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2년 뒤 2025년 6월의 어느 날.
아침 6시 5분, 15분, 30분 알람에는 내가 나름대로 세워놓은 규칙이 있다.
6시 5분 알람은 ”아침인 걸 인지해라. “ 하는 알람.
6시 15분 알람은 “이제 일어나야지?” 하는 알람.
마지막으로 6시 30분 알람은 “아직도 안 일어났어? 너 이러다가 늦을 수도 있겠는데? “ 하는 알람.
사실 30분 알람을 듣고 일어나도 크게 문제는 없다.
허나,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강가에도 예기치 못한 큰 바위가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변수를 항상 생각한다.
아침에 ClC(간헐적 자가도뇨)를 이용해 소변을 누다가 갑자기 뒤통수가 찌릿? 하면 변기에 최소 10분은 앉아있어야 한다. 이 방법은 퇴원하고도 꾸준히 지켜온 나만의 대변보는 방법이다ㅋ
그리고 시력이 많이 안 좋은 우리 집 강아지 빼찌가 여기저기에 소변이랑 대변을 쌌으면? 아이고. 치우는 데 오래 걸리는데..
그러므로 오늘도 15분 알람을 듣자마자 칼 같이 기상!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하며 빼찌가 배편 패드에 잘 쌌나 확인 후 화장실로 들어가 CIC와 양치, 샤워까지 깔끔히 한다.
샤워를 마치고 간단한 스킨케어와 선크림까지 바른 후 옷을 입는다. 약간의 TMI를 하자면,
무채색 와이드팬츠에 무지티만 색깔별로 돌려 입는 나는 옷 고르는데 시간이 1분도 안 걸린다ㅋ
옷도 다 입었고, 나가기 전에 확인해 보자.
일회용 소변줄 챙겼나? OK
멸균장갑이랑 젤 챙겼나? OK
대참사를 대비해 여분의 속옷 챙겼나? OK
어제 읽던 책 챙겼나? OK
모두 OK. 출근준비 완료!
한 손엔 지팡이 나머지 한 손엔 책을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가고 있다.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가방을 던지다시피 놔둔 다음, 지팡이에 의지한 채 오른발을 먼저 운전석 매트에 올리고 살포시 앉은 다음 왼발을 마저 매트에 옮겨 놓는다. ‘차를 탄다’라기보다 ‘차에 나를 옮겨 놓는다’가 맞는 거 같다. 둘 다 똑같은 말인가..?
내 차는 다리를 안 써도 움직일 수 있는 자율주행차다.
는 거짓말이고..(머쓱) 오른발의 섬세한 컨트롤을 대신할 핸드컨트롤러가 장착된 차다. 앞으로 밀면 브레이크, 뒤로 당기면 엑셀. 세상 참 좋다. 나 같은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인도 운전을 할 수 있다니.
아침 7시 10분.
회사로 출근하는 길은 항상 차가 막힌다.
가만 생각해 보면 부지런한 사람들 진짜 많은 거 같다.
나도 나름대로 부지런하다 생각했는데. 어림없는 소리.
새벽 언제에 나와도 항상 사람이 있고 항상 차가 지나다닌다. 저절로 겸손해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다. 장애인이 되고 건강만큼이나 취업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이런 내가 하루 4시간 30분만 일해도 너무 행복하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와 같은 도로를 달리고 있는 부지런한 사회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감사하다.
주차를 마치고 시동을 끄기 전 확인한 시간은 8시 20분. 나는 도착시간 8시 30분을 넘겨 본 적이 없다.
아! 있다. 앞에 말한 예기치 못한 변수들을 제외하고..
여하튼.. 출근완료!
나는 경기도에 위치한 어느 복지관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일자리 사업이라는 제도를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 아니.. 내가? 전혀 어울리지도, 책이랑 친하지도 않은 내가 도서업무라니ㅋ
도서관 안으로 들어와 제일 먼저 불을 켜준다. 벽시계는 8시 32분을 가리키고 있다. 9시 근무시간까지 30분 정도의 여유. 천천히 책 정리하고 청소까지 마쳐도 남아버리는 시간이 너무 좋다. 마음도 편하다.
간혹 왜 이리 빨리 오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식당을 예로 들면 9시 오픈시간에 손님이 오셔서 식사하고 계실 때 옆에서 청소하고 있으면.. 좀 그렇잖아?
빨리 와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거처럼, 나 역시 빨리 와서 이용자분들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지 뭐.
여하튼.. 이용자분들 맞이할 준비 완료!
