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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 Jan 02. 2025

아버지와 베텔게우스

그는 그저 변함없이 우리 가족을 비추는 커다란 존재였다

IMF 시기에 아버지가 실직을 했다. 그는 잠시 쉬는 동안, 나에게 둘만의 여행을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는 살가운 부자 사이가 아니었고, 나는 밖을 쏘다니며 노느라 바쁜 시기였지만,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여행 중 아버지는 본인이 구상한 사업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평소 보기 드문 반짝거리는 눈을 보며, 나는 용감한 그 결심을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택시운전사가 되었다.


“3년 동안 경력을 쌓으면 개인 사업자가 될 수 있대.”


이유는 따로 묻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안정적인 선택을 했을 거라 여겼다. 멋은 없었지만 듬직했다. 그는 그저 변함없이 우리 가족을 비추는 커다란 존재였다.





아버지가 개인택시를 장만한 날, 우리 가족은 동네 횟집에서 광어회에 소주를 마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상기된 얼굴로 이따금 내 회사 생활은 어떤지, 동생이 생각하는 진로는 무엇인지 물었을 뿐이었다.


“운전 오래 하느라 힘들지?”


어느 날 내가 묻자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건강할 때 우리 가족 위해서 열심히 벌어야지.”


단순한 그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 오늘 퇴근 언제쯤 하니? 마침 너네 회사 근처라서.” 좀처럼 없던 일이었다. 약속 시간, 회사 앞으로 온 아버지 택시에 가볍게 올라탔다. 나중에 어머니가, 아버지가 좋아하더라고 전해주었다. 택시 운전하는 아버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반갑게 인사했다고. 나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가 새벽 운전을 나가기 시작했다. 돈이 더 잘 벌린다는 이유였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은 아버지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늘 활력 넘치던 아버지가 가끔 초췌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정감은 어느 날 갑작스레 무너졌다.


나는 술에 취한 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조용히 내 방문을 열고 말했다. “아빠가 많이 다친 것 같대.”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고가 있었대.” 그 순간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소름이 끼쳤지만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버지는 심장충격기로 여러 번 몸을 들썩여도 깨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조금 흘러내렸고, 나는 그걸 보며 그가 곧 정신을 차릴 거라고 기대했다.


“11시 56분… 사망하셨습니다.”


의사의 사망 선고 후, 세상은 전과 미묘하게 달라졌다. 주위의 소리들이 작아지고, 모든 것이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부예지고, 심장이 아팠다.


아버지가 없는 집은 시끄러운 정적에 휩싸였다. 늘 같은 자리에 있던 아버지의 슬리퍼, 벽에 걸린 모자, 탁자 위의 메모들. 그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때리고 짓누르며 아버지의 부재를 다그쳤다.





베텔게우스라는 별이 있다.


오리온자리의 적색 초거성으로,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중 하나. 지구에서 약 640광년 떨어져 있으며, 직경은 태양의 약 1,000배에 달한다. 생애 마지막 단계에 있는 별로, 곧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단다.


별은 폭발할 때 우주를 찬란하게 물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최후를 목격할 때는 베텔게우스가 이미 한참 전에 사라진 후다. 우리에게 도달한 찬란한 빛은 640년 전의 흔적일 테니까.


우연히 알게 된 이 별에 나는 즉각 매료되었다. 이유를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베텔게우스는, 아버지를 떠오르게 한다.


묵묵히 빛을 발하는 거대한 존재. 불안정한 상태로 때론 밝기가 변하기도 하는 별. 마침내 소멸할 때 온 우주에 퍼져나갈 광채와 별의 조각들.


아버지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일을 나가시던 모습. 그의 영면 후에도, 나에게 남긴 사랑과 의지는 나의 가족들에게까지 비치고 있다.


베텔게우스는 언젠가 폭발해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이미 파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밤하늘에서 베텔게우스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폭발이 뿜어낼 빛은 긴 시간 동안 우주 곳곳에 머무를 것이다. 아버지도 그렇다.

그 사실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베텔게우스를 찾는 나를 설레게 한다. 그 별이 저기 있듯, 아버지도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 그러니 나는 오늘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묵묵히 삶을 일구어간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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