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일정 수준의 통제욕을 갖고 있다. 이는 생존 본능과 연관된다. 내 삶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혼란을 줄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욕구다. 문제는, 이 통제욕구가 타인을 향할 때다.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불안이 올 때 통제 대신 관찰을 선택한다.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지 않는다.
반면, 불안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을 안정시키려 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을 끊임없이 조정하려 하고,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지려 한다. 그들의 언어는 질문보다 지시이고, 경청보다 판단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이 통제하려는 대상은 종종 감정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된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동료라는 이름으로 지배하려 들 때 주변인은 고통받게 된다.
타인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이들에게 일시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정감은 본질적인 해결이 아닌 가짜 안정감이다. 불안의 근원은 대부분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외부 환경을 억제하거나 타인을 조종함으로 잠시 불안감이 해소되는 기분이 들 수 있으나 내부의 신호를 무시하고 외부 통제에 몰두하는 사람은 결국 같은 불안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
건강한 불안 대처는 통제가 아닌 구조화(structuring)에서 출발한다.
구조화란 혼란 속에서 명확한 틀이나 질서를 재구성해 예측 가능성과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는 심리적 전략이다.
외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과 사고를 정돈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구체적 언어로 정리하고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지를 명확하게 이름 붙이는 데서 시작한다.
감정을 명명하는 행위는 감정과 나 사이에 한 겹의 거리를 만드는 것이며, 이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다.
예를 들어보자. 갑작스러운 업무 변화로 인해 과중한 부담을 느끼는 직장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팀원에게 불필요한 지시를 반복하고, 업무 보고를 집요하게 요구하며 스스로도 불편한 관계를 만든다. 그는 자신의 불안을 통제를 통해 해소하려는 것이다.
이 상황을 구조화해 보자. 그는 우선 다음과 같이 자신을 인식한다. “내가 두려운 것은 단순히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의 정확한 분량과 우선순위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누가 언제 어떤 일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도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또는 “나는 막연히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걸 들키고 그로 인해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두렵다. 그래서 일을 자꾸 통제하고 확인받고자 하는 충동이 생긴다.”처럼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막연한 두려움, 불안 같은 감정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행동중심적으로 명명한다.
‘정보 부족’ ,‘평가에 대한 공포’ , ‘무능감 노출의 두려움.’ 등으로 세분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인 계획 수립이나 언어화가 쉬워진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과 ‘이번 주 안에 정리해야 할 일’을 목록화한다. 자신의 내면의 불안을 직면한 후에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바뀔 수 있다.
팀원과의 관계에서도 "이건 내 불안이지, 팀원들이 부족한 게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고 말의 태도를 바꾼다. 이는 자신과 관계의 구조를 재편한 것이다.
구조화는 단순한 심리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정리하는 태도이며, 불확실한 세계에 자신만의 질서를 부여하려는 성숙한 자기 대화다. 계획을 세우는 것, 감정을 명명하는 것,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 관계의 범위와 깊이를 정하는 것, 그리고 불안이 발생했을 때 나만의 대응 루틴을 만드는 것. 이 모든 행위가 구조화다. 이러한 구조화는 통제처럼 즉각적인 효과를 주지는 않지만, 가짜 안정감이 아닌 진짜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를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구조화를 유도시킬 수 있을까? 쉽지 않지만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는 있다.
앞서 말했듯 타인을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삶의 불확실함을 감당하지 못할 때, 주변 사람을 조정하려 한다. 나의 선택을 바꾸려 들고, 감정을 해석하려 하며, 내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짐작하려 든다.
이때 우리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 지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을 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때 그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 볼 수 있다.
핵심은 상대를 직접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자기 불안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는 질문과 경계 설정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상대방이 자신의 불안을 통제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인식을 끌어내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말속에서 통제의 동기를 구성하는 감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일이 당신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게 안 되면 어떤 일이 생길 거라고 느끼시나요?” 같은 질문은 상대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내 스케줄에 개입하는 상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매일 나의 작업 현황을 시시각각 확인하려 하고, 미세한 일정 변경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나는 반발하기보다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OO님께서 이렇게 자주 확인하시는 걸 보면, 염려되는 부분이라도 있으신가요? 혹시 어떤 부분이 제일 걱정되세요?”
이 질문은 그들에게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대답에 따라 구조화의 제안을 해볼 수 있다.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까, 일정을 미리 알아야 불안하지 않다”라고 말한다면,
“그럼 매일 오전에 전체 일정 요약을 메일로 드리는 방식은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OO님도 예측이 쉬워질 것 같아요.”라고 구조화를 제안한다.
막연한 불안을 ‘예측 불가능성’, ‘책임에 대한 압박’, ‘실패에 대한 두려움’처럼 보다 구체적인 감정 언어로 정리하는 것이 구조화의 시작점이다.
단, 상대방에게 구조화를 유도할 때 절대로 "그건 당신 혼자만의 불안일 뿐이에요"라는 식으로 직면시키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은 인정해 주되, 반응의 방식은 재구성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선제적으로 구조화된 틀을 제시하는 것이다. 통제형 인간은 예측 가능한 구조를 좋아한다. 따라서 “이 일은 제가 맡아서 목요일까지 정리하고, 그 뒤엔 브리핑드릴게요”라는 식의 명확한 계획을 제시하면, 그들은 굳이 개입할 이유를 잃는다. 예측 가능성은 통제욕을 무력화하는 강력한 전략이다.
결국, 타인의 통제욕을 꺾는 가장 부드럽고 효과적인 방식은 그 사람의 불안을 ‘통제’가 아닌 ‘구조’로 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타인을 통제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도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