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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the guts

확실히 몸이 강해지면 마음도 굳건해집니다

by 이열

몇 달 전, 직장에서 외부 회사와 미팅을 했습니다.

상대방의 질문 하나에 반사적으로 대답을 했는데, 글쎄 상무님이 제 대답이 틀렸다며 친히 정정해 주셨지 뭐예요. 다소 민망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딱히 타격은 없었어요. 평소 같으면 실수를 곱씹으며 ‘아, 망신이다. 어쩌지?’ 했을 텐데, ‘에이 몰라, 결국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임.’ 하고 말았습니다.

다만 왜 스트레스가 없는 건지 궁금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뱃속이 편안한 것에 신경이 미쳤어요.


저는 간혹 긴장을 심하게 할 때 위가 옥죄고, 스트레스가 클 때 창자가 꼬이는 것 같은 고통이 옵니다.

어릴 적엔 지금보다 더 빈번하게 겪었었는데, 명상, 운동, 찬물샤워 등 루틴으로 단련하다 보니 많이 잦아들었어요. 확실히 몸이 강해지면, 마음도 굳건해집니다.

당연히, 과음을 한 다음 날엔 숙취와 함께 배짱도 움츠러들어요. 작은 스트레스도 크게 다가와 결국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게 되죠. 약해진 몸은, 정신 공격에도 취약합니다.


have the guts라는 영어 표현이 있습니다. ‘용기/배짱이 있다’는 뜻인데요. 이 표현을 처음 봤을 때, 구절과 의미가 쉽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장이랑 용기랑 무슨 상관인지 도통 의문이었죠. 그런데 사회 생활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겪다 보니 머리에 쏙 들어왔습니다.


미팅을 했던 날은 술을 입에 대지 않은지 5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보통 2, 3일에 한 번씩 알코올을 복용하던 저에게는 드문 시기였어요. 잦은 알코올 대사로 피로했던 장(gut)이 모처럼 푹 쉴 수 있었겠죠. 신진대사가 활기차게 돌아가니, 작은 실수가 마음에까지 헤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 가볍게 튕겨나갔을 거예요.


장과 뇌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고 불리는 신경 경로로 직접 연결되어 있대요. 장내 미생물이 호르몬 생성에 영향을 미쳐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밝혀졌고요. 감정 안정을 담당하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은 대부분 장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장이 건강하면 덜 스트레스받고 더 행복해진다는 결론이 가능한 거죠.


have the guts.

그냥 gut도 아니고 the guts라면 죽일 듯이 날 노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끽해야 찰과상을 줄 뿐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는 겁니다.


올해 들어 음주 양과 횟수를 줄였습니다. 좀 더 터프하게 인생을 탐닉하고 싶기 때문인데요. 맛있는 술을 멀리하자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다음 생이 있다면 엄청나게 건강한 장을 갖고 태어나 마음껏 술을 마셔도 몸과 배짱이 말짱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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