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침범하는 사람은 단지 무례하거나 둔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개 자기 삶의 중심이 불안정할수록, 타인의 경계로 파고든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욕구로 균형을 잡는다.
무례와 통제는 종종 불안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으면, 불안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선택에 개입하고, 사적인 감정에 참견하며, 경계 없이 충고를 한다. 그 모든 것은 사실 ‘자기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심리학자 프롬(Erich Fromm)은 이를 ‘권위주의적 성향’이라고 설명했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이렇게 썼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최초의 메커니즘에는 인간이 개인적 자아의 독립을 포기하고, 개인적 자아에 결여된 힘을 얻기 위해 자기 외부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그 자신을 융합시켜 가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이들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 독립적 자아를 포기하고 외부의 권위에 굴복한다. 권위주의는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의 태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권위에 순응하고 복종한다는 개념이 포함된다. 이는 강자에게 복종하고 약자를 지배하려 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프롬은 권위주의 발생 배경에 마조히즘적 성격과 사디즘적 성격도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사디즘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성적 만족을 얻는 가학적 성애를 말하는데 타인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면서 만족감을 얻고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 힘과 권위를 갖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사디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더 큰 힘을 갖고자 하는데 프롬의 말에 따르면 이는 실로 그들의 내면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힘에 대한 욕망은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 자아가 고립되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참다운 힘이 결여되어 있을 때 이차적인 힘을 얻고자 하는 절망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이 나약하고 고독하기 때문에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힘을 강하게 욕망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권위주의적인 사람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자율성을 침범한다. 그 이유는 ‘내가 너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종종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좋은 의도’로 포장한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그러나 그 말이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고 선택을 제한한다면, 그것은 선의가 아니라 침해다.
타인을 침범하는 사람의 중심에는 통제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 통제는 불안과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그 불안을 직면하지 않는 한, 그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경계를 넘어서려 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통제의 충동에서 단호히 거리를 두고, 무례함에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이다.
그들의 불안을 이해해 줄 수는 있지만, 그 불안이 우리를 조종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통제에 침묵으로 응답하는 것은, 그 통제를 허락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침묵 대신, 경계를 표현하는 언어를 준비해야 한다.
참고
Fromm, E. (1941). Escape from Freedom. New York: Farrar & Rinehart.
Brown, B. (2012). Daring Greatly.
Forward, S. (1997). Emotional Black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