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지 마세요. 죽을 수도 있어요.
2023년 4월에 있었던..
“이게 다 대변이에요.”
주치의선생님께서 복부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 주시고 계신다.
입원하고 나서 제대로 된 변을 본 적이 없어 항상 복부가 팽만한 상태로 생활을 했다.
사진상으로만 봐도 가스가 나올 틈 도 없이 대변으로 가득 찬 복부 상태에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딱딱한 변으로 조금은 누는데..
그건 그렇고, 변이 가득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가 아픈 감각이 없다고? 아이고 두야.
주치의선생님께서 내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변비약을 드셔보세요.
약한 물약이라도 처방해 드릴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음.. 그냥 물을 자주 마실게요.
변비약 진~짜 먹기 싫어요.
한 번은 자꾸 변비약을 권하시는 주치의선생님께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라며 다소 공격적인 어투로 말씀드린 적이 있다.
다음날 회진 때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변비약이 너무 싫다 하며 설명해 드렸다.
이런 식으로 주치의선생님께서 권하신 여러 가지의 해결방안을 완강히 거부했다.
물론 주치의선생님 말씀대로 대변약을 처방받거나, 관장을 해서 해결하면 된다.
근데 그러기는 너무나도 싫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줄줄 흐르는 대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해서..
무엇보다 입원 초기에 있었던 일처럼
재활치료를 받다가 기저귀에서 빠져나온 묽은 변 때문에 바지에 묻고 좋지 않은 악취에 당황해하는 선생님들의 표정을 봤을 때.
바지를 뚫고 나온 변이 재활배드에 묻어 한숨이 저절로 나왔을 때.
대변으로 인해 모든 시선이 나한테 쏠릴 때.
샤워실에서 혼자 발목까지 묻은 변을 씻어 내려가며 ”이렇게 살아야 하나.. “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어 우울해졌을 때.
그 외에 자잘하게 일어난 일들 때문에
대변에 대한 뭔지 모를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생겼다.
어우. 대변 이슈는 진짜
손가락은 물론이고 발가락까지 세도 모자를 정도네.
그래도 딱딱한 변으로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게 어디냐. 찝찝한 기저귀가 아닌 쾌적한 속옷도 입을 수 있고, 언제 어디서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할까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고.
하반신 신경이 마비된 나는, 자연스레 대소변이 마렵다는 감각도 마비된 상태다.
그나마 미세하게라도 있는 소변감각으로 내 나름대로 루틴을 정해서 누고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소변을 봤으니, 앞으로 3시간에서 4시간 내에 소변을 보면 되겠다. 물은 한꺼번에 너무 마시지 말자. 운동하면서 복압에 힘을 주면 소변이 나올 수 있으니.
이런 식으로 하루의 소변 루틴을 최대한 유지하며 생활하니 소변을 누는 건 문제가 없다.
제일 문제는 바로 대변이다.
대변이 마렵다는 감각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고로 다른 신체기관의 감각을 빌려 해결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식사 직후나 운동을 하고 있는 도중 뒤통수가 찌릿! 하는 감각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느낌이 드는 즉시 화장실에 가서 앉아보면 성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딱딱한 변으로 아주 조금이지만..
병원 안이라 혹시라도 대참사가 일어나면 바로 해결할 수 있어 그나마 마음이 편하지만,
외출할 때는 진짜.. 기도가 답이다.
이제 퇴원도 얼마 안 남았는데.. 걱정이네ㅠ
제발. 하느님 아버지 제발.
외출할 때 가방에 있는 여분의 속옷을 사용할 일이 없게 해 주세요.
“30분에서 1시간 정도 참으셔야 해요.”
위생(배변) 패드는 깔았고
음.. 혹시 모르니 기저귀까지 차고 있어야겠다.
퇴원이 보름정도 남은 시점의 나는, 아주 큰 결심을 실천하고 있다. 아마 입원 이래로 가장 큰 결심인 듯싶다.
