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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의 채소, 곤드레

by 헤아림




소만

양력 5월 21일쯤, 작은 것이 잘 자라 가득 채우는 때

고구마 심기, 수박과 참외 심기, 참깨 심기, 모내기 준비하기




이걸 어느 계절이라고 불러야 할지. 체감상은 거의 겨울과 여름을 오가는 기분이다. 가 많이 오는 날은 추웠다 맑은 날은 더웠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이런 날씨 탓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요즘은 트를 이용한 음료를 만들어 재미를 알아버렸다.


다시 두꺼운 패딩조끼를 꺼내어 입어야 할 만큼 추웠던 어느 날, 옷을 껴 입고 몸을 움직여봐도 추운 기운이 가시지를 않아 따뜻한 차가 마시고 싶었다. 마침 은방울꽃 구경하러 가면 여기저기 올라오고 있던 스피아민트 생각이 났다. 똑똑 잘라낸 새 순들을 잘 씻어서 끓는 물에 우리고 꿀도 조금 넣었더니 따뜻하고 상쾌하고 달콤한 차가 금방 완성되었다. 그렇게 만든 민트티를 한 잔 마시고 났더니 몸도 풀리고 기분도 풀려서 기분 좋게 일을 시작했다. 추운 날은 따뜻한 티로, 더운 날은 사이다에 넣어 민트에이드를 만들어 마셨다. 사이다에 약간 으깬 민트 잎을 넣으면 청량에 청량이 더해져 기분이 두 배, 세 배 맑아졌다. 작년에 늦게까지 남은 바질을 모두 잘라 바질청을 만들어 마셨는데 올해는 민트로도 청을 만들어 두면 좋겠다 하며 여름의 기쁨을 또 하나 찾은 것에 들떴다.


스피아민트 새 순을 꺾어서 추운 날은 따뜻한 차로, 더운 날은 시원한 에이드로 마신다.



매해 심고 키운 것 중에 가장 먼저 수확해 먹는 건 완두이다. 밭에 갈 때마다 꽃이 지고 열린 콩깍지가 있을까 몇 번을 들여다보는데 아직은 소식이 없다. 그럼 지금까지 밭에서 수확하고 소개한 것은 다 뭘까 싶다면 작년 가을에 심어서 월동을 한 시금치와 쪽파를 제외하고는 냉이부터 오늘 얘기할 곤드레까지 모두 야생에서 수확해 먹는 산나물에 포함된다. 참나물 편에서 한 번 언급한 적 있듯이 모두 따로 씨앗을 뿌리고 키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씨앗을 떨어트린 자리에서 다시 싹을 틔우기를 반복하는 작물들이라는 뜻이다.


곤드레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묻고 싶다. 곤드레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가? 질문을 하면서도 그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우리가 생활에서 접하는 곤드레는 곤드레밥뿐인데 그마저도 말렸다 다시 삶은 곤드레기 때문에 그 형태를 알 길이 없다.



내가 밭에서 처음 곤드레를 봤을 때를 떠올리면 나 역시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도시 생활자였기 때문에 푸르고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곤드레를 만나는 게 매우 낯설었다. 놀랍고 신기하다는 표현보다 낯설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저게 곤드레라고? 곤드레밥 만드는 그 곤드레? 곤드레가 저렇게 생겼어?" 하며 재차 물었던 기억이 있다. 곤드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니 당연히 어디선가 키우고 자라서 밥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을 텐데 그때까지 그 과정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내 앞에 있는 존재 자체가 매우 낯설 느껴졌. 마치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생명체를 맞닥뜨리게 된 것처럼. 살아있는 곤드레가 내 눈앞에 있어!



내가 처음 곤드레를 보고 놀랐던 이유는 곤드레가 초록색인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 곤드레밥 안에 있는 검정에 가까운 녹색으로만 봤었기 때문에) 그 키와 잎의 크기가 생각보다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이 큰 게 그렇게 조그마하게 쪼그라든다니!"


