭 치며 농담한다.
“검도부 형들도 다 같은 중학교예요.”
“잘됐네. 지나가다가 형들을 보면 반갑겠다.”
희재는 대체로 안도하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희재야,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아. 여행도 즐겁고 학교 배정도 잘 됐고 너무 좋은 거 같아.”
나는 희재에게 긍정에너지를 주고 싶어 잔뜩 긍정적인 화살을 쏘아댄다.
객실 마무리를 끝내고 체크아웃하고 만선하우스 근처에 있는 썰매장에 희재와 종민이를 보내고 나와 남편은 휴게소에 앉아 휴식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김치찌개와 해장국으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희재와 종민이가 도착하였다.
희재는 늦은 점심으로 돈가스를 시켜 맛있게 다 먹었다.
집에 귀가하기 위해 설전 하우스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드넓은 무주리조트 내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작은 공간들이 아기자기하게 느껴진다. 이 넓은 공간을 관리하는 것이 참 쉽지 않아 보인다. 이국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설천하우스 내에 휴게소에서 귀가 차를 타기 위해 잠시 쉬는 사이 은근히 게임 얘기를 꺼내는 희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이패드에서 4인 게임을 열었다. 4인 게임 응용소프트웨어를 네 명이 동시에 게임에 참여하여 같이 즐길 수 있는 미니 아케이드 게임이다. 자동차 게임, 과녁 맞히기 게임, 숫자 게임 등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이 구성되어 있다. 장점은 가족 모두가 참여할 수 있어서 한 시간가량을 푹 빠져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귀가 차량에 탈 시간이 되었다.
“자,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씩 합시다.”
나는 핸드폰에 비디오 기능을 켜고 희재에게 비추었다.
“대학 졸업 때는 천만 원 보내줘요.”
“어디 가게?”
“피시방에서 5년 동안 게임하게요.”
“자, 다음은 종민아, 이번 여행의 소감은 어때요?”
“그렇구나.”
종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별말을 잇지 않는다.
“자, 다음은 아빠 말씀하세요.”
“새로운 경험에 호사였습니다.”
“엄마, 엄마도 소감 발표해요. 내가 핸드폰 들어줄게요.”
희재는 내게서 핸드폰을 뺏더니 내게 들이댄다.
“엄마도 소감 말하라고요.”
“희재야, 고마워. 희재의 여행자금 덕분에 여행할 수 있었어. 고마워.”
그리고 나중에 희재는 내게 영상을 보여준다. 나를 촬영할 시점에 영상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중에 희재는 엄마를 촬영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너무 연로해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다.
“내가 엄마한테 효도 할 거야.”
지나가듯 말하는 희재의 목소리는 떨렸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란 것을 안다. 무척 미안해졌다. 내가 조금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희재야.
남편이 고기를 굽고 있다.
“아빠 무덤 같아요. 돌무덤이에요?”
“돼지 무덤”
“아빠는 왜 안 올라가요?”
“정희재, 엎드려뻗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