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6월 21일쯤,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
콩과 메밀 파종하기, 감자와 마늘 수확하기, 장마와 가뭄 대비하기
본격적으로 더운 날이 이어지고 장마가 시작된다는 하지가 가까워졌다. 하지하면 감자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내가 절기보다 조금 일찍 가고 있는 탓인지 우리 밭에서는 아직 감자를 수확하지 않았다. 감자의 잎이 누렇게 변해야 수확하는 거라는데 그것도 모르고 온통 초록 가득한 밭에 혼자 시들어 가는 잎들을 보며 눈엣가지처럼 여겼던 게 미안해졌다. 오해해서 미안해. 조금만 더 힘내면 곧 수확해 줄게.
대신 그렇게 기다리던 완두를 드디어 수확했다. 그동안에 수확한 채소는 부모님이 작년 가을에 심어두신 월동 작물이거나 따로 씨를 뿌리지 않고 야생에서 채취하는 산나물들이었기에 완두는 올해 내가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첫 작물이나 다름없다. 언제나 처음은 떨리고 소중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완두를 기다린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한 가지 채소만 먹을 수 있다면 뭘 고르겠냐는 질문에 큰 고민도 없이 콩을 고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콩을 포함해 콩으로 만든 두부, 두유 등등 모든 콩 요리에 환장하는 사람이라 얼른 완두가 열리고 수확해 먹기만을 기다려왔다. 서리태와 같은 콩들은 이제 막 심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이르게 먹을 수 있는 완두가 너무나 반갑기 그지없다.
사실 몇 주 전부터 먼저 잘 여문 콩깍지들을 수확해서 먹어왔고 이제는 끝물이라 뿌리까지 전부 뽑아 정리했다. 수확 적기에 완두에 대한 얘기를 하면 더 좋았겠지만 아주 짧은 시기에 잠깐 나오는 마늘종에게 그 순서를 뺏기고 말았다. 먹을 채소가 너무 많아진 요즘에는 그만큼 얘기하고픈 채소도 많아져서 문제다.
완두는 1~2℃의 추운 날씨에서도 땅 속 물이 충분하면 발아하기 때문에 3월 초, 가장 이르게 씨를 뿌리는 작물이다. 또한 25℃ 이상의 온도에서는 성장을 멈추므로 일찍 심고 일찍 수확하는 편이 좋다.
갤러리를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 완두 심던 날의 사진을 보니 옆 이랑에는 시금치가 자라고 있다. 시금치를 수확할 때 아직 봄이 채 도착하지 못한 엄청 추운 날이었던 걸 생각하면 완두의 시작 역시 얼마나 추운 날이었는지 되새기게 된다.
그렇게 씨를 뿌리고 약 2주 만에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완두를 심어 두고 나서는 밭에 출근하면 우선 완두가 심어진 이랑으로 갔다. 내가 심은 완두가 무사한지, 싹은 잘 나오고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은 싹을 찾겠다고 허리를 수그리고 한참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작은 몸으로 흙을 들고일어난 초록 생명들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싹이 나올 수 있다니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완두가 점점 키를 키우고 잎을 내어주던 3월 말의 어느 날, 하우스 안에서 다른 모종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그날 눈 예보가 있어서 걱정이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던 일기예보도 왜 이럴 때는 딱 맞아떨어지는지 괜히 기상청을 원망했다. 조금 오다 말겠지 하던 눈은 생각보다 굵어졌고, 잠깐 사이에 하우스 철골 구조물 위로도 눈이 쌓이는 게 보였다. 그쯤 되니 걱정이 되어 밭으로 나가보았다. 시금치 터널 위로 눈이 쌓여 무너지지 않도록 털어주고, 그 옆에 완두는 괜찮은지 들여다봤다. 내 눈에 아직 작고 여리기만 한 완두가 차가운 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잘 버틸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내 걱정과 달리 엄마는 천하태평이다. 눈 쌓인 완두가 예쁘다며 사진을 찍고 계시길래 여쭤봤다.
"이거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
그날 오후가 되어 눈이 싹 녹고, 걱정되는 마음에 완두를 살피러 가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여전히 싱싱한 초록빛의 완두가 잘 버티고 있었다. 하긴, 이렇게 내리는 눈이 문제가 될 것 같았으면 부모님이 먼저 대비를 하셨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농부만 늘 애가 탄다.
