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불운이 닥쳤을 때 흔들리지 않는 프로페셔널리즘
미용실을 갈 때면 남자 원장님을 선호합니다. 남자 머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별다른 설명 없이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관적 판단) 거울 속 제 머리는 늘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데 ― 두상이 못생겨서 ― 그나마 믿을 만한 미용사를 만나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커트 잘하는 곳'에 정착하는 과정은 미식가가 숨은 맛집을 찾는 것만큼이나 지난합니다. 미용실을 바꿔야 할 때면, 새로운 사람에게 머리를 맡기는 불안함에 심장이 두근거리죠.
"조금만 짧게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 간단한 대화 후에 펼쳐지는 상황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미용사는 '조금'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또 어떤 미용사는 '짧게'에만 집중해 허허벌판처럼 바싹 밀어버리기도 합니다. 한 번은 '조금만 짧게'라는 주문에, 미용사가 머리 위쪽은 그대로 두고 옆과 뒤만 깎아버려 머리 위에 버섯이 핀 적도 있어요. (부글, 하지만 제 불찰)
제가 바리깡을 선호하지 않아 가위로만 컷을 부탁드릴 때, 대다수는 "왜요? 바리깡으로도 잘할 수 있어요, 더 깔끔하게 나와요"라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프로는 "아, 그런 느낌을 원하시는구나. 그렇게 해드릴게요"라고 고객의 요구를 존중하지요.
저는 천 번의 가위질로만 가능한 아름다운 밀리미터의 세계가 있다고 믿거든요. 기계적인 획일성 대신 가위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층과 질감의 차이. 그 작은 차이가 머리카락의 움직임을 결정하고, 결국 얼굴의 인상까지 바꿉니다. 까다롭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소박한 헤어 컷 인생에서 두 번 정도 '프로 중에 프로'를 만났는데, 감사하게도 직전 원장님이 그중 한 분입니다. (지금 원장님도 좋습니다)
예전에 원장님께 머리를 맡기고 있을 때였어요. 미용실 특유의 샴푸 향과 드라이어 소리가 섞인 공간에서 잠시 명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쿵!'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원장님은 "어어?! 으아아아!" 하는 비명과 함께 가위를 내려놓더니 급히 뛰쳐나갔습니다. 멍한 상태로 거울 속 절반만 정리된 제 머리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고 있었어요.
한참 후 돌아오신 원장님의 얼굴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 죄송합니다. 제가 밖에 주차해 놓은 오토바이를 차가 들이받았어요."
주차해 둔 자신의 오토바이가 파손되어 수리에 한 달 이상 걸릴 거라며, 올 시즌 라이딩은 끝이라며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평소 과묵했던 분이 억울함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저도 오토바이 좋아하는데...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안쓰러운 마음으로 노력형 T의 위로라도 드렸더니, 원장님의 눈시울이 붉어지시더군요. 자신의 소중한 물건이 망가졌을 때 느끼는 그 허망함과 서글픔, 특히 늘 함께하는 애마라면 더욱 그러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놀라웠던 건, 그 와중에도 원장님은 다시 가위를 들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컷을 마무리하셨다는 점입니다. 전방위 밀리미터 단위를 체크하시며 잡초 같은 삐죽이들을 잡아내는 모습이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가 난들 어떤가, 고객에게 집중하는 모습에서 빛나는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지불을 마치고 미용실을 나서며 뒤돌아보니, 원장님이 창가에 서서 멍하니 길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망가진 오토바이를 생각하며 슬픔을 곱씹고 계셨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머리는 늘 그랬듯 완벽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돌려보며 감탄했습니다. 일에서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면 깊은 존경심과 신뢰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주 업무 중 실수로 중요한 파일을 날려버렸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날 저는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동료들에게 짜증을 냈고, 마감 시간을 넘겨 겨우 일을 마쳤습니다. 원장님처럼 평정심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파일을 복구하는 대안을 더 빨리 찾고, 팀원들과의 관계도 해치지 않았겠지요. 사소한 불운이 닥쳤을 때 흔들리지 않는 프로페셔널리즘,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닌 삶의 지혜였습니다.
불현듯 원장님이 다시 가위를 잡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도저히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키는 그 모습. 마치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바위 같았습니다. 망가진 오토바이 앞에서도 의연했던 손길이, 어쩌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요.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