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게임을 끝낸 종민이는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나에게 와서 눕는다.
“엄마, 엉아 보고 싶어요.”
“엉?”
“어엉아.”
“그게 뭐야?”
종민이는 가끔 내 눈치를 보는 듯 올앙거리며 얘기소리를 낸다. 손짓으로 티비를 가리키는 걸 보니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말인 듯했다.
“종민아, 말을 똑바로 해봐.”
“여엉아.”
눈을 깜빡거리며 말한다. 방금 게임을 끝내자마자, 영화를 보여달라고 해서 한마디 할지 하다가 스스로 알고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 “그렇구나.”라고 웃어주었다.
종민이와 함께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나는 커피를 조심히 들고 움직이다가 팔이 종민이 얼굴을 스쳤다.
“미안해, 괜찮니?”
“아이, 엄마가 일부러 그런 거잖아.”
“아니야, 엄마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종민이는 기분이 나빴는지 손에 들고 있는 원숭이 인형을 내 쪽으로 가까이 흔들기 시작한다.
“종민아, 하지 마. 엄마 쪽으로 하지 마. 다친다고.”
종민이는 짓궂게 웃으며 원숭이 인형을 휘둘러 나는 원숭이 인형을 붙잡고 한쪽으로 치웠다. 그러자 종민이는 원숭이 인형을 잡아 내 얼굴을 친다. 나는 너무 화가 나고 황당했다.
“사과해.”
“엄마가 먼저 그랬잖아.”
“엄마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너는 일부러 그런 거잖아. 그리고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으니, 너도 사과해.”
“싫어!”
주말 오전이라 남편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화가 올라서 종민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무릎 꿇고 손들어!”
“싫어.”
“엄마가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하는 거라고 했지?”
“나 잘못 안 했어.”
“엄마 얼굴을 쳤잖아.”
“안 쳤어!”
나는 너무 기가 막혔다.
“종민아, 사과를 하면 될 것을 사과도 안 하고 잘못한 일을 잘못도 안 했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사과하면 쉽게 끝날 일을. 왜 일을 크게 키워.”
가뜩이나 여객기 참사며 내란이며 시국이 어수선한 연초여서 나는 종민이의 행동이 쉽게 넘어가지질 않는다.
“차별이야!”
“무슨 차별?”
“왜 엄마는 무릎 안 꿇고 나만 무릎꿇으라 해?”
“네가 일부러 엄마 얼굴을 치고 사과도 안 해서 혼이냐는 거야.”
“차별이야.”
뭘까.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 그러면 누가 잘못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죄가 있으면 벌을 받자.”
종민이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입술을 삐죽거리며 먼 바닥을 응시한다.
“아빠!”
“엄마는 뭐만 하면 아빠를 불러.”
“희재도 와. 모여서 얘기 좀 하자.”
안방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 가족 회의하자. 다들 식탁에 앉아.”
남편은 옷을 추스르고 나와 식탁 의자에 앉는다. 나도 자리에 앉았다.
“종민아, 이리와 옆에 앉아.”
“나 여기 앉을 거야.”
종민이는 주춤거리며 오더니 삐졌다는 듯 퉁명하게 말하고 내 건너편 의자에 앉는다. 희재는 내 옆 의자에 앉았다.
“자,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빠도 옆에서 다 들었어. 종민이가 ‘엉아엉아’ 하는 소리도 다 들었고”
나와 종민이와 희재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할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자칫 서로에게 감정 상하는 결과를 만들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하며 얘기를 들었다.
“내가 보기에 종민이는 사과하면 진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야. 종민이는 아직 미숙해서 사과를 못 하는 거지. 그리고 힘쓰는 걸 좋아해.”
종민이는 남편이 종민이가 힘이 세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서 어떻게든 엄마를 이기려고 하지. 종민이는 엄마랑 놀다가 일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논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엄마는 종민이가 나중에도 사과 안 하는 사람이 될까 봐 예방 차원에서 혼내려고 하셨을 거야. 종민이는 노는데 엄마가 혼내니까 억울했을 거야. 그렇지?”
“예.”
종민이는 무척 공감이 간다는 듯이 남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와 종민이는 성향이 달라서 부딪치게 되면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안 보면 되지. 그런데 가족이라 안 볼 수 없으니까, 거리두기를 해야 해.”
