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퇴사는 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우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자폐 관련 자료 탐색에 나섰습니다. 근데 ‘자폐 치료’만 검색창에 쳐도 너무 많은 정보들이 나옵니다. 언어치료, 뇌파치료, 미술치료, 놀이치료, 감각치료, ABA, 플로어타임, 식이요법 등 하나하나 제대로 공부하기도 벅찹니다.
제가 최종적으로 저희 아이에게 맞는 치료법에 정착하기까지는 대략 9개월의 긴 여정이 있었습니다. 사실 자폐 증상이라는 것이 아이별로 천차만별이라 치료법도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결국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언어치료센터를 찾아가봤습니다. 하선이는 이때도 ‘음~’이라는 소리 이외는 전혀 발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음에도 일단 아는 게 워낙 없으니 등록을 했습니다. 다른 센터와는 달리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상주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신뢰가 갔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의 선생님을 주 3회 (40분 수업, 10분 상담) 만나고, 대략 분기별로 한 번씩 전문의와의 별도 상담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두 분 열심을 다해주셨고 세심하게 상담을 해주셨습니다. 가끔 "하선이가 이런 발음도 했어요!”라고 하시는데 사실 제 귀에는 딱히 그렇게 들리지는 않아서 ‘전문가는 다르겠지’하면서 희망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전문의와의 상담이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그동안 선생님들께서 열심히 기록하셨던 것을 토대로 아이의 발달 상황 및 앞으로의 치료 방향성을 듣고 싶었으나 결국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듣는 얘기가,
“궁금한 것 있으세요?”
물론 서울대병원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훨씬 적은 수의 아이들이 있었기에 그 이상을 바랐던 것은 부모의 욕심인걸까요? 한 번은 남편이 상담하러 갔다가 너무 열받아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음소거 시위를 한 적도 있었더라구요.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결국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 개월 늦게 시작한 다른 치료는 시작 후 확실히 좋아지는 부분이 느껴졌지만 언어치료의 단독 효과라고 할 만한 것이 명확하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품고 있던 희망의 씨앗이 꺾일 때쯤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습니다.
하루는 선생님과 상담 도중 언뜻 생각이 나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우리 아이 정도면 얼마나 오래 다녀야 할까요?”
이에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답하시길,
“최소한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발달이 느릴 경우 대학교 때까지 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저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고 솔직히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다녀야 한다고?! 이걸 치료라고 할 수 있나?’
왜 초기에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분의 말이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전문가라도 아무 생각 없이 맡겨버리면 안되겠다라는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일단 9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만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