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이탈자

꼴통의 일대기

by 키도

“네가 첫찌 동생이냐?”


또 시작되었다.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았으나 애써 웃어본다.


“넵.”

“오메, 근디 이라고 부잡하다냐. 어~쩜 이렇게 첫찌랑 다르다니?”


참 많이 들은 말인데도 들을 때마다 아주 어색하게 구겨진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아 맞다, 이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저도 선생님 싫거덩여!


고슴도치같이 돋아난 사춘기의 예민함을 뚫고 들어오는 지겨운 비교 대상. 공부도 운동도 뭐든 잘하는데 모범생이기까지 한 언니를 둔 동생의 숙명이었다. 혈연·지연·학연 중 가장 단단한 결속이라는 '혈연'으로 묶인, 이름보다 더 일찍 붙여진 스티커는 ‘첫찌동생’이라는 수식어였다. 본품 1.5L 우유 옆에 붙어있는 증정용 250ml 우유같이 작은 동생. 괜히 청개구리 심보가 돋아나서 그래 어쩔! 어디 함 어디까지 삐뚤어져 볼까? 앙?! 하면서 선생님 뒤통수 방향으로 눈만 흘길 뿐이었다.


그럼 날 때부터 꼴통이었냐 굽쇼? 아, 물론 아닙니다. 나도 누구의 동생이라 불리기 이전에 우뚝 홀로 서 있었던 때가 있었다. 이름하여 만년 1등인 적이 있었다고 하면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어무니 왈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전성기 시절’이 있었다.


그날은 엄마가 우리를 키우던 중 놀랐던 순간 하나였던, 우리 집 둘찌의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첫 등교일이었다. 가방을 거실에 휙 던져두고 엄마 앞에 간 둘찌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은 ‘엄마, 선생님이 엄마 학교에 오래.’였다. 학기 첫날부터 우리 애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선생님이 학교에 오라고 하시나 싶어서 엄마는 순간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왜 오라고 하시냐 물으니 ‘반장 엄마니까 오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집 꼬맹이가 그런 데는 흥미도 없는 줄 알았더니 반장이라니? 엄마와 아빠는 놀라셨다가 다음날 반장 임명장을 위풍당당하게 들고 온 둘찌를 보며 기쁨 가득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좁다란 교실에서 선생님 다음의 권력자가 되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30여 명이 되는 고만고만한 꼬마들 중에 ‘야, 너네 조용히 해!’라고 외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감투를 써보니 뒤에 줄을 세운 채 선두에서 달린다는 것에 대한 짜릿함을 알게 되었다. 기왕 일인자의 자리에 올라갔으니 다른 것도 일등을 해보자는 욕심이 생겨 뭐든지 앞에 서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공부도 1등을 하게 되었다. 어린애가 승리에 취해버렸으니, 그 결과는 여러분이 예상했던 모습일 것이다. 성숙하지 못하게도 1등이 아니면 삑삑거리고 엉엉 울면서 집에 돌아가곤 했다. 이런 승부욕을 보고는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이 얘는 ‘ㅅ ㅑ대학교’에 가려나 부푼 기대를 하셨다고 한다.


자기애는 부족하나 자만함은 충만했던 유년기를 돌파하며 중학생이 되었다. 입시 분위기에 타오르는 때가 되자 슬슬 주변 친구들도 머리를 싸매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교실 게시판에 중간고사 성적을 줄 세운 결과지를 붙여뒀는데, 내가 아닌 다른 친구의 이름이 있었다. 쿠구궁 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주변 친구들이 말을 걸었지만, 물속에 들어간 듯 웅웅 거릴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성적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때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실 별거 아닌 평범한 존재라는 것을. 그러다가 도덕 시간에 배운 ‘공수래공수거’에서 이거다 싶었다. 어차피 다 가진 사람이라 한들 모두 죽으면 인생은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그럼 이렇게 애쓸 필요가 없네! 그렇게 중2병에 제대로 걸린 채 ‘인생 뭐 있냐 즐겨버리자’가 시작되었다.