“어떻게요?”
희재가 눈을 크게 뜨고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본다.
“서로의 상황이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혼란의 상황을 안 만드는 거지. 종민이는 엄마가 늘 시녀처럼 종민이에게 다 해주다가 가끔 여왕처럼 행동하시거든. 그러면 종민이가 혼란스럽지.”
종민이는 킥킥거리며 웃는다.
“종민이는 우리집에 온 지 2년이 지나고 3년째에 접어들어서 아직 가족이 뭔지 잘 몰라. 어떤 분에 의하면 30년이 걸린다고 하더라. 희재가 가족이 된 지 7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저 모양이잖니. 그러니 종민이는 어떻겠어. 종민이는 아직 엄마를 ‘퇴근하지 않는 보육원 이모’ 쯤으로 느끼고 있을 거야. 가족이 되려면 27년 남은 거야.”
희재와 종민이는 남편의 얘기가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고 한편으로는 웃겼는지 계속 크크 거리며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는 종민이가 하루빨리 성장해서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급해서 자꾸 혼내게 되고, 종민이는 안 나아지니까 계속 마찰이 생기게 되는 거지.”
나는 희재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자, 희재도 한마디 해야지. 어떻게 생각해.”
희재는 메모를 계속한다.
“저는요, 저도 아빠랑 같은 생각이에요.”
나는 대화가 길어질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뭔가 빨리 결론이 나야 다른 집안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만 하면 안 되고 잘못이 있으면 죄를 묻고 벌을 내려야지요.”
“싫어!”
종민이는 다시 삐죽인다.
“종민이는 엄마 얼굴을 쳤고 사과를 안 했어. 그리고 안 쳤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그것에 관한 벌을 받아야 해. 안 그러면 얘기가 안 끝나지.”
남편은 두 팔을 뻗어 식탁에 손을 내려놓고
“자, 잘못은 했는데, 벌을 받지 않으면 현재 시국 상황과 비슷하게 돼. 우리는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니 종민이는 어떤 벌을 받을지 말해 봐.”
“벌 안 받을래요.”
“그럼, 엄마도 말해 보세요.”
“게임을 끊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앞으로 쭈욱?”
희재는 놀래서 내 얼굴을 본다. 희재에게 게임 중지는 큰 처벌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은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괜찮아, 게임은 안 하지 뭐. 그리고 엄마는 종민이가 효도를 많이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금지를 금방 풀어 줄 거야.”
종민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자, 그리고 보상도 주자. 종민이는 엄마에게 사과도 하고 반성문도 쓰고 칭찬스티커 열 장도 모으자.”
“반성문은 안 쓸래요.”
“어, 자꾸 거부하면 2심 가는 건가?”
희재는 ‘미숙’이라고 쓰고 분류에 ‘사과’,‘지는 것’,‘가족 개념’이라고 쓰고 2심이라고 쓴다.
“2심 다음엔 뭐지?”
남편은 희재의 메모를 본다.
“대법원이에요.”
남편은 종민이에게 다시 판결한다.
“그래, 엄마에게 사과하고 칭찬스티커 열 장을 채워.”
종민이는 조금 억울하다는 듯 남편을 힐끔 쳐다본다.
“보상은요? 보상으로 뭘 줄 건데요?”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잘못해서 벌을 받는 건데 왜 보상을 주죠?”
남편은 고개를 들고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보상으로 자유를 주겠어. 벌을 다 받으면 자유가 있지.”
희재와 나는 ‘자유’라는 보상이 좀 생뚱맞게 느껴졌지만, ‘자유’ 돕기를 바라는 종민이와 남편의 의지를 알고 있기에 수긍하였다. 희재는 칭찬스티커 도형을 열 개 그려 냉장고에 부착한다. 그리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희재와 종민이는 바둑을 두고 있다.
종민이는 희재와 바둑을 두며 기분이 좋아 보인다.
“희재 형은 나한테 많은 걸 알려줘. 희재 형이 우리 형이라서 너무 좋아.”
나는 종민이의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어머~ 우리 아들, 너무 긍정적으로 말해줘서 좋다. 우리 아들 칭찬스티커 하나 줘야겠어~~”
나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