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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위의 춤

혼자 줄 위를 걷는 것보다 함께 춤춰야 재미있지 않겠는가

by 이열 Mar 18. 2025

“A 선배 결국 옷 벗는대..."

옛 회사 동료의 카톡에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마음 한구석이 쌉싸름했다. A 선배, 그를 떠올리자 조각난 기억들이 슬라이드처럼 빠르게 넘어갔다.


회식 자리에선 후배들 술잔을 채우며 인심 좋게 웃었지만, 사무실에선 공적을 독차지하는 데 능한 사람. 타인을 디딤돌 삼아 올라서는 법을 알았던 그는, 이제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어 무대에서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다른 회사의 B 선배도 위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A와는 정반대였다. 무뚝뚝했지만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성과를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날 이 자리까지 밀어올린 건 너희들이야"라는 그의 말은 허세가 아닌 진심이었다.


직장이란 곳에서 우리는 모두 줄 위를 걷는 외줄타기 곡예사다. 줄의 폭은 좁고, 아래는 까마득하다. 균형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끝에 힘을 주고, 팔을 벌린다.


선배 A와 B처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줄을 타다가 어느 순간 중심을 잃는 사람들을 본다. 누구도 영원히 줄 위에 머물 수 없다는 냉정한 진실.


후배들을 떠올렸다. 아직 그들의 눈빛엔 불이 살아있다. (얘들도 늙었지만) 한 후배는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선배님, 뭐든 처음엔 어렵지만 시작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제가 요즘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달아올랐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도전하고, 성취하려는 태도. 주변을 활기차게 물들이는 열정의 온도.


내가 좋아하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성공한 자는 선배에게 배우고, 크게 성공한 자는 후배에게 배운다."


선배들의 경험이 정해진 루트를 그린 지도라면, 후배들의 시각은 미지의 영역을 향하는 나침반이다.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닦인 길만 좇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가로막는 울타리 너머까지 내다보아야 한다.


다음 주,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난다. 이야기를 나누며 머릿속 낡은 줄을 새것으로 교체할 생각이다. 줄타기는 결국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줄 위에서 홀로 빛나는 스타가 되기보다, 모두가 함께 춤출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옛 남사당패에선 줄을 타는 사람을 '어름사니'라 불렀다. 어름사니가 가장 화려한 연기를 펼칠 때는 아래서 북을 두드리고, 꽹과리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동료들이 있을 때가 아니었을까? "얼쑤!" 하는 함성 소리에 어름사니의 발걸음이 더 경쾌해졌을 거다.


A 선배처럼 오르막만 바라보며 줄을 타다 균형을 잃을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언젠가는 내려올 거 B 선배처럼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신명낼 것인가. 혼자 줄 위를 걷는 것보다, 함께 춤춰야 재미있지 않겠는가.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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