나의 혼잣말을 들은 엄마가 옆에서 한 마디 하신다.


"그것도 자른 거지."


아, 이 큰 잎이 말라서 그렇게 작게 쪼그라드는 게 아니라 잘랐기 때문에 작아진 거였구나. 심지어 말린 걸 다시 삶고 자른 후에야 밥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먹던 곤드레밥이 내 앞에 오기까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많은 과정이 있어 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원래도 밥을 남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한 톨도 남김없이 먹어야지.


이 많은 풀들 사이에서 곤드레 찾은 사람?


그토록 충격적이었던 첫 만남이었지만 어쩐지 곤드레 잎의 생김새가 눈에 익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작은 잎이라, 나중에는 찾을 때마다 알아보기 힘들 만큼 쑥쑥 커 있어서 엄마한테 곤드레 어디 있냐 몇 번을 물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4월 중순, 아주 작은 새싹으로 만났던 게 약 한 달 사이 쑥 자랐다. 싹이 나고 한 달 만에 이만큼 키가 크다니 엄청 빠르게 자라는 작물이었구나. 그렇게 자라는 과정을 한 번 쭉 지켜보고 나니 눈앞에 두고도 어디 있냐 재차 물었던 내가 이제는 많은 풀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뭐가 곤드레인지 완벽하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4월 중순, 이제 막 싹이 나기 시작한 곤드레
5월 중순, 키가 쑥 자라난 곤드레


올해는 진딧물과의 싸움으로 고생을 좀 했다. 참나물(파드득나물), 취나물, 곤드레 등등 온갖 산나물들이 섞여 자라고 있는 곳에서 유독 곤드레에 진딧물이 많이 붙었다. 가만 생각하면 다른 것들은 특유의 향이 강하게 있는데 곤드레는 그렇지 않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곤드레밥을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게 생각났다. 곤드레밥은 먹을 게 없던 시절 특별한 향도 없고 부드럽기 때문에 밥의 양을 늘리기 위해 넣어서 지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특별한 향이 없고 부드러워서 밥에 넣어 먹기 좋았지만 순하다는 이유로 벌레의 공격을 받는다.


진딧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약을 쓸 수도 있겠지만 아주 쉽게 천연 살충제를 만들어 쓸 수도 있다. 찾아보면 식용유, 달걀노른자, 마요네즈 등을 물과 섞어 뿌려주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두 곤충의 숨 쉬는 구멍인 기문을 기름으로 막아서 제거하는 방법이다. 우리 밭에서는 천연 살충제로 사용하기 위해 님오일을 대량 구비해 뒀기 때문에 주로 님오일을 사용한다. 님오일에 있는 아자디락친(Azadirachtin)이라는 성분이 해충의 성장과 생식 호르몬에 영향을 미쳐 해충을 죽이거나 번식을 억제한다.



곤드레는 앞서 민트를 수확했던 것처럼 새순 쪽을 똑똑 잘라서 수확한다. 이때 자세히 보면 옆으로 곁순이 생긴 걸 볼 수 있는데 이 곁순이 충분히 자라면 지금과 같이 또 수확해서 먹을 수 있다. 이른 봄부터 수확할 수 있도록 심으면 연 5~7회도 수확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저 자연에 맡겨 자라는 대로 수확하다 보니 2~3회 정도 수확해 먹는다. 처음 몇 번은 생곤드레로 먹고, 나중에 수확하는 잎들은 말려두고 다음 해 수확철이 오기 전까지 먹는 것이 보통의 주기이다.


수확해 온 곤드레로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한다. 곤드레로는 밥만 해 먹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나물로도 무쳐먹고, 생선조림에도 넣어 먹는다고 한다. 다른 요리법을 보고 있으면 맛있겠다 싶으면서도 구수한 곤드레밥부터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또 곤드레를 듬뿍 썰어 넣고 밥을 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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