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민이는 6일째 백일해로 아동병원에 입원 중이다.
오늘은 명절 설 연휴이다. 어젯밤 우리 가족은 1인실 병실에 모여 새해 명절을 축하했다. 병실이지만,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설을 맞이하기로 했다. 종민이는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잔다는 말에 즐거워했고 형이 온다는 말에 더 즐거워했다.
“나는 형이 제일 좋아.”
“엄마보다 더 좋아?”
“엉, 엄마보다 형이 조금 더 좋아.”
“왜?”
“형은 내가 해달라는 거 많이 놀아줘.”
종민이는 아빠가 영풍문고에서 사다 준 새 학년 수학 문제집을 푼다.
“아, 쉽네.”
“그래?”
“엄마같이 풀어보자요.”
종민이는 문제집과 연필을 들고 털털거리고 오더니 내 옆에 바짝 앉는다.
“종민아, 새 학년이니까 처음 단원부터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싫어, 하고 싶은 거부터 할래.”
종민이는 문제집을 후루룩 넘기더니 평면도형 단원을 펼쳐놓고 문제를 푼다.
“어, 점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선을 반직선이라고 부르는구나.”
혼자서 척척 읽으며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문제 풀이가 끝나자, 다시 문제집을 주르륵 넘긴다.
“아, 분수 해봐야겠다.”
분수 단원 문제를, 한쪽을 풀 무렵, 종민이는 집중이 떨어진 듯 옆 침대 위에서 장기를 두는 남편과 희재에게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
희재와 남편의 장기가 끝나고 씻고 잘 준비를 하니 열 시가량이 되었다.
벌써 5일째 병실에 갇혀 있는 종민이는 종일 자고 또 자기 때문에 쉽게 잠이 올 리가 만무했다.
“엄마, 난 부모가 둘이야. 생부모랑 친부모.”
“그렇지.”
“태권도 관장님은 우리에게 부모는 하나밖에 없다고 하셨어. 그런데 난 둘이야.”
“일반적으로 그렇지.”
“일반적이지 않는 사람들도 얘기해 줘야지.”
“종민아, 엄마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있어서 참 좋아.”
“엄마, 나는 생부모가 보고 싶어.”
“그렇구나.”
“생부모가 너무 보고 싶어. 생부모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종민이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난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형, 나는 생부모랑 두 달을 같이 있었어. 형은 넉 달 같이 있었지? 난 두 달 동안 엄마랑 같이 있었는데, 얼굴이 기억이 안 나. 그래서 너무 보고 싶어.”
“그렇구나. 종민아, 생부모만 소중해? 엄마는 안 소중해?”
“엄마도 좋은데, 친엄마가 제일 소중해. 나를 태어나게 해 주셨잖아. 그게 제일 소중한 거 같아.”
“키워주신 부모는 안 소중해?”
“키워주신 것은 고마운데 태어나게 해 주신 게 제일 중요해.”
듣고 있던 희재가 한숨을 푹 쉬더니 한마디를 한다.
“종민이는 장단점이 있어.”
“그래? 뭐가 있는데?”
“종민이는 씩씩하고 사람들에게 먹는 걸 잘 사줘.”
“맞아. 그리고?”
“그리고 마음이 넓고 운동도 잘해. 그런데 단점은 은혜를 몰라.”
“내가 왜 몰라.”
“종민이는 가까이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의 은혜를 잘 몰라서 배은망덕해.”
종민이는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대꾸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듣고 있던 남편이 자자고 한다.
“희재야, 종민이는 잘 몰라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거니, 자거라.”
나도 서운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입양하는 것도 싫어.”
“왜?”
“그러면 생부모가 나를 못 찾을 거 같아.”
“종민아, 그건 그렇지 않아.”
“그러면 나중에 생부모가 찾아와서 같이 살자고 하면 같이 갈 거야?”
“응, 스무 살에 갈 거야.”
“만약, 내일 생부모가 와서 같이 가자고 하면 엄마도 보내줄게.”
종민이는 뭔가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이불에 비빈다.
“아, 싫어. 나는 못 갈 거 같아. 진짜 생부모가 아닐 수도 있잖아. 난 의심이 많아서”
“종민아, 언제든지 종민이가 생부모에게 가고 싶다면 엄마는 보내기 싫어도 보내줄 거야. 그러나, 지금 종민이는 엄마의 소중한 아들이야.”
종민이는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도 했다.
“난 커서 주니랑 살 거야. 주니가 소중해. 난 내가 제일 소중하고 그다음은 주니야. 그리고 생부모가 세 번째고 네 번째는 형아가 소중하고 그다음은 엄마야, 그리고 다음은 아빠야.”
“아빠는 왜?”
종민이는 아빠가 맛있는 간식을 많이 사준다며 늘 최고라고 하던 터였다.
“아빠가 밥을 다 먹으라고 해.”
희재의 한숨 소리가 다시 들린다. 희재가 쏘아붙이듯 말한다.
“너는 밥을 안 먹으면 병이 낫지 않아서 병원비가 1억이 나와서 엄마는 너를 다시 향진원으로 보내 버릴 거야.”
“1억이 나온다고?”
나는 사태를 진정시키고 싶었다.
“종민아, 아까 엄마가 뭐라고 했지? 종민이 아파서 병원비 많이 나와도 괜찮다고 했지? 아플 때도 안 아플 때도 종민이는 누구 아들이라고?”
“엄마 아들.”
“그래, 종민이는 아파도 안 아파도 영원한 엄마 아들이야.”
종민이는 혼자서 뒤척거리다가 옆에 누워있는 내 다리에 자기 다리를 떡 하니 올린다. 그러나 종민이도 나도 희재도 남편도 뒤척이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밖은 흰 눈이 펑펑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