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6월 5일쯤, 밀과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하는 때
모내기, 고추 웃거름 주기, 난지형 마늘과 양파 수확하기, 병충해 방제하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학원 차였다. 그 차를 타고 학원에 가면 나와 비슷한 시간에 학교를 마치고 온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만나자마자 하는 일은 둘러앉아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먹는 일이었다. 반찬 뚜껑을 여는 순간에는 늘 두근두근 거렸다. 오늘은 엄마가 무슨 반찬을 싸주셨을까. 여느 어린이처럼 친구의 소시지 반찬을 부러워했던 기억도 있지만 그건 순전히 문어 모양 때문이었다. 내가 그보다 더 바랐던 건 마늘종 무침이었다. 의아하게 여길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소금에 절여서 고추장으로 무치는 그 마늘종 무침이 맞다. 내가 생각해도 그 어린 꼬맹이의 최애 반찬이 무슨 이유로 마늘종 무침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7살의 내가 마늘종 무침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나조차도 신기해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최애 반찬으로 꼽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반찬 중에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먹어왔음에도 마늘종이 마늘의 어떤 기관인지, 어느 시기에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고 있었다. 오늘은 마늘종을 뽑아야겠다는 엄마의 말에 마늘이 심겨 있는 아랫밭으로 따라 내려갔다. 작년 가을에 심어 추운 겨울을 보내고 3월이 되어 싹을 내밀던 마늘들이 어느새 쑥 자라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길쭉하고 뾰족한 초록 잎들 가운데로 마늘종이 올라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모님이 농사를 시작하신 뒤로 몇 번이나 마늘종을 수확해 오셨는데 밭에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늘종은 요맘때 아주 잠깐 나오는 거라 자주 밭에 가지 않으면 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도 서당개 3년이라고 많은 작물들의 크는 모습에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작물들이 많다.
일단 장갑을 끼고 나니 엄마가 뽑는 법을 알려주셨다. 뿌리까지 뽑히지 않도록 잎 옆의 땅을 잘 밟고 마늘종을 꼭 잡아 천천히 끌어올린다. 최대한 아래쪽에서 끊겨야 길게 수확할 수 있는데 성질 급하게 잡아당기면 위에서 뚝하고 끊어져버려 먹는 부분이 짧아진다. 초보 농부는 마늘종 하나 뽑으면서도 뭐든 서두르면 안 된다는 인생사를 배운다.
재미있는 건 내가 마늘종 뽑는 순간을 무척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 언젠가 마을종을 뽑을 때 방귀소리가 난다는 글을 본 적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소리가 나길래 싶어서 하나 뽑을 때마다 귀를 쫑긋 기울였다.
"뽀르르르르륵"
그 소리의 정체는 딸려 올라오는 마찰음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잘려 올라오기 때문에 그때 "뽀르르르륵"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늘종을 뽑고 난 자리를 보면 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다.
나는 마늘종을 뽑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이 났는데 엄마는 올해 마늘종이 가늘다고 내내 푸념을 하신다. 그러면 더 뒀다가 수확하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더 둔다고 굵어지는 게 아니란다. 길어지기만 할 뿐이라고. 그렇게 내내 시무룩하던 엄마가 갑자기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굵고 가는 마늘종 두 줄기를 내 앞에 내밀면서
"이건 네 머리카락, 이건 엄마 머리카락"
미용실에서도 놀랄 정도로 굵은 머리카락을 가진 내게 던지는 장난이었다. 평소에도 엄마는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네 머리카락은 안다며 얘기해 오셨는데 굵고 가는 마늘종을 보니 그 생각이 나셨나 보다.
가끔 다른 모녀 사이에서 하지 않을 비유를 할 때 참 웃기고 재미있다. 지난겨울에는 큰 이모가 추천해 주셔서 보습용 화장품을 하나씩 샀다. 같은 날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유독 엄마 피부가 촉촉해 보여 내가 너무 조금씩 바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씩 바르냐는 내 질문에 엄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녹두보다는 많고, 콩보다는 적고. 팥알만큼?"
누가 화장품 양을 얘기할 때 콩과 작물에 비유하냐며 엄청 웃었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그 양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점이다. 머릿속에 녹두와 콩과 팥의 크기를 떠올리니 그동안 내가 바르던 양이 적긴 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다른 모녀가 잘하지 않을 대화를 나눈다는 게, 그러면서 완벽한 의사소통이 된다는 게 참 재미있다.
엄마와 웃으며 한참을 수확하다 그제야 또 궁금해졌다. 그래서 지금 내가 뽑고 있는 이 마늘종이 마늘의 어떤 기관이지?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엄마한테 물어 답을 얻으니 역시 꽃대였다. 마늘도 꽃이 피는지 궁금한 사람은 마늘꽃을 검색해 본다면 엄청 놀랄 것이다. 생각보다 엄청 화려하고 예쁘다. 그중에서도 "알리움"이라고 불리며 각종 꽃 장식에 사용되는 꽃은 사실 코끼리 마늘의 꽃이다. 코끼리 마늘은 우리가 흔히 보는 마늘보다 10배는 큰 그야말로 코끼리만 한 마늘이다. 알이 큰 만큼 꽃도 크고 화려해서 관상용으로 많이 쓰인다.
이쯤이면 우리 밭 마늘꽃도 궁금할만한데 이미 먹겠다고 꽃대를 다 뽑아버렸으니 꽃을 보기는 글렀다. 대신 같은 부추 속의 꽃 모양이 비슷한 차이브는 꽃을 피웠다. 부추와 파 같은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작물이 넘쳐나는 우리 밭에서 차이브는 늘 식용이 아닌 관상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