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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5. 네 멋대로 해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by 글쓰는도련 Mar 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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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뚱땡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드디어 완독! 책장이 쉽게 넘어가면서도 이상하게 중간에 한 번씩 멈춰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던,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취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깨달음은 많이 주었던 작품. 그런데 책  도입부에 강렬하게 나와 있는 경고문에 따르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뎁쇼?

경고문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제목 그대로 10대 소년 헉이 모험을 하며 겪게 되는 일을 그리고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모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뭔가 환상적이고 신나는 이미지보다는 '집 나가면 개고생'에 걸맞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 말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에는 주인공 헉 핀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거나, 비속어를 일삼는 것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고 한다. 는 이 점이 좀 의외였는데, 왜냐하면 내가 책을 읽을 때 '아, 이 부분은 당시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는 걸?'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헉의 언어나 태도가 아니라 작품에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의 자유를 주장하거나, 종교인을 비꼬고 조롱하는 것이 훨씬 논쟁의 대상일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그보다 불량소년의 말버릇과 행동을 지적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비을 할 거면 차라리 쓰레기라고 하는 게 쓰레기한테 미안할 헉의 아버지나, 모험 중에 만났던 사기꾼인 왕과 공작 나부랭이가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왜 보호받지 못하고 폭력에 노출된 소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는지, 말과 태도의 동기보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가지고 헉을 비난했는지 아쉬웠지만, 그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있었을 테니까(하긴 헉의 아빠나 왕, 공작도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사연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다만 헉이 그 가혹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괜찮은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감사나 미안함 등의 감정을 여전히 품고 있다는 것이 고 짠할 뿐이었다.


  p.451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ㅡ 그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 버렸습니다.

  모험을 하는 동안 계속 함께였던 흑인 노예 짐이 펠프스 농장으로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 된 헉은 몸을 부들부들 떨 만큼 깊 고민에 빠진다. 짐의 노예주 왓츤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썼지만, 그동안 짐이 자신에게 베푼 행동과 그의 선한 본성을 떠올리며 결국 헉은 편지를 찢어 버린다. 헉은 외부의 규칙이나 요구가 아니라 자신의 직관과 진정한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종종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 있다.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ㅇㅇ야, 좀 더 네 맘대로 살아도 괜찮아. 세상 안 무너져. 네가 아무리 막 나가도 너는 테두리가 강한 사람이라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벗어나서 흉악범이 되거나 할 수 없어. 사실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범죄도 아니고(물론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다 그냥 삶이야.' 이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늘 따라붙는 또 하나의 가정. '60, 70, 80대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역시 같은 대답이 아닐까?' 하는 나만의 추측. 그런데 왜 지금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그 말을 해줄 수 없는 거야?

  '네 멋대로 해라, 네 맘대로 해라'라는 말을 내뱉는 화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 문장에 포기나 체념, 분노 등이 담겨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문장을 되뇌어 보았다. 네 멋대로, 네 맘대로, 내 멋대로, 내 맘대로 한다는 것은 진정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 나만의 멋과 개성을 부정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인생이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흘러가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같다면,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제약과 구속, 그리고 나의 직관이나 양심에 어긋나는 외부의 악에서 해방되어 조금은 자유로워져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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