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를 트다

그래도 깨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by 이열

큰 노력 없이도 대체로 무탈하게 살아왔다. 학교에, 회사에 쉽게 안주하는 편이었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편안함은 삶이 주는 작은 선물 같았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세계가 고이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소름이 돋았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는데. 나는 지금 어떤 체취를 풍기는 걸까? 이 안락함이 사실은 정체인 걸까?


무언가를 해야 했다. 계속 흐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작은 것들이었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영역에도 물꼬를 텄다.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은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결과는 아직 없다. 때로는 마음고생하며 괜한 짓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늦은 거 아니냐며, 왜 편하게 살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도 가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래도 깨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대견하다. 결과는 둘째다. 약동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움직이고 있다는 것, 흐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만하다.




사진: pixabay

이전 01화인생이라는 카드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