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香年華
푸른 잎처럼 변치 않는 청춘. 그리고 청춘에 둘러싸인 고귀한 은빛 향. 그대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영원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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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아버지는 집이 지어진 기념으로 마당에 은목서를 심으셨다. 우리 집안은 이곳에 터를 닦았고, 5남매를 키우셨다. 내가 아버지가 이곳에 터를 닦을 즈음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 은목서는 내 키보다 조금 모자란 크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무에 흰 꽃이 피었다. 초록 잎마다 올망졸망 피어난 작은 꽃은 마당에 햇빛이 내려앉으면 은빛으로 빛났다. 마당을 가득 채운 꽃향기는 여인의 숨결 같았다. 여인의 치맛자락에서, 목덜미에서 날 것 같은 달고 고운 향. 가볍지만은 않으면서 너무 무겁지도 않고, 싱긋한 과일 같으면서도 풀내가 섞인 향이 함께 풍겼다. 여느 꽃과 풀에서 맡아본 적 없는 정숙함을 가진 은목서가 첫 꽃을 피웠던 해는 내가 스무 살이 갓 넘은 나이였고, 그해에 아내와 결혼했다.
예전에는 신부의 얼굴을 결혼식 당일에야 알 수 있었다. 그때의 내 마음은 복권을 긁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당첨일지, 낙첨일지 두근대며 결과를 확인하는 마음이었다. 그 당시 결혼식은 신랑 신부만의 예식이라기보다는 동네잔치와 같은 분위기였다. 동네 사람이 다들 모여서 대문 밖까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윗마을에서 시집온 신부의 얼굴을 구경하려고 주렁주렁 담장에 매달려 까치발을 들었다. 나라고 달랐을까. 결혼 당사자이지만 체통을 지켜야 하니 대놓고 볼 수는 없었다. 두근대는 마음을 붙잡고 맞절하며 얼른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지곤지를 올리고 발그레한 얼굴을 원삼 소매에 폭 가리는 고운 선을 가진 얼굴이었다. 아내도 내가 궁금했는지 정면을 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혼례복 소매에 기대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이 집에서 우리의 계절은 시작되었다. 길 건너편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했던 나는 매일 아침 아내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출근했다. 코끝을 맴도는 쌀밥 냄새로 눈을 뜨면 어김없이 내 옆 이부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아내의 온기를 살피며 이불 속으로 고개를 묻었다. 포근한 이불 냄새, 옅게 풍기는 아내의 향기였다. 그렇게 잠이 덜 깬 채로 누워있으면 아내가 서방님- 하고 작은 목소리로 문밖에서 불렀다. 일부러 자는 척을 하면 아내가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왔다. 눈을 감고 있으니, 아내는 이리저리 내 얼굴을 살피다가 코끝에 손가락을 가만히 댔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놀라게 하면 그 큰 눈이 왕방울만 해지며 놀라게 하지 말라며 가슴팍을 쳐댔다. 이게 행복인가 싶었다.
가약을 맺은 지 한 해가 지나고 첫째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첫째가 태어나던 날에는 장마진 날이라 날씨가 좋지 않을 때였다. 처마에서 물줄기가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물줄기가 대지에 고이며 모든 것이 발비에 묻혔다. 빗소리만 자욱하게 들리는 틈에 아내는 연신 힘을 주었다. 문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차에 ‘응애’ 하며 터지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산파가 문을 열고 아들이오- 하며 주름진 웃음을 지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보니 아내가 진이 다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내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괜찮소, 물으니 아내도 나를 바라보며 괜찮아요, 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틈을 타 뒤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첫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와 셋째도 세상에 나왔다. 아이들은 비 온 뒤 죽순처럼 쑥쑥 자랐다. 매일이 삼형제가 북적이는 통에 집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마루를 연신 뛰어다니는 녀석들을 시끄럽다고 마당으로 쫓아내니 마당에 심어진 나무들을 올라타고 있었다. 이놈들 다치면 어떡하려고! 으름장을 놓으니 눈치가 뻔한 둘째가 얼른 도망갔다. 곰같이 둔한 첫째는 올라탄 나무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밖에서 소란이 생기자 안방 문을 열고 이노무 자슥들! 얼른 내려오지 못하냐는 아버지의 호령이 들렸고 첫째는 가지 위에서 허둥대다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가 마당에 심은 은목서의 큰 가지가 톡 부러졌고, 첫째도 지상에 불시착하듯 쿵 하고 떨어졌다.
