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를 만40세에 가졌습니다.
생일도 비슷해서 딱 40살 차이입니다.
결혼도 늦었는데다가 임신도 늦어져 시험관 시술에 들어갔는데 감사하게도 한번만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담당 선생님 말씀 그대로 따르느라 자연 분만으로 출산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죠.
처음 태어났을 때는 잘 몰랐지만 점점 개월 수가 지나면서 사랑이 겹겹이 쌓이는 것이 느껴지더라구요. 물론 그렇게 이뻐하다가도 육아의 고단함에 병든 닭처럼 널부러져 있을 때도 태반이지만 ‘내가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구나’라고 놀랄만큼.
그렇게 사랑이 커질수록 아이와의 나이 차이가 거슬렸습니다. 사람은 순서대로 오지만 갈 때는 순서대로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보통의 다른 엄마들 대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은거죠. 특히나 저희 남편은 외동이고 저는 남동생이 있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사촌도 없습니다. 한번은 양가 부모님, 제 동생까지 해서 온 식구가 여행을 갔었는데 몇 십 년 뒤에는 이 아이 혼자만 달랑 남는구나라고 불현듯 생각이 들어 섬짓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행 다녀온 그 다음 주 산부인과를 예약했습니다. 아이를 갓 출산했을 때만 해도 다시는 못하겠다라고 했지만 혼자 남을 아이를 생각하니까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검진을 하니 선생님께서는 난자 수가 많이 줄어들었으니 할거면 바로 진행하자고 권유하셨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원하는 건 가족 중에 저밖에 없었습니다. 남편도, 양가 부모님도 반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너무 밀어붙이나 싶어서 잠시 홀드하고 있었습니다.
자폐 진단은 바로 이때 났습니다.
진단 결과가 나온 바로 그 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한창 타고 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입양이라도 할까?’
둘째라면 손사레치던 남편에게도 자폐 진단은 충격이었던가 봅니다. 제가 아마도 남편의 이런 의외의 발언에 제 정신줄을 붙잡은 것 같습니다. 남편도 많이 힘들어하니 나부터 정신 차려야겠다고.
남편도 이내 정신차리고 입양 이야기는 쏙 들어갔지만 저 역시 둘째 출산 얘기도 쏙 들어갔습니다. 일단 저부터도 자신이 없었고 우선 아이의 상황이 급했기 때문에 먼 미래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자폐에 있어서 가장 떨어지는 것 중에 하나가 사회성인데 형제도 사촌도 없고, 동네도 새로 이사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하다보니 대부분 저와 아이만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보다 다양한 사람들 특히 또래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대화는 어려울지언정 노출 및 관찰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좋은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형제들이 있는 가정이 참 부러웠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더 지나서 저도 둘째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레 없어졌지만 ‘그때 그냥 미친 척 하고 밀어붙일걸..’이란 생각은 가끔 나기는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라는 가정은 허망하기에 자폐 진단 초기 때부터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들과 인연들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더 격렬하게 안고 이 여정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