도서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 많다. 특히 시각장애인이신 어머님을 부축하며 들어오시는 따님.
두 분께서 팔짱을 꼬옥 끼고 들어오시는 걸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다 못해 사르르 녹아내린다.
손으로 점자책을 읽으시는 어머님 옆에서 같이 책을 읽고 계신 따님의 뒷모습을 책상에서 바라보다 눈시울이 붉어진 적도 있다.
배가 꼬르륵거리는 걸 보니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나 보다. 9시부터 13시 30분까지 근무하는 나는, 아쉽게도? 점심시간이 없다ㅠ 어떻게 보면 이용자분들이 가장 많이 오는 시간대가 점심시간대라 당연하다.
퇴근하고 뭐 먹지?ㅋ
점심시간이 끝난 13시부터 퇴근까지는 이용자분들께서 읽은 책들을 소독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오시는..
장애아이를 키우는 어머님께서 점심시간 동안 유아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12시 50분부터 자연스럽게 스트레칭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장애아이가 유아방에서 뛰어놀 때 어머님이 푹 쉬었음 하는 바람으로 “책 어지럽혀도 되니 마음껏 놀아도 됩니다. 가시면 제가 다 치울게요! “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은 어머님은 쉬러, 아이는 맘껏 놀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오신다.
또래 아이보다는 느리지만, 본인만의 시간대로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 아이. 아고 기특해라^^
그나저나..
몇 시지? 어라?
“사서선생님~ 저 퇴근해 볼게요~”
올해 1월부터 퇴근 후 나의 일상은 과장 조~금 보태서 항상 똑같다. 우선 샤워하고 나와서 밥을 챙겨 먹은 다음 나랑드사이다 한 캔을 들고 책상에 앉는다.
그러고 나서 블루투스 마우스와 키보드를 거치대에 올려놓은 핸드폰에 연결하고 브런치스토리 어플을 켠다. 글이 잘 안 써져도 우선 책상에 앉는다. 앉아 있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써 내려 가지더라.
와.. 근데 벌써 마지막 연재네.
내가 이렇게 무언가를 꾸준히 해본 적이 있었나?
일이야 뭐.. 돈은 벌어야 해서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된 이후부터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거 같아서 괜스레 뿌듯하네.
주말 푹~쉬었으니, 마지막 연재글 멋지게 마무리하자! 근데 어떤 식으로 시작하지?
아. 이 시작글을 쓰기 까지가 항상 오래 걸리네. 처음 틀을 잘 잡아놓으면 쫘르륵 잘 써지던데.
내 서랍, 글쓰기 클릭.
이렇게 써 내려가볼까?
우선, 퇴원 후의 내 일상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독자님들께 감사인사로 마무리. 흠.. 괜찮은 거 같은데?
좋아! 그럼 이제 써 볼까?!
아침 6시 5분, 15분, 30분 알람에는……..
안녕하세요? 무명독자입니다!!(폴더 인사)
제 이야기. 재밌게 읽으셨나요?
재밌게 읽으셨다면 소리 질러~~..(머쓱)
지금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연재를 마쳤다는 후련함과 성취감.
제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신 것에 대한 기쁨.
그러면서 글을 쓰기까지 과정에 대한 슬픔.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진심으로요.
특히, 독자님들께서 달아주시는 댓글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말이 존재했구나.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힘들고 지칠 때, 몸이 아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마다 댓글을 다시 보러 오곤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철저하게 재능의 영역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감히 시도할 수 조차 없는 그런 영역.
근데 어느 순간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황보름 작가님 에세이에 브런치스토리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뭐지? 브런치스토리? 하면서 어플을 다운로드한 생생한 기억이 있네요. 잉? 근데 이게 아무나 쓸 수없고 작가승인을 받은 사람만 쓸 수 있더라고요.
아! 면접 같은 거구나. 어떤 주제로 써야 합격을 받지? 고민하다가,
내 이야기를 써볼까?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지만, 그러면 내 인생 자체가 지워질 거 같아 그러지 도 못하는.. 아픈 손가락 같은 기억이라고 할까요?
결정하는 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본인의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겐 큰 용기가 필요한 이야기더라고요.
25년 1월 06일의 저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또 안아주고도 싶네요.
용기 있게 ‘글쓰기엔 재능이 없어서요’라는 브런치북을 오픈해 줘서 고맙다고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네요.
빠른 시일 내에 다음 브런치북 구상을 마치고 찾아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무명독자 배상
추신.
가시기 전에..
제가 그린 짱구 한 번 보고 가세용ㅋ(윙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