여기 와서 약한 물약 형태의 변비약은 먹어봤어도 좌약을 넣는 건 처음이네
입원 이래로 컨디션이 제일 최악인 하루였다.
아랫배를 만지면 딱딱한 형태의 대변이 손으로 느껴질 정도로 심각했고 허리를 약간만 움직여도 복부에 통증이 느껴져 하루 종일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니;; 내가 이 정도로 통증을 느끼는 거면 얼마나 아픈 거야? 가늠이 안 가네..
재활치료도 없는 주말이어서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컨디션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머리는 어지럽고 속도 매스꺼워 밥도 못 먹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최근에 운동을 힘들게 해서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 싶었지만 그거랑 격이 다른 피로감이었다.
뒤통수가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고
마려운 감각이 느껴져도 효과를 보려면 더 참아야 한다는 간호사님 말씀에 20분 정도 더 참았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후에 딱히 그렇다 할 느낌이 없었지만 기대를 품고 요양보호사님의 도움을 받으며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시원하게 해결할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잿더미 같은 물 설사와 약간의 가스만 나올 뿐.
아 얼마나 몸 안에서 썩혀 있었으면..
몇 분 더 앉아있어 봐도 소식이 없어 변기 옆에 있는 벨을 눌러 요양보호사님께 침대로 옮겨 달라고 부탁드렸다. 원래는 혼자서 잘 움직이지만, 이 때는 정말.. 식은땀에 온몸은 다 젖어있었고 움직일 힘조차도 없었다.
침대로 옮겨 눕고 간호사님을 호출했다.
야간 간호사님께서 오시더니.
“좌약으로도 못 보면 관장을 하셔야 해요”
식은땀은 멈출 생각이 없었고
열까지 나 이제는 그저 몸에 썩혀있는 대변을 빨리 빼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네 관장해 주세요.”
요양보호사님이 걱정이 되셨는지 내게 오셔서
“화장실에서 해결하지 말고 옆으로 누워서 힘주세요.
제가 치워드릴게요. “
요양보호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듬과 동시에
옆자리 어르신 한분과 반대편 두 환우분께 죄송한 마음이 공존했다. 그러나 정말. 정말로 변기에 앉을 힘도 없어 그렇게 하겠다 말씀드리고 신호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렸다.
어지러움증은 극에 달했고 눈꺼풀에 힘은 점점 없어져 실눈을 뜨다시피 했다.
아 뭔가 이상한데. 이 느낌 뭐지? 나올 거 같은 신호인가? 힘 한번 줘볼까?
손을 최대한 뻗어 창문을 열고 다시 옆으로 누워
있는 힘껏 힘을 줘봤다.
제대로 확인도 하기 전에 빨간색 형태가 희미하게 먼저 보였다. 고개를 돌려 제대로 확인했는데.
위생패드와 기저귀가 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힘을 살짝만 줘도 피가 콰르르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혈변의 형태가 아니었다. 약간의 갈색과 피로 이루어진 액체였다. 너무 놀라서 바로 요양보호사님 호출벨을 세 번 연속 눌렀다.
어머!
요양보호사님이 사태를 보시고는 바로 뛰어 나가 간호사 한 분을 불러오셨다.
즉시 바이탈 체크를 했다.
뭐지? 이게 맞나?
병원 원장님까지 오셔서 바이탈 체크를 다시 해봐도
오차범위 2를 벗어나질 않았다.
그냥 이대로 눈 감고 자고 싶었다.
살짝 눈을 감아봤는데 고통이 점점 줄어들어 편안함만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원장님께서 이런 나를 보시고는
의식 잃으시면 안 됩니다. 정신 차리고 계세요.
원장님의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
피는 멈출 생각을 안 하고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다.
이거 꿈인가..?
그저 눈을 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눈을 감았을 때에 느껴졌던 편안함이 너무 달콤했어서.
이제는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저절로 감기기 시작했다.
그럼과 동시에 원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희미한 이명소리처럼 들려졌다.
눈 감지 마세요. 죽을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