4월 중순쯤 되자 키가 제법 커졌다. 이때 중요한 건 줄을 매주는 것이다. 위로 쭉 크는 완두가 쓰러지지 않도록 공중에 줄을 묶어주면 덩굴손을 뻗어서 그 줄을 잡고 계속 키를 키운다. 이렇게 완두의 키가 클 때마다 1단, 2단, 3단 높여가며 계속 줄을 매 준다. 키가 큰 완두가 지지할 곳이 없어 쓰러져 버리면 땅에 닿은 꼬투리가 썩어 콩이 여물지 못하게 되므로 줄 매주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역사 농사일은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
꽃이 핀다는 말은 그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열매가 생긴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그저 보기에 예뻐서 꽃을 기다렸다면 요즘에는 열매를 기다리는 마음까지 더해졌다. 무럭무럭 키가 커가는 완두 사이를 한껏 웅크리고 지나다니는 수상한 사람을 만났다면 아마 나였을 것이다. 한참 추울 때 새로 올라오는 싹을 찾으러 다니던 것처럼 꽃을 찾으러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첫 꽃을 발견하던 날, 드디어 만났다는 기쁨에 그 작은 꽃 하나를 두고 이리저리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정작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콩깍지가 생긴 것을 발견했을 땐 다른 일들이 바빠 그만큼 기뻐하지를 못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꼬투리가 생긴 것도 나중에 발견했다. 훨씬 더 노련한 엄마는 이미 지나가는 눈으로 모두 확인하셨을 텐데 처음 맞는 농번기(라고 하면 엄마는 아직 농번기는 시작도 안 됐다고 하시겠지?)에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바쁜 나는 꼬투리가 생긴 것도 나중에 엄마가 알려주고 나서야 알았다.
"아, 꼬투리 생기는 거 사진 찍고 싶었는데!"
아쉬운 대로 그때 자라고 있던, 이제 콩의 자리가 막 생긴 듯이 납작하던 꼬투리의 사진을 남겼다.
5월 말이 되자 드디어 통통하게 차오른 꼬투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일부 완전히 성숙한 꼬투리를 따서 수확하는 다른 콩들과 달리 완두는 마르지 않은 풋콩을 먹기 때문에 꼬투리가 노랗게 시들기 전에 따기 시작한다. 보통 아래쪽에서부터 먼저 꽃이 피고, 그 자리부터 콩이 열리기 때문에 아래쪽부터 잘 여문 콩깍지를 수확해 나간다.
그렇게 잘 익은 콩깍지들을 하나둘씩 수확해 먹다가 얼마 전에서야 뿌리까지 전부 뽑아 완두콩 이랑을 모두 정리했다. 잎은 이미 많이 시든 상태였다. 땅과 가까운 부분을 잡고 뿌리를 뽑은 뒤, 그 줄기에 매달려 있는 콩깍지들을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남은 줄기는 우선 울타리 밖으로 던져두고 한 번에 수거해 버리기로 했다. 그러다 엄마가 "어?" 하시길래 왜 그러냐 물으니 이미 울타리 밖으로 던진 줄기에 안 딴 콩깍지가 하나 보였던 것이다. 이따 정리할 때 잊지 말고 꼭 챙겨야 한다며 그 뒤로 던진 줄기들에 가리지 않도록 그 깍지 하나를 계속 바라보며 일했다. 겨우 꼬투리 하나를 놓치지 않겠다고 내내 신경 쓰는 우리 모습이 재미있어서 또 웃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이 더운 날 내내 서서 이걸 해야 하나 싶어졌다. 일단 모두 뽑고 그늘로 가져가서 콩을 따면 더 편한 거 아닌가? 그래서 일단 다 뽑아서 쌓아두고 그늘로 옮겨 남은 작업은 앉아서 하기로 했다. 그러자 엄마가 뽑은 줄기를 한 아름 안겨주며 먼저 가서 따고 있으라 하셨다. 그렇게 안아 든 줄기 뭉치를 이고 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자마자 다시 엄마가 계신 완두 이랑 쪽으로 향했다. 엄마는 금방 다시 돌아오는 나를 보고 '왜 그러지?' 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내가 울타리 바깥쪽으로 향하자 그 이유를 바로 알아채셨다. 아까 떨어트린 콩깍지 하나를 다시 찾으러 간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농부의 딸은 다르네!" (아직 내가 농부로 인정은 못 받은 것 같다.)
보통 이렇게 수확하고 나면 모든 작업이 끝나지만 콩은 까는 일이 또 남았다. 때마다 수확해서 먹고 끝나는 작물과 달리 콩은 보관해 두고 오래 먹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장소를 집으로 옮긴다. 앞서 수확한 바구니를 통째로 집으로 가져와서는 소파 옆에 둔다. 그리고 그게 누가 됐던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사람은 콩 까는 일을 같이 하게 된다. TV를 보려는 자, 콩을 까거라!
이렇게 말하면 온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TV를 보며 콩을 까는 모습을 상상하겠지? 그렇지만 현실은 온갖 트로트 프로그램과 정치 뉴스를 오가며 손에서 리모컨을 놓지 않는 아빠가 거실에서 모두를 쫓아낸(?) 덕에 TV를 보며 콩을 까는 것도 거의 아빠의 일이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한다. TV를 보려는 자, 콩을 까거라!
이렇게 올해 첫 수확한 완두를 통해 다시 한번 농사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모든 기다림과 설렘, 수고와 웃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작고 여린 싹이 땅을 뚫고 나올 때부터 꼬투리를 따고 콩을 까기까지, 완두는 나에게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하나의 계절이었고 이야기였다. 다음에는 어떤 작물이 어떤 이야기를 안고 자라날까 기대하면서, 이제는 비워진 완두 이랑에 또 다른 씨앗을 심을 준비를 한다. 농사는 늘 그렇게, 끝과 시작이 겹쳐 있는 시간 속을 걷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