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실화입니다
21살의 나로 들어가며.
"오늘은 꼭 암막커튼 달자!"
4평짜리 자취방 안으로 햇빛이 강하게 들어와 도통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특히 야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자는 날이면 더더욱. 심지어 오늘은 토요일 야간특근을 마친 일요일 아침이에요. 아, 토요일 야간특근은 정~말 하기 싫습니다. 이 돈 안 벌고 주말에 푹 쉬며 여가생활을 즐기고 싶어요. 예를 들면 걸어서 5분 거리인 CGV에서 센치 있게 혼자 심야영화를 보고 들어와서 맥주 한 잔. 캬~ 생각만 해도 낭만에 취하네요. 아고, 말이 옆으로 샜네요.
안대를 써 봤는데, 걸리적거립니다. 잠이 더 안 와요. 그래서 암막커튼을 달기로 했습니다. 저기 신발장에 택배가 놓여 있네요. 3일 정도 방치해 둔 것 같아요. 12시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택배 뜯을 힘도 없어요. 근데 오늘은 꼭! 달아야겠어요. 주야 2교대, 하루 12시간 근무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삶을 위해서.
설명서에 나와 있는 대로 하니 금방 달았습니다. 와! 불 끄니까 진짜 껌껌하네요. 이제야 꿀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아, 설치하는데 10분도 안 걸린 것 같아요. 이렇게 금방 끝낼 걸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신발장에 방치해 뒀네요. 뜯기만 하면 10분 만에 달 것을. 시작이 반이라는 말. 이럴 때도 쓸 수 있는 거 맞죠!?ㅎ
해가 저문 건 확실한데 정확한 시간을 모르겠네요. 우선, 커튼 달고 한 시간 낮잠 잤습니다. 토요일 야간특근이 싫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어요. 일요일 아침에 퇴근하고 다음날 바로 주간 출근입니다. 이러면 잠 패턴이 꼬여버려요. 잠을 계산하면서 자야 합니다. 한 번은 낮잠을 오래 자서 밤에 잠이 안 오는 거 있죠. 그래서 날밤 새고 월요일 주간 출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정말.. 진짜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어요. 그 뒤로 낮잠을 잘 것 같다 싶으면 타이머를 맞추고 눕습니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로.
심야영화는 안 봤지만 맥주 한 잔 마셨습니다. 네~ 치카치카했습니다^^ 저는 이제 코 자러 가볼게요. 늦어도 오전 6시 30분엔 일어나야 합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zZ
타짜의 고니님. 싸늘하십니까? 저도요. 개운해요. 개운하면 안 되는데 개운해요. 그리고 여전히 껌껌하네요.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하.. 월요일 주간 근무 때 자취방에서 처음 보는 숫자였어요. 네. 오전 11시 OO분.. 조장님과 회사 동료분들의 부재중 전화가 엄청 와있네요.. 왜 알람소리조차 못 들은 거죠? 아.. 알람을 설정 안 했네요. 2교대를 하다 보니 매주 일요일엔 알람을 다시 설정해놔야 하거든요. 주간근무 전용 알람, 야간근무 전용 알람. 이렇게요. 조장님께 우선 전화를 드려야 하는데.. 무서웠습니다. 그냥, 전화드리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어요. 고민 끝에 저는.. 늦잠을 자서 출근은 안 한 이 상황을 회피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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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조장님을 찾아뵀었습니다. 저기 흡연장에 계시네요.
“조장님 죄송합니다..”
“어디 아팠어?”
“아뇨.. 저.. 그 사실..”
“사실 뭐.”
“제가 일요일에 암막커튼을 설치했거든요. 근데, 암막커튼 효과가 너무 좋네요.. 진짜 세상모르고 잤습니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입니다. 전화를 드렸어야 했는데 상황 자체가 무서웠습니다. 압니다. 다 핑계죠. 죄송합니다 조장님.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
“아 웃으면 안 되는데..ㅋ 형은 너 고생하는 거 아니까 그냥 넘어가 주고 싶은데, 파트장님께서 단단히 화나셨어. 너 시말서 써오래.”
“시말서가 뭐예요..?”
(단단히 화나셨다 → 시말서. 엄청 안 좋은 ’서‘인 건 확실하다..ㅠ)
“반성문 써봤어? 그래. 근데 사회에서 쓰는 반성문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암막커튼 때문에 무단결근 했다고 솔직하게 적어라ㅋㅋ“
“네.. “
상기 본인은….
(무단결근 하게 된 계기를 상세히 적으며)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암막커튼 떼어내겠습니다.
31살의 나로 돌아오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안녕하세요? 무명독자입니다.
그때 당시 회사 생활 2년 차였던 21살의 저. 암막커튼의 효과(?)로 기절해서 무단결근을 했습니다. 이게 실화라니.. 어이가 없죠..? 아직 어리니까, 잘 모르니까라고 포장조차 안 되는, 책임감 없는 그때의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사실 같이 일하는 동료분들께 제일 죄송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공정을 누군가가 해야 했으니까요.
대기업 생산라인처럼 항상 예비인원이 갖춰진 상태도 아니었고, 심지어 극단적인 인건비 절약으로 인해 돌아가면서 1인 2공정을 해왔습니다. 근데 사람 한 명이 더 없었으니 그날 하루 얼마나 힘들게 일하셨겠어요.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조장님과 동료분들께서 오히려 제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힘든 공정 돌아가면서 하자고, 죄송한 마음 갖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속으로 얼마나 울컥했는지요..
시말서는 이때를 마지막으로 절대! 쓸 일이 없게끔 착실하게 회사생활을 했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덧붙이며.
이번 글은 이렇게 써야겠다!
하는 영감을 제게 준 책.
(혼잣말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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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독자)서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긴 한데..
다음 화에 써 볼까요?!
참고로 두 번째 이야기도 어이없게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