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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의 맛, 곤드레밥

by 헤아림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기억나는 시간이 있고,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마찬가지로 음식으로 순간을 기억하기도 하는데 나에게는 곤드레밥을 먹을 때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간이 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큰 수술을 받은 후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안 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는데 나이 드신 부모님이 보호자 역할로 내 옆을 지키셔야 한다니 그제야 처음으로 조금 속이 상했다. 게다가 지금 이 계절은 모든 작물이 쑥쑥 자라고 그만큼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다. 작년에는 몰랐지만 올해 함께 농사를 돕다 보니 이제야 알게 됐다. 이 시기에 밭을 비우고 내 옆을 내내 지키셔야 했다니 아픈 나에게 말도 못 하고 계속 밭을 걱정하셨을 엄마 생각에 뒤늦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더해진다.


내가 어느 정도 회복을 하고 혼자 움직임이 가능해지면서 엄마는 낮시간을 밭에서 보내셨다. 그리고 점차 아침에 밭에 가셨다가 다음 날 저녁이 되어 병원으로 오시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가 병원에 돌아올 때면 늘 밭에서 수확한 채소로 맛있는 음식들을 해서 오셨다. 생각보다 길어진 입원에 지루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매번 엄마가 가져다주시던 새로운 채소와 그것들로 만든 음식 덕분이었다. 그중 하나가 곤드레밥이었다. 환자식은 병원에서 나오지만 보호자 식사는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작은 통에 밥을 한 공기씩 착착 담아 갖고 오셨는데 그렇게 맛있는 밥을 해오신 날에는 내 병원식을 나눠 먹고 엄마가 가져오신 음식을 더 먹었다.


퇴원을 하루 앞둔 날에는 다 먹고도 곤드레밥 한 그릇이 남았다. 옆 침대에 함께 입원해 계셨던 분도 보호자식을 준비하셔야 하니 이걸 드시라며 한 그릇 나눠 드렸다. 그렇게 싹싹 한 그릇을 비우시고는 요리 잘하시는 엄마 있어서 너무 좋겠다며 부러운 마음을 내비치셨다. 그 말을 들은 내가 괜히 기분이 좋아서 "저희 엄마가 키우는 것도 잘하시는데 요리도 잘하시거든요." 하며 없는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 곤드레를 수확하고 그걸로 곤드레밥을 지어먹자니 작년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아마 앞으로도 곤드레밥을 보면 그 순간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힘들고 속상한 마음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웃고 얘기 나눴던 기억으로 남은 시간들. 나는 이제 제철 채소와 그로 만든 음식들로 시간을 기억한다.




재료 (2인분)


- 쌀 2컵 (400ml)
- 곤드레 280g
- 들기름 1T+1T
- 간장 1.5t


사진에는 소금이 있지만 실제로는 간장으로 간하였다.



만들기


1.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깨끗하게 씻은 곤드레를 데친 뒤 찬물에 씻어 꼭 짠다.
2. 데친 곤드레를 손가락 길이로 자르고 볼에 담는다.
3. 볼에 담긴 곤드레에 들기름 1T와 간장 1.5t를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4. 분량의 쌀을 씻고 물을 맞춘 후 양념한 곤드레를 얹는다.
5. 불을 올려 밥을 한다.
6. 밥이 다 되면 들기름 1T를 더 넣고 잘 섞는다.




Tip


1. 곤드레 잎 뒷면 털에 묻은 흙과 같은 이물질이 잘 떨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 꼼꼼하게 씻는다.
2. 양념간장을 넣어 비벼 먹으면 풍미를 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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