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맥주
베트남 식당 중 일부는 맥주를 시키면 잔에 얼음을 가득 담아서 함께 가져온다. 나는 이상해서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이것을 왜 가져오느냐고. 그랬더니 직원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 미소지으며, 맥주를 따라 먹으라고 손시늉을 했다.
나도 웃음이 났다. 아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얼음이 녹으면 맛이 없어져서 더 마시지 못하는데, 맥주를 얼음에 타서 희석 시켜먹으라고? 맛을 포기하고 시원함을 선택하라는건가? 그렇다고 가져온 맥주가 미지근한 것도 아니었다. 매우 시원했다.
"이상하다. 왜 얼음에 맥주를 부어 먹는거지?"
어쨌거나, 나는 얼음에 맥주를 부었다. 그러자, 얼음에 닿은 맥주는 많은 거품을 내며 끓어올랐다.
"아~ 난 최대한 거품이 나지 않게 맥주를 따른 후 그것을 마셨을 때 탄산의 청량감을 즐기는데, 이건 맥주도 희석되고 탄산도 다 빠지고. 이게 도대체 뭐야~"
그 맥주를 들이키자 정말 시원했다. 내 예상대로, 탄산도 거의 빠졌고, 맛도 희석되어서 닝닝하지만, 정말 시원했다. 그냥 시원한 맥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지만, 난 내가 먹던 방식의 맥주가 훨씬 더 좋다.
하지만, 나는 3일간 계속 베트남 방식대로 맥주를 마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기존의 것을 하나씩 깨면서 자유로움을 느꼈고, 치유됨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든 것은, 힘든 일이 발생하고, 우릴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인데, 여기에 덧붙여 내가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 역시 큰 몫을 한다는 것을 베트남에 와서야 알았다. 외부의 여러 요인들도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는데, 나 역시 나 자신을 감독하며 스스로 묶어 더욱 숨쉬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베트남에서 깨달은 중요한 한 가지는, 한국으로 돌아가도 외부 요건은 하나도 바뀌지 않겠지만,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 거였다. 그리고,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베트남 오기 전에는 눈꼽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4일째부터는 더이상 얼음에 맥주를 부어먹지 않았는데, 우연히 베트남 카페에서 읽은 글에 설사의 주된 이유는 식당에서 주는 얼음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고, 실제로 얼음을 먹지 않자, 3일간 했던 설사가 멈췄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았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방식으로 나의 옛 방식을 깨보았으니. 그리고 자유로움을 맛 보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