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청남방 입고 힙하게 살게요
가을·봄에 즐겨 입는 청남방이 있습니다. 간절기에 입기 좋은 아이템이지요. 대략 2년 전에 구매했습니다. 사이즈가 커서 편안하면서도, 맵시가 납니다. 하의와 매치를 잘한다면 힙스터 느낌도 낼 수 있어요. 색깔이 너무 연하지도 진하지도 않은 청색이라 아무 때나 부담 없이 입기 좋습니다. 근래 구매한 옷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요. 요즘 출퇴근 시간 부쩍 쌀쌀한 거리를 걸으며, 입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합니다. 사실 이번 가을은 청남방을 한 번도 못 입고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관 이삿짐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사를 마칠 11월에나 다시 꺼낼 수 있거든요. (※ 작년 10월에 쓴 글입니다.)
임시 거처로 옮길 때, 짐을 가볍게 하려고 아우터는 하나만 챙기기로 했습니다. 청남방과 휘뚜루마뚜루 입는 검정 재킷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청남방을 더 좋아하지만 검정 재킷이 활용도가 높아 보였습니다. 커버하는 TPO의 범위가 더 넓다고 판단했어요. 검정 재킷은 짐 가방에 눌러 담고, 청남방은 아쉬운 마음과 함께 이삿짐센터에 맡겼습니다. 별생각 없이 잊고 지내다 어제 아침 문득, 지금 내가 청남방을 입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의 변곡점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실용적인, 남들도 쓸모 있다고 생각할 만한 일들을 택해왔습니다. 고전 문학을 좋아하던 중학생 이열은 남자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을 느끼고 고등학교에 이과로 진학했구요. 재수를 하며 문과로 전향했지만, 흥미를 느끼던 심리학 대신 취업을 위해 경상 계열에 입학했습니다. 경영학을 공부하며 마케팅에 재미를 느꼈는데요. 재무 직무에 지원해야 회사에서 경쟁력 있게 봐줄 것 같아 해당 루트로 입사했습니다. 삶에서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기보다, 가상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실리를 쫓았습니다.
어느덧 40대에 이르고 보니, 하루 기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이 ‘불안’이 되었습니다. 종종 지난 선택이 불러온 후회도 마음에 번집니다. 안전하게 살고 싶어 따르던 길이, 오래 지나지 않아 명백히 끊길 거라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따라 살았다면 후회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 불안이 기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각했다면 다음은 행동입니다. 50대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인지 내 식대로 살고 있을 것인지는 순전히 지금 저의 작은 움직임들에 달렸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선택의 기준은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 지입니다. 삶을 애호하는 것들로 채울수록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요. 2회 차 업마저 남들 따라 선택할 순 없습니다. 허나 과감히 시도하기 전에,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영역부터 찾아야겠지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의 질을 높이고, 작게 시작하는 일을 여럿 만들어 헌신할 분야를 발굴하겠습니다. 무난한 검정 재킷이 아니라 좋아하는 청남방 입고 힙하게 살게요.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