사춘기라는 폭풍을 만나 나름의 득도를 거친 후에는 그야말로 신나게 놀았다. 여러 친구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천둥벌거숭이같이 놀고 학원도 시간 때우기 용으로 대충 다녔다. 처음으로 수학을 45점 맞아서 부모님께 보여드리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엄마가 충격받아서 쓰러질까 봐 우리 딸 성적표를 보지 않으셨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실 정도로 책가방을 내팽개쳤다. 시험기간에도 교과서 탐닉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문제집 사이에 끼워서 읽었다. 부모님의 기대에서 멀어지자, 성공과는 조금 멀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생겨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앞을 바라보게 되었다. 즐거움을 따르다 보니 장난기가 증폭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학교에서는 예전과 달리 공부 잘하는 범생이보다는 장난꾸러기로 이름을 날렸다.


처음에는 이런 망아지 같은 모습을 보신 부모님이 원래의 궤도로 인도해 주려고 하셨으나, 기가 찰 정도로 명확하게 예전처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입만 살아 있는’ 딸의 의견을 받아주셨다. 아니, 그냥 알아서 잘하겠지 라며 기대를 내려놓으셨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겠다. 그렇게 우리 집 둘째는 우리 집 행성 사람이 아닌 외계인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첫째와 셋째와는 달리 정석의 궤도에서 이탈해서 제 마음대로 삐뚤빼뚤 직선형 나선형 궤적을 그려나갔다.


고3 때 초 사이어인처럼 각성하여 머리카락을 세워가며 공부했다거나 하는 만화 같은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으니 딱 중간 정도, 노력한 정도의 대학교에 진학했다. 시골에서 천방지축 놀다가 ‘시’에 위치한 학교에 가니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 속에서 이제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시험 기간을 불태웠고, 1학년을 마칠 때 교직 이수 자격까지는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부전공은 무엇을 해볼지 고민하다가 인간이라는 생물이 재밌으니, 심리학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논리로 심리학과를 선택했다.


이상심리학 수업의 과제 중 ‘심리검사를 받고 후기 쓰기’가 있었다. 학교 내에 무료 심리상담센터가 있어서 다양한 심리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과제를 얼른 해치워버려야겠다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자아에 관한 검사 결과를 듣고 사뭇 진지해졌던 기억이 있다. 상담 선생님이 결과지를 보고 해석을 해 주셨는데, 학생은 비유하자면 야망의 본체와 사랑의 날개를 가진 것이라고 하셨다. 야망과 사랑이라니 좀처럼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라며, 살면서 충돌이 생기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릴 때는 무조건 내가 1등이야 하는 야망이 지배했다면, 중학생 이후로는 ‘아 몰라 그냥 놀 거야’하면서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를 두텁게 쌓아가며 사랑을 키워나간 것 같다. 상담 선생님께 결국은 사랑 쪽을 택할 거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체와 날개 성격이 상호 보완을 하며 안정화가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의 모습을 본 죽마고우들과 얘기하면 어느 기점부터 내 성격이 동글동글해졌다고 하는데, 삐쭉한 성격에 스스로 정을 때려서 동그란 구형에 가깝도록 다듬은 것 같다. 물론 잠들어있던 야망의 본체가 불쑥 고개를 내밀 때도 있다. 게임을 하거나 이것은 승부다 싶은 것이 있으면 갑자기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승부욕에 눈이 뒤집히기도 한다. 그래서 전 남자 친구와 재미로 시작한 보드게임을 하다가 져서 집에 가는 길에 성질이 났다고 발을 구르며 삐진 적도 있다. (미안, 아니 사실 안 미안!)


야망의 본체와 사랑의 날개를 가진 외계인은 오늘도 놀기 위해 살아간다. 불시착한 이 행성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해내기 위한 행복한 욕망을 곁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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