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유통되는 토마토는 덜 익은 상태에서 딴다. 유통 과정에서 과육이 무르고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 익지 않은 토마토를 수확하고 마트를 통해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후숙을 해 먹는 것이다. 그러나 햇빛을 듬뿍 받고 잘 익은 토마토를 그 자리에서 따서 먹는 게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그 맛을 알고 나면 일찍 딴 토마토를 먹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밭에서는 늘 붉게 제대로 익은 토마토만 수확해 왔다. 그러던 우리도 안 익은 토마토를 딸 수밖에 없던 상황이 있었다.
여름이 제철인 토마토가 10월에 들어서며 시들해졌다. 잎이 누레지고 줄기가 시들어서 전부 뽑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달려있던 파랗고 싱싱한 토마토가 너무 많았다. 그대로 같이 버리기 아까우니 따서 바람이 잘 통하는 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그러나 막상 시간이 지나 붉어진 토마토를 맛 보니 너무 밍밍하고 맛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이것도 맛있게 먹었을 텐데 햇빛 숙성 토마토의 맛을 알아 버렸으니 돌아갈 수 없다.
그냥 먹을 수 없으면 이걸로 요리를 하는 수밖에. 한참 빵 만드는 것에 빠져 있던 시기라 토마토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빵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 포카치아 레시피를 만났다.
오래전 얘기지만 구움 과자들을 만들어 마켓에 참여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때 갖추었던 베이킹 도구들을 대부분 갖고 있었기에 빵을 만드는 것도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빵을 만들어 보면서 느낀 건 제빵은 정말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점이었다. 반죽을 해서 굽기만 하면 끝나는 구움 과자(제과)와 다르게 빵을 만드는 데는 발효가 들어가다 보니 중간중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빵이 먹고 싶으면 어제부터 준비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첫 포카치아를 만들던 날에는 마음먹고 전날부터 반죽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고 나서도 또다시 발효의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 마지막 발효를 하고, 토핑을 준비해 얹고, 오븐 예열을 하며 굽기까지 또 한참이 걸렸다. 그렇게 구워서 나오면 끝인가? 아니, 또 한 김 식어야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상태로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기다려." 하는 강아지들처럼 따끈한 포카치아를 눈앞에 두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레시피에서 말한 시간보다 일찍 포카치아를 잘랐다. 그리고 드디어 허겁지겁 먹은 포카치아는 바삭하고 폭신하고 정말 맛있었다. 특히 그렇게 싱겁게 느껴지던 토마토가 오븐에서 한 번 구워지고 나니 설탕을 뿌린 것처럼 달았다.
오래 기다린 만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후 생각해 보니 반죽을 시작해서 먹기까지 약 18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시 만들려면 이 지난한 과정을 또 겪어야 한다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겹다 하면서도 처음 맛본 포카치아가 너무 맛있었어서 다시 만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뒤로 여러 번 만들고 선물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번 만들어 보며 내가 편한 방식으로 레시피가 다듬어졌다. 이제는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밀가루가 몇 그램 필요한지, 발효를 몇 분 시켜야 하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는 정도가 되었다. 과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맛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다만 빵을 만드는 섬세한 과정을 텍스트로 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이미 올라와 있는 많은 포카치아 영상을 찾아보고 나면 내가 얘기하고 있는 과정도 이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재료 (22.5 ×22.5 정사각형틀 기준)
- 강력분 300g
- 따뜻한 물 240ml
- 드라이 이스트 3g
- 소금 5g
- 올리브유 10g
- 방울토마토 20알
- 올리브 20알
- 로즈메리(허브)
만들기
1. 끓인 물과 찬물을 반반씩 섞어 따뜻한 물을 만든다. (여름에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실온수를 사용한다.)
2. 물이 담긴 볼에 이스트, 소금, 올리브유를 넣고 섞는다.
3. 강력분을 넣고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섞고 뚜껑을 덮어 30분 동안 상온에 둔다.
4. 물 묻힌 손으로 반죽의 끝을 늘려 접고(폴딩) 반죽을 뒤집어 매끈하게 만든 뒤 냉장실에서 12~24시간 저온숙성한다.
5. 팬 위에 올리브유를 골고루 바른 뒤 냉장고에서 꺼낸 반죽을 옮긴다.
6. 반죽의 표면이 매끈해질 때까지 살살 말고 접는다. (가스가 빠지면 빵이 부풀지 않으니 세게 눌러가며 접지 않는다.)
7. 접는 과정에서 표면에 올리브유가 골고루 발린 반죽을 그대로 두고 20분 휴지 한다.
8. 팬 모양에 맞춰 넓게 펼치고 40분 발효한다. (발효 시간은 실내 온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반죽을 흔들었을 때 찰랑찰랑한 상태에서 굽는다.)
9. 오븐을 230도로 예열한다.
10. 잘 부푼 반죽 위로 올리브유를 뿌려주고 열 손가락 끝으로 골고루 찔러가며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든다.
11. 토마토를 포함한 모든 토핑 재료들을 골고루 얹는다.
12. 230도로 예열된 오븐의 아랫칸에서 15분, 210도로 내린 뒤 위칸으로 옮겨 5분 정도 더 굽는다. (오븐 사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색을 보며 굽는다.)
13. 오븐에서 꺼내고 윗면에 올리브유를 발라준다.
14. 식힘망 위에서 한 김 식힌 뒤 자른다.
Tip
1. 굽고 나서 한 김 식었을 때가 가장 맛있다.
2. 올리브유로 겉을 튀기 듯 굽는 빵이니 올리브유를 아끼지 않는다.
3. 잘라서 냉동 보관하고 먹을 때 에어프라이어에 데우면 처음 구웠을 때처럼 먹을 수 있다.
4.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데워 먹을 예정이면 처음 굽는 시간을 줄인다.
5. 가지, 호박, 양파, 마늘 등 다양한 채소와 치즈 등을 얹어서 여러 종류의 포카치아를 만들 수 있다.
6. 토핑 없이 두툼하게 만들어서 반으로 슬라이스 한 뒤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절기에 맞춰 가기 위해 다음 화는 2주 후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