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육각남의 고백

나 자신이 작은 도형 안에서 비좁게 서있는 기분이었습니다.

by 이열

재작년 일이에요. 회사에서 리더십 평가 결과를 받았습니다.


신생 조직을 맡아 나름 열심히 분투했고, 조직원들 코칭에도 꽤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기에 ‘최상’은 아니더라도 ‘상’ 정도의 결과는 나오겠지, 하고 내심 기대했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보다 잘한 사람도 없지 않아?’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평가 결과를 확인할 때까지 기대 반 설렘 반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중간’


전 영역이 골고루, 딱 가운데였습니다. 평가표는 육각형 그래프로 표시되었어요. 작고 아담한 육각형 하나가 뿅.


“육각남이긴 하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 육각형이 좀 타이니 하고 귀여웠습니다. 헛웃음이 나왔어요. 한편으로는 조금 쓸쓸하기도 했고요.

‘이 정도면 그래도 잘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작은 도형 안에서 비좁게 서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유튜브에서 봤던 주언규 님의 일화가 떠올랐어요.

사업이 힘들어지던 시절, 그가 유명한 마케터를 찾아가 조언을 요청했더니 그분이 이렇게 되물었다고 합니다.


“키워드 광고 몇 개 하세요?”

“20개 정도 합니다.”

“다른 회사는 1만 개도 해요.”


그 짧은 대화에서 느꼈던 벽이 얼마나 높았을까요?

20개도 나름 열심히 한 숫자라고 생각했을 텐데, ‘1만 개’라는 지표 앞에서 자신의 최선이 얼마나 소소한지 실감했을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열심과, ‘세상이 알아주는’ 열심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그동안 스스로를 위로했던 ‘나름 열심히 했다’라는 말이 실제로는 남들에게는 티도 안 나는 수준이었다는 사실. 민망함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리더십 평가 결과는 ‘사회가 평가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어요.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다른 한편으론 이 간극을 좁혀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는 순간이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가표의 귀여운 육각형은 변화를 촉구하는 심볼이었어요. 안일한 기준을 넘어, 세상에 맞춰 내 노력을 더 단단히 쌓아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마음만 먹었다가 그냥 지나간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떠올리니, 결국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걸 절감했고요.


지금은 팀원들과 사소한 대화라도 많이 나누려고 합니다. 상대에게 서로 소통이 된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고 가는 말들이 점점 더 구체적이고 솔직해지는 걸 느끼며, 작은 실행이 만든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종종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번엔 얼마나 더 진심이었나? 누가 봐도 인정할만한 노력을 했던가?”


다음번 리더십 평가에서는 조금 더 자란 육각형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진 : pixabay

keyword
이전 06화직장의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