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말인데 왜 알람을 아침부터 걸어놓은 거야'
금요일 밤 알바를 마치고 기절하듯 잠든 김과장.
오전 내내 울리는 알람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핸드폰을 더듬어 알람을 끄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알람을 삭제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손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다.
전쟁 같은 한 주를 보내고 겨우 찾아온 휴식시간인데
알람 따위에게 질 순 없지.
~부르르릉~
하, 이번엔 또 뭐야.
결국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확인한 김과장은
대학 동기에게 온 메시지를 본 순간, 그대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야, 오늘 xxx 결혼식인 거 알고 있지? 출발했어?』
[신랑 xxx와 신부 △△△의 결혼식
○○○○웨딩홀 3F, 토 11:30분]
'어휴, 다행이다. 겨우 맞춰왔네.'
웨딩홀 입구에 걸려있는 친구부부의 결혼 안내 판넬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라면 다들 심기일전해서 깔끔하게 차려입고 온다는 결혼식이었지만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그날의 OOTD(outfit of the day)를 고민할 틈도 없이
금요일까지 입다 빨래통에 넣어둔 셔츠와 슬랙스를
다시 꺼내 입고 부리나케 튀어와
결혼식 시작 직전, 그날의 주인공인 친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김과장은 식이 끝나자마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바로 뷔페로 향했다.
“과장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그래, 너 아르바이트한다며? 정확히 뭐 하는 거야?”
만족스러울 만큼 접시를 가득 채워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을 묻던 와중 드디어 김과장의 차례가 왔다.
"아, 나 부업으로 주말에 서빙알바하고있어."
있는 그대로를 담백하게 내뱉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1. 근황 렉카형
“헉, 갑자기 무슨 서빙알바? 그걸 왜 해?"
"뭔 일 있었어? 하긴, 너희 회사 요즘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있던데"
투잡을 시작한 데엔 반드시 드라마틱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는 부류.
일단 뒷배경부터 파악하려 한다.
걱정을 가장하곤 있지만 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이 느껴진다.
2. 호기심충족형
“진짜? 원래 그런 데 관심 있었어?”
"우와, 알바를 한다고? 어떤 기분이야?"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건 어떤 느낌인지,
회사 밖의 삶은 어떤 지 살펴보는 중립적 관찰자들.
비교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지만,
자기 인생에는 없는 선택지를 구경하듯 묻는다.
3. 갓생찬양형
"완전 갓생 아냐? 대단하다"
"힘들진 않아? 나 같으면 못해'
투잡 한다고 말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반응.
회사-집만 쳇바퀴처럼 오가는 삶을 산다는 것에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갓생이라는 말 뒤에는 ‘정상 범주 밖’이라는 인식도 살짝 섞여 있어 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4. 체면중시형
"그래서 한 달에 얼마나 버는데?"
"그거벌자고 일 끝나고 또 일해? 차라리 주식 단타 치는 게 낫지 않아?"
알바까지 하면서 궁상맞게 겨우 그 돈을 벌어야 되냐는 회의적인 유형.
똑같이 돈을 벌어도 노동이 아니라 수익으로 벌어야 ‘근사한 돈’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이 중에 '근사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5. 커밍아웃형
"사실 나도 투잡 중이야"
"돈 들어오는 재미가 쏠쏠하지? 나도 그 재미로 해ㅋㅋ"
조심스레 자신의 부업을 공개하는 유형.
다들 말을 안 하고 있을 뿐,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다양한 형태의 부업을 듣고 있으면 왜인지 모를 동료애가 생긴다.
밥 먹으러 왔다가 거의 청문회 수준의 질문 폭격을 받은 김과장은
‘그냥 집에서 누워 있다가 라면이나 끓여 먹을 걸 그랬나’ 하고 잠시 후회했지만,
동기들의 반응을 살피다 문득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결국, 모두가 궁금한 건 남의 인생이 아니라
자기 삶의 가능성이었다.
반응은 다양하지만
모두 ‘어떤 선택이 내 인생을 더 좋은 곳으로 이끌까?’라는 질문을
돌고 돌아 김과장에게 던지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뷔페에서 먹은 음식 가짓수보다 동기들의 다양한 리액션을 더 많이 맛본 듯한 김과장은
커피 한잔 하고 가자는 동기들을 피곤하다는 핑계로 뿌리친 뒤에야 식장 밖으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오를 지나고 있는 겨울 공기는 쾌청하기 그지없었다.
돌아가는 교통편을 검색하려 핸드폰을 꺼내려던 찰나,
주머니 속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혹시 오늘 알바 30분만 일찍 와주실 수 있나요?
갑자기 예약 문의가 많아서 손이 필요해요ㅠ』
김과장은 사장님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곤
일찍 가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마음속으론 이렇게 답했다.
'갓생과 궁상 사이?
나는 그 사이 어디쯤이 아니라,
그냥 내 자리에서 잘 살아가는 중이야.'
몸은 피곤했지만,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집에 가면 날 기다리고 있을 침대도 설레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하루는 더 이상 타인의 기준이 아닌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채워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