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동아마라톤 10km 출전기
어려서부터 나는 달리기가 싫었다.
어려서 잘 못 뛰던 아이는 당연하게도 커서도 잘 못 뛰었고 늙은 지금도 못 뛴다.
하지만 잘 걷는 미인 할머니 되기가 목표인 나는 잘 뛰는 미인 할머니도 되고 싶다.
그런 이유로 작년부터 러닝 크루 몇 군데를 기웃거렸는데 적응이 쉽지 않았다.
첫째 일단 나는 인싸가 아님. 외향 에너지 부담스러움.
둘째 달리기를 잘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잘하고 싶지는 않은 애매한 마음가짐.
러닝 모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 만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나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 또한 강했기 때문에 나는 상기의 두 가지 이유로 그들과 결이 다름을 느꼈다.
(내가 본 러닝크루 한정 그랬다는 얘기다. 일반화하면 안 되겠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되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의지마저 미적지근한 나는... 가끔 마라톤 참가까지가 감당 가능한 수준인 것 같다.
작년 6월에 신청받아서 올해 3월에나 개최된 2025 동아마라톤.
동아마라톤은 1931년부터 시작된 국제마라톤 대회로 춘천마라톤, JTBC 마라톤과 함께 국내 3대 메이저 마라톤 중 하나로 꼽힌다.
메이저라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넓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를 마음껏 달릴 수 있다는 점만큼은 좋다.
아무튼 그 유명하다는 동아마라톤 당일
전날 전라북도 등산 투어로 피곤한 노구를 이끌고 잠실 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비 오고 바람 불어 추웠다.
젊은이들은 반바지에 반팔이었지만 나는 출발 전까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패딩에 핫팩까지 필요했다.
명성답게 정확히 시간 맞춰 진행 잘됨.
나는 사전에 성적 제출을 안 해서 D 그룹 배정됨.
제출했어도 어차피 맨 마지막 그룹이었을 거라 괜찮음 ㅋㅋ
초반에 종아리가 너무 무거워서 완주 못할 것 같았는데 반환점까지만 가자고 마음먹고 뛰었다.
3km 지나고부터 온몸이 두들겨 맞은 걸 같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반환점도 못 갈 줄 알았는데 그 상태로 버티며 달리다 보니 아픔이 사라졌다.
이게 러너스 하이라는 것인가? 달리면서 기분이 한껏 상쾌해지는 게 러너스 하이라고 생각했는데 되게 아픈 몸이 호르몬 덕에 덜 아파지는 것이었다.
중간에 비가 거세지기도 하고 노면 곳곳이 파이고 물웅덩이가 있어서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아쉽지만 어제 등산도 했겠다 완주만 하기로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교통콘 치울 때 같이 들어올 정도의 느림보였는데 작년부터 1시간 15분-17분 사이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는 데 큰 기쁨을 느낀다.
첫 동마 출전, 기록은 후졌으나 사람은 후지지 않았다.
부상 없이 완주한 나 자신 멋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