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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 Jan 09. 2025

차가운 바람 속 소소한 승리

우린 왜 새벽 댓바람부터 뛰고 있는 것일까

겨울 새벽 러닝에는 특별한 각오가 필요하다. 달리며 몸이 데워지기 전까지, 나를 사정없이 할퀴는 찬바람을 견뎌내야 한다. 사실 나는 추위보다 콧물이 더 부담스럽다. 한기가 얼굴을 어루만지면, 기지개를 켜고 세상 구경하려 고개를 들이미는 녀석 말이다. 훌쩍이며 달리다 보면 보통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지만, 한동안 코 안을 간지럽히는 그 느낌이 무척 성가시다.


겨울에는 해돋이가 늦기 때문에 정경을 눈에 담는 운치도 없다. 어스름 이불 아래 드문드문, 가로등 밑 검은 강, 검은 풀, 노란 길을 마주할 뿐이다. 러너 동료들도 거의 볼 수 없는 시간이라 고독을 즐겨야 한다. 이따금 보이는 사람들도 온몸을 꽁꽁 싸맨 검은 형체일 뿐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우린 왜 21세기 지구에 태어나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새벽 댓바람부터 뛰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나는 지금 달린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내 SNS 피드에는 러닝 인증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달리며 찍은 풍경, 기록 인증, 그리고 모두가 얘기한다. 뛰라고, 뛰면 너무 좋다고. 친구들이 나를 자꾸 엄동설한 속으로 등 떠민다. 이래서 주변 사람이 중요하다. 영향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아무튼 나는 달리기가 맛있다. 뜀박질의 희열은 하루키 형님이 가르쳐 주셨다. 역시 머릿속에 무엇을 넣는지에 따라 나는 바뀐다.


한강을 달린다. 동은 아직 트지 않았다. 콧물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 놈!’ 하며 자주 숨을 크게 들이켠다. 다행히 잦아들어, 손으로 훔쳐야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불현듯 길거리에서 한쪽 콧구멍을 손으로 막고 다른 쪽으로 힘차게 코를 푸는 할아버지들이 생각난다. 도대체 왜들 그러시는 것일까. 나도 나이가 들면 그 행위가 자연스러워지는 걸까. 아직 알 수 없다. 알고 싶지 않다. 아마 아닐 것이다.


양화대교를 반환점 삼아 집으로 유턴한다. 땅거미에 익숙해진 내 눈에 오렌지 색 여명이 쏟아진다. 세상이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여의도에 선 높은 빌딩들이 본연의 위용을 드러낸다. 그래 나는 이런 풍경을 원했다. 주황빛 그라데이션이 아름다워서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이다. 달리고 있으니 이미 그런 셈이지만. 내일 나는 다시 집을 나서길 망설일지도 모른다. 지금 정취를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가, 내일의 나에게 이 멋진 거 또 보러 가자고 해야지.


훤히 밝은 길을 따라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다. 나는 오늘도 이기고 시작한다. 아니다, 아직 부족하다. 수전 핸들을 돌려 잠깐 찬물로 샤워한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다가 수전을 거두고 목욕을 마친다. 강한 고양감이 온몸에 퍼진다. 깊은 고통 속에 빠졌다가 다시 올라올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겨울 새벽 러닝에는 특별한 쾌감이 따라온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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