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7월 7일쯤, 작은 더위와 장마가 찾아오고 과일과 채소가 풍부해지는 때
열매채소 웃거름 주기, 참깨 잘록병 방제하기, 과수 열매 솎고 봉지 씌우기, 배수로 정비하기
장마에 들어서면 작물에 물을 주는 수고를 던다. 그럼 일이 많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농사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하나를 덜면 하나가 또 발생한다. 장마 기간 동안의 축축한 습도는 세균으로 인한 병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집 안의 습한 공간에서 곰팡이가 피어나듯, 작물에도 병이 생기기 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변화가 있을까 살피느라 바쁘다. 또 순식간에 내리는 많은 비가 오래 고여서 작물의 뿌리를 썩게 하지 않도록 배수로도 정비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지금까지 어깨너머로 보고 들어왔던, 그리고 이론으로 배웠던 장마 기간의 농사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너무나 달라졌다. 평년보다 강수량이 적은 장마를 마른장마라고 부르지만 이걸 마른장마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다. 그냥 장마가 사라졌다. 앞으로 계속 농사를 지으면 계속 예상 불가능한 날씨 변화에 대응해 나가야겠지. 대문자 J는 이 변화가 너무 벅차다.
우리 밭에 공심채를 심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집 마스터 농부인 엄마는 텃밭을 가꾸는 밴드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다른 분들이 심은 새로운 작물들에 엄청난 호기심을 보인다. 그곳에서 직접 씨앗이나 모종을 얻기도 하고, 일반적인 시장이나 종묘상에서 잘 판매하지 않으므로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기도 한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차요테나 히카마 같은 남미 원산의 작물까지 공수하셨다.) 공심채 역시 2~3년 전, 엄마가 밴드에서 처음 발견한 작물이었다. 키우기도 쉽고 볶아 먹으면 맛있다는 말에 덥석 모종을 구매하신 게 그 시작이었다.
처음 심어 본 작물인데 선배님들(!)의 말씀처럼 키우는 것도 까다롭지 않고, 동남아에서만 먹는 줄 알았던 공심채 볶음을 집에서 직접 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년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종을 사서 심다가 요즘에는 직접 씨앗부터 심어서 모종을 만든 다음 밭에 옮겨 심는다. 그래서 공심채 농사도 지난 3월부터 시작되었다. 공심채의 떡잎을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동그란 두 쌍의 떡잎 모양이 아니었다. 작물을 파종할 때마다 본잎과 다르게 나오는 독특한 모양의 떡잎을 만나면 그렇게 신기할수가 없다. 공심채 역시 길게 하나로 뻗은 본잎과 달리 떡잎은 V자 모양으로 갈라진 작은 잎이었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니 주변에도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실질적 경험으로 치면 내가 더 새내기지만 그동안 옆에서 보고 들은 게 많다는 이유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오는 친구들이 있다. 그렇게 서로의 밭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뭘 더 심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에게 권하는 작물은 늘 공심채였다. 키우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심지어 생명력도 엄청나게 좋기 때문이다. 보통 작물의 상한 부분을 잘라서 고랑에 던져 놓으면 그대로 말라 죽고는 한다. 그런데 공심채는 거기서 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나간다. 게다가 자를 때마다 계속 곁순을 내어주어 한 번 심어 몇 번씩 수확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키우기 수월한 작물이 있을까 싶다. 별 거 안 해도 쑥쑥 자라주는 공심채는 초보 농부의 자신감 지킴이다.
그렇게 친구들과 농사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밭 사진을 주고받다 보면 그 안에 새로운 농사템들이 보이기도 한다. 어린 모종을 바로 밭에 심어도 될까 걱정하는 친구에게 우리 밭 공심채 사진을 보내주며 이렇게 고깔을 씌워 놓으면 된다고 했다. 이 고깔은 우리 밭에서도 올해 처음 사용하는 아이템이었다. 보통 재배하는 양이 많지 않은 도시의 텃밭 농부들은 반으로 자른 페트병을 씌워서 사용하는데 우리는 여러 개가 필요해서 고깔을 구매했다. 이 사진을 본 친구가 고깔이 갖고 싶다 얘기하는 덕에 순식간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 이렇게 농사의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가 되는 건가? 별 것도 아닌 걸로 잠시 우쭐해졌다.
우리 가족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가까운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친구는 그 사이 주부 8단(본인말로 아직 9단은 못 된다고 한다.)이 되어서 온갖 요리에까지 통달했다. 엄마는 그 친구가 밭에 올 때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밖에서 그 친구를 만나는 날에도 늘 채소를 한가득씩 들려 보낸다. 애를 써서 키운 만큼 주는 것도 잘 해먹을 사람한테 줘야 기분이 좋은데 이 친구가 바로 그 잘 해먹을 사람이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이 친구가 우리 밭에 온 것도 딱 작년 이맘때였다. 근처에서 나를 만나고 돌아가기 전, 인사차 밭에 들른 친구에게 엄마가 이건 있니 저건 있니 물어가며 감자, 마늘 할 것 없이 밭의 작물을 몽땅 내어주셨다. 그중에 공심채도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공심채 밭에서 바로 잘라주시며 집에 가서 공심채 볶음 요리법을 찾아보라 했다. 그 말에 친구는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낯설기만 한 "공심채"라는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모닝글로리!" 했더니 그제야 "아, 모닝글로리!" 한다. 동남아 여행 경험이 많은 우리 세대에게는 역시 공심채보다 모닝글로리가 훨씬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가져간 공심채는 잘 요리해 먹었을까? 궁금했지만 주고 나면 관심을 끊어야 한다. 꼬치꼬치 물으면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묻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궁금하다!)
사실 나도 공심채라는 이름의 뜻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며칠 전, 저녁으로 공심채 볶음을 먹다가 엄마가 얘기하셨다.
"가운데가 비어서 공심채야."
그제야 가운데(心)가 빈(空) 채소(菜)를 뜻하는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이름 안에 그 식물의 특성이 드러날 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때 알았더라면 친구에게도 이 이름의 뜻에 대해 알려줬을 텐데. 한참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알려줘야겠다. 이제 어렵지 않게 기억하겠지.
사실 여기서 공심채의 잎을 처음 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소를 마트 매대 위에 있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공심채는 마트 매대 위의 모습보다도 접시 위 요리된 모습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야말로 동남아 여행 중 먹은 모닝글로리로 인지하고 있으니 관심을 두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채소라고 생각도 못할 것 같다.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신나는 일은 내가 먹는 채소의 씨앗이 어떻게 생겼는지, 떡잎은 어떤 모양으로 나오는지, 키는 얼마큼 크는지, 얼마큼 자라야 수확하는지 그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알게 되면 채소 하나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이 기쁨을 많이들 알면 좋겠다. 그래서 마루처럼 수동적으로 요구해 본다.
'농사 안 짓나? 아, 농사... 농사지으면 진짜 재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