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세상에 먹이는 통렬한 한 방인 걸까
최근 귀국한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다. 반가움도 잠시. 선배 콧구멍 밖으로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 코털에 온 마음을 빼앗겨 선배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코털마저 나를 반기고 싶었던 것일까. 아침에 거울을 봤다면 녀석의 존재감을 모르고 지나칠 수 없었을 텐데. 의식적으로 눈을 마주치려 했으나, 점점 시선은 코로, 그 아래로 떨어졌다. 젠체하며 위용을 뽐내는 녀석이 그곳에 있었다. 건방지게도 구부정한 모습으로. 당당한 녀석의 자태는, 선배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몸가짐에서 여러 가지를 읽을 수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과 바른 자세만으로도 기본적인 신뢰를 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것이 완벽한데 거기에 코털 하나가 삐져나온다면? 단정한 사람이 코의 털을 관리하지 못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지극히 낮을 것이다. 머리, 수염, 귀, 옷, 손톱 모두 말끔한데, 눈과 가장 가까운 기관에서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 보이는 것을 용납한다고? 그렇다면 이건 혹시 어떤 메시지가 아닐까? 말로 전하기 어려운, 간절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신체 일부를 빌어 표현하는 것은 아닐는지.
용모 단정.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다. 현대인은, 헤어스타일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관리에 시간을 들여야 하고, 수염을 길러볼까 생각하다가도 윗사람 눈치에 매일 아침 면도를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내 머리, 내 수염이지만 마음대로 길렀다간 "너, 머리가 왜 그래?", "면도 좀 해라." 같은 소리를 듣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데 코털은 어떤가.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쉽사리 얘기하기 어렵다. "코ㅌ…"까지 했다가도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황급히 뒷말을 거두기 마련이다.
일부러 한 가닥 길렀다고 생각해 보자. 코털이 보이기 전과 후의 세상이 달라 보일 수 있다. 답답한 세상에 먹이는 통렬한 한 방이라고나 할까. 내 모습을 보며 당황하는 사람들의 눈을 읽고, 속으로 은근한 미소를 짓는 스스로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남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아니 오히려 남들 시선을 흔들고 조종하는 자신이 자랑스러울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것이 궁극의 락 스피릿? 범인인 나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선배, 궁금합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코털을 뽐내고 있는 것인가요?
이 모든 생각이 헛된 망상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웅크리고 있던 코털이 오후에 기지개를 켠 것일 수도 있고. 선배는 바쁜 일정에 거울조차 못 보다가 밤에 민망해하며 코털을 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선배는 늘 코털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수가 계속된다면 실수 아닌 라이프스타일이다. 따라서 최대한의 관용으로 선배를 포용하기로 하다가, 다시 마음을 거둔다. 선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구려요. 구리단 말입니다. 락 스피릿이라면 일견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선배, 제발 그 코털 뽐내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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