악 소리 내며 떨어진 첫째를 둘러업고 정신없이 동네 의원으로 뛰어갔다. 부엌에서 뛰어나온 아내와 어머니도 첫째를 붙잡고 함께 달려갔다. 큰아이는 다리뼈가 부러졌는지 다리를 부여잡고 끙끙댔고, 어머니는 아이고 내 새끼 하며 첫 손주의 손을 잡아 주셨다. 진료가 끝나고 부러진 다리에 부목을 댄 채 돌아왔다.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첫째의 이마를 쥐어박으셨다. 그러시더니 저놈의 나무 때문에 우리 장손 불구 될뻔했네 하시고는 나무를 베어버릴까 보다 하셨다. 어머니는 엄한 나무한테 왜 그러시냐, 타박했다. 첫째의 다리와 함께 부러진 가지는 아버지의 으름장에 겁을 먹었는지 새잎을 틔우지 못했다.
아들이 셋이니 얼마나 사고들을 쳤는지, 그 얘기만 써도 1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여리고 수줍음이 많았던 아내도 세 아들을 키우다 보니 장군의 기운을 지니고 사령관처럼 녀셕들을 진두지휘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중 셋째와 3년 터울로 막내를 임신했다. 배가 산처럼 불러오자 삼 형제는 제 엄마를 부축하고 돕느라 온 정성을 다했다. 올망졸망 아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암탉과 병아리 같아 퍽 귀여웠다. 그리고 막내가 태어나던 날에는 마당의 은목서가 꽃을 피웠다. 백색 꽃이 떨어지고 마당에 은빛 융단이 깔렸다. 흰 강보에 둘러싸여 발그레한 볼을 가진 옥과 같이 고운 우리의 막내. 그 흐드러진 꽃 향과 함께 태어난 딸에게 ‘은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줄줄이 사탕 나의 똥강아지들은 어느새 자라서 학교에 갔다. 공부를 곧잘 하던 큰 녀석은 서울로 대학을 갔다. 코흘리개인 줄만 알았던 나머지 녀석들도 대학에 진학했고, 취직도 했다. 그렇게 집에 있는 방은 하나둘 주인을 잃었다. 그해 가을엔 대들보 같았던 아버지도 지병으로 작고하셨다. 삼일장을 지내고 선산에 아버지를 모신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안방 문을 열자 아버지가 태우시던 곰방대 냄새가 옅게 났다. 서재에서 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가 젊을 적에 쓰신 글이 나왔다. ‘한마디의 말과 행동에 조심하고 매사에 대비하라’는 문장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받들고 가훈으로 삼고자 액자에 끼워 거실에 걸어 두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두 해가 지났을 때 둘째 아이가 결혼하겠다고 웬 처자를 데리고 왔다.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니 우리 부부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집안 어른들이 첫째 장가보내기 전에 둘째 먼저 보내서 쓰겠냐고 하셨지만, 아내가 순서는 중요치 않고 어느 녀석이든 준비가 되었다면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한 녀석이 우리의 둥지를 떠나 날아갔다. 다른 자식들도 연이어 제 짝을 찾아 떠났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손주들이 모두 출가했을 때 서야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몸이 매우 편찮으셨는데, 막내딸 은서가 할머니 저 결혼하는 거 보셔야죠 아니면 서운해요 하는 말에 오냐 알겠다 하셨는데 그 약속을 지키고 가셨다.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모시고 돌아오던 날 첫째 손주를 품에 안고 아이처럼 흐느꼈다. 할아버지 왜 울어 하며 볼을 조물조물하고 닦아주던 손주의 말랑한 손길에도 어미를 잃은 상실감에 속절없이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 뒤 우리 부부는 안방으로 이부자리를 옮겼다. 부모님이 그러했듯 우리도 함께 이 집에서 자식을 키우고, 서로의 곁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안방에서 잠을 청하던 첫날에 아내는 내 손을 잡았다. 보드랍던 아내의 손이 세월을 타며 거칠어져 있었다. 그 가여운 손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날에는 오랜만에 꼬옥 손을 잡고 잠에 들었다. 다시 청춘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갓 칠순에 접어들자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짐을 정리하듯 기억을 지워갔다. 처음에는 집에서 쓰던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잊어버리더니, 이윽고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잊어버렸다. 건망증이라기엔 좀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데려가니 나이든 의사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치매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길, 아내는 좁다라한 손수건에 야윈 얼굴을 묻었다. 무릎 밑이 없어진 사람처럼 함께 주저앉았다. 아내가 흐느끼는 소리를 내자 울어서 뭐 하냐고 다그쳤다가 이내 마음이 약해져 아내를 안아주었다. 작은 몸이 흔들리며 섧게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무엇이든 기억하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의 시간은 그리 길게 남은 것 같지 않았으니까. 하나씩 기억을 더듬어가며 글을 써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아내는 어린아이처럼 배시시 웃다가 잠에 들었다. 그동안 아내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나도 아내를 돌보았다. 아내가 좋아하던 정원 가꾸기도 함께 했다. 그때만큼은 예전의 정숙하고 고운 모습이었다. ‘여보 이 나무는 혹시 내가 없더라도 잘 가꿔줘요’라며 은목서의 푸른 잎을 쓰다듬었다.
