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엔 재능이 없어서요

모순을 품은 위선자.

by 무명독자

여기를 다시 올 줄이야..

처음 왔을 때가 허리 수술하기 전이었는데.

저 반대편 벽 쪽에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이동한 나는.

왜 다시 중환자실로 왔는지에 대해 회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이 시간에서 까지 그 답을 부정하려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답 나와 있잖아. 인정해..

장애를 받아들였다 했지만, 장애인처럼 걷고 있는 걸 부끄러워했던 모순.

장애를 받아들였다 했지만, 장애 그 자체를 부끄러워했던 모순.

장애를 받아들였다 했지만,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걸 부끄러워했던 모순.

그러면서, 옆자리에 계신 어르신이 기저귀 갈아달라고 부탁하는 걸 보고 안쓰럽게 생각했던 위선자.

그러면서,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재활의 시작이라 하며 건방지게 훈수를 뒀던 위선자.

그러면서, 휠체어 타고 다니는 장애인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던 위선자.

완전 마비가 아니어서 보다 쉽게 재활을 할 수 있었던 사실 자체를 지워버렸던 위선자.

장애를 받아들였다고 나 자신에게 까지 거짓말을 한 모순덩어리이자 도덕적 우월감의 위선자 보다 더 악질인 위선자. 바로 나.


하나씩 나열해 보니 기분이 어때?

그깟 바지에 똥 지리는 거, 그렇게 창피했어?

너 장애인이잖아. 하반신 신경이 마비된 장애인이잖아.

그러면서 옆에 계신 어르신께서 기저귀 갈아달라고 부탁하는 걸 보고 왜 안타깝게 생각했어?

어르신의 모습이 곧 너의 모습인데. 왜 부정했어?

휠체어 타고 다니는 환우분들을 왜 안타깝게 생각했어? 아직 젊고 운이 좋아서, 완전 마비가 아니라 보다 쉽게 재활을 할 수 있어서 걸을 수 있었던 건데.

그걸 왜 모르고!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다녔어?


너는 모순을 품은 위선자야.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네가 장애인이라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 이제라도. 제발.


…..


이런 나에게 도돌이표 같은 중환자실행이

어쩌면 모순을 품은 위선자의 업보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걸까? 회고하고 또 회개하라고.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간호사님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말할 타이밍을 재고 있다.

30분 전에 기저귀를 갈았으나,

갈자마자 가스와 함께 설사가 자꾸 나오고 있다.

느껴지는 찝찝함이 아까 먹은 수면제의 효과를 이기고 있다.


내 앞을 지나가고 있는 간호사님께.

“저. 기저귀 좀 갈아주세요.”


돌아오는 대답으로.

“하.. 아까 갈았잖아요.”


너무 찝찝해서요. 제발 갈아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순간 목이 턱 막혀서 그러지 못했다.


화가 나기보다 너무 슬펐다.

재활병원 입원 당시에 간병인께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부탁했는데 한숨을 푹 쉬며 나를 쳐다봤을 때가 생각났다. 벌레 보듯이 쳐다보며 말하니 진짜 내가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의 간병인이랑 지금의 간호사랑 뭐가 다른 거지?

2년 동안 열심히 재활한 결과가 이건가?

지금 내 꼴이 처음이랑 다른 게 뭐지?

아. 이거 또한 내 업보구나.


다시 앞으로 지나가는 간호사님에게.

“저 진짜 찝찝해서 안 되겠어요. 바쁜데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교대하기 전의 간호사님은 갈아달라고 하면 갈아주셨거든요. 기저귀 갈아야 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거면 알려주세요. 그때까지 조용히 하고 기다릴게요. 이번만 제발 갈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옆으로 누워서 타인이 갈아주는 기저귀에 안도하는 나.

이런 나 자신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장애인이니까.




이후 3일 정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아버지께서 2년 전과 똑같이 기저귀를 갈며 나를 케어해 주시는 모습에 죄송하면서 또 감사한 마음이다.


일반병실로 옮겨지고부터는 빠르게 몸이 회복되었다.

수치상으로는 저혈압에 가깝지만 그래도 정삼범위 내로 돌아왔고,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설사에서 형태가 있는 대변으로 돌아왔고, 또 입맛도 돌아왔다ㅋ


퇴원을 앞두고 짐을 싸고 있는 나는. 순간 많은 생각들이 교차됐다.


내가 생각해 왔던 퇴원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10일 정도를 누워만 있으니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네.

그렇지만 괜찮아.

잘 먹고 잘 싸며, 다시 몸을 끌어올리면 되지.

마음가짐을 다시 세팅하자.

이제야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거 같으니.


”아버지. 집 들어가기 전에 미용실 들렀다가 가요. “

“미용실? 왜?”

“머리 빡빡 밀고 들어가게요.”

퇴원까지의 진료기록 입니다.


추신.

안녕하세요? 무명독자입니다.


글쓰기엔 재능이 없어서요 브런치북 연재의 끝이 보이네요.

다음 주에 연재할 ‘글쓰기엔 재능이 없어서요 [꼬리말]‘을 끝으로 브런치북 연재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까지 몸관리 잘하며 연재를 마치는 게 지금 저의 큰 목표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명독자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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