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샤아아-악. 갑작스레 새하얀 불빛이 눈을 찌른다. 잠결에 튀어나온 불쾌감을 가까스로 잠재우고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딸깍. 밤 12시 20분, 4월 21일 월요일. 늦었다면 늦은 시간이며, 이르다면 이른, 애매한 시간이다.
잠이 깨서 의미 없는 뒤척임만 몇 분째. 잠깐 눈 붙인 지 6시간 됐나. 피곤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해와 달이 기묘하게 뒤바뀐 탓이다. '배나 채울까' 침대에서 나와 의자에 앉으니, 교회에서 받은 계란 4개가 나를 반겨준다.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어제가 마침 부활절이더라.
계란 두 개에 불닭 볶음면 하나, 거기에 쿨피스 한잔하고 밖으로 나왔다. 군것질할 아이스크림 하나 살 겸, 그저 새벽 공기 한 번 쐬고 싶었다. 그럼에도 새벽에 뜬금없이 걸어 나온 동기 치고는 한없이 빈약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마음이 그렇다는데. 진심에 무슨 핑계를 대야 한단 말인가. 그냥 해버리고 마는 거지.
어느 정도 걸었는지는 세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확인해 볼까. 대학원동 벤치 앞이니, 대충 10분은 걸었나. 졸리니까 조금 쉬어 가야겠다. 고맙게도, 대학원동 앞에는 벤치가 몇 개 배치되어 있다. 털썩, 다시 한번 딸깍.
바꾼지 1년가량 지난 핸드폰 화면에는 진청빛 하늘과 네온색 별들이 떠다닌다. 현실은 더 무감각하고 허무하지만, 그래도 하늘을 이렇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설정한 배경 화면이다. 아직 흐리멍텅하기 때문일까, 눈곱 좀 때고 봐도 그대로다. 별 수 있나.
구독해둔 뉴스 쭉 훑어본다. 늘 보던 똑같은 소식들. 감흥이 들지 않는다. 나라가 뒤집히네 뭐네 하는데 왜 이리 생동감이 들지 않을까. 물어뜯는 데에만 혈안이 된 인간들에게 질린지 오래긴 하지. 하지만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싫증을 걷어내더라도, 마음 깊숙이 와닿지 않는다. 영감받을 것도 없고, 쓰고 싶은 것도 없고... 설렁설렁 보다 꺼버리길 몇 번째. 시야를 화면 밖으로 돌리니 흐릿하다. 내가 졸려서 그런가.
잠이 덜 깨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모든 게 신기루 같은 공허한 기분이 든다. '자주 써야 하는데... 뭘 써야 하지?' 하던 감상 그대로 잇기는 싫으니까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새것을 접해야 할까.
행복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글이 항상 당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은은한, 그러나 먹먹한 압박처럼 다가온다. 쓰고 지우기만 몇 번째. 에세이를 읽거나 음악을 들어도 빠져나오기 힘들다. 안갯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달까. 늘 있는 흔해 빠진 감상만 적어 나가는 게 옳은 건가. 파릇파릇한 영감을 계속 잡아야 하는데, 하던 것만 하기는 싫은데... 그렇게 나는 일상에 눌어붙어, 식어가고 말라간다.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 눅눅하고 뿌연 공기 속에서 어렵게나마 다잡아 본. 해야 하니까 해야 한다.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흐느적대더라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