기억을 지워가는 병에 걸린 아내는 시간이 흐르자 점점 아이로 변하며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치매 판정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곡기도 끊고 몸이 가시처럼 말라갔다. 그러다 빚쟁이한테 쫓기는 사람처럼 서방님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해 첫서리가 내리던 날이었다. 마당의 은목서는 찬바람을 기다린 듯 꽃망울을 터트렸다. 찬 계절에 접어들었음에도 우리 집은 봄처럼 꽃향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이 집에 나만 남았다.
어느 날 한옥을 공부한다는 대학생이 찾아왔다. 동네에 유일하게 남은 전통 가옥이 궁금해서 인터뷰하고 싶다나.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인데 뭐라도 줘야지 싶어 서툰 솜씨로 차를 내어주었다. 마루에 걸터앉아서 이 집이 언제 생겼으며, 어떤 식으로 보수를 했는지 등을 알려주었다. 안경을 치켜올리며 열심히 받아 적던 학생이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은목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이 나무는 무슨 나무에요?”
“은목서, 은목서라는 나무여. 이거 100년은 됐을겨.”
“아~ 은목서구나 이게. 실제로는 처음보네요. 꽃을 피우면 향이 참 좋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시월이나 십일월이면 은처럼 하얀 꽃을 피워. 이 나무가 꽃을 피우면 만 리 밖까지 향기가 흐드러지게 퍼진다고. 담도 넘고 길도 넘어서 향이 온 동네에 퍼지고 그랬지. 이 나무를 사려고 누가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큰돈을 줄 테니 팔라고 하더구먼. 그런데 안 팔았어. 우리 집사람이 이 나무를 참 좋아했거든.”
“그럼 할아버지가 이 댁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내가 나고 자라서부터 살았으니까 꽤나 오래 되었겠지.
그런데 학생, 내 나이가 어찌 돼 보이누?
갸웃거리던 학생이 고민하다가 80대 아니시냐고 하니 너털웃음이 났다.
그래, 내가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긴 했지. 그 나이처럼 보이나 보네, 이제.
실수했다 싶었는지 학생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아직도 내 마음은 30대 청년 같은 걸 자네들은 알 런지 모르겠다.
숱한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이 나무처럼 나도 꽃피었던 시절이 있었다. 풍운의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하던 날, 아내를 처음 만나고 눈이 마주친 순간, 세 아들을 품에 안았고 금지옥엽 막내 딸까지 세상에 나왔던 날, 자식들을 짝지어 시집장가 보낸 날, 부모님을 떠나보내며 함께 모셨던 날.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이별한 날까지. 돌이켜보니 모두 꿈처럼 지나간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내가 늘 살뜰하게 돌보던 애정이 담긴 정원의 나무는 동네 입구에서도 보일 정도로 자랐다. 커다란 은목서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 부자가 찾아와 거금을 제시하며 이 돈을 줄 테니 나무를 팔라고 했다. 아내의 따뜻한 웃음과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긴 것을 팔 수는 없었기에 거절했다. 이 이야기가 동네에 알려진 이후로 우리 집은 ‘김씨네 기와집’이 아닌 ‘은목서 집’이 되었다. 찬 공기가 불어올 적이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은목서는 꽃을 피웠다. 마루에 걸터앉아 향기를 맡아본다. 그러면 예전처럼 아내가 곁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같이 있다 가지, 왜 이렇게 야속하게 떠났누. 뭐가 그리 급했어.
한낱 한 시에 같이 떠나지 못한 걸 보니 우리는 천생연분은 영판 아니었나 보네.
자네가 좋아하던 나무는 올해도 꽃 폈네.
이제는 앞도 잘 안뵈, 향기도 잘 안 맡아져.
자네 없으니까 재미가 없네. 올해는 유독 더 그래.
말동무할 친구도 없어지고 웃을 일이 없어지니까 사는 게 억지스럽네.
어찌저찌 하루가 가네, 매일 이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겠지.
이제 얼마 안 남은 듯 허이.
다시 함께 해줄란가.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게.
은목서 향이 만리까지 뻗는다면, 하늘까지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전에 잎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아끼던 은목서의 향과 함께 아내에게 닿기를 바라며 연서를 써 내려갔다. 이젠 전처럼 눈이 잘 보이질 않아 글 몇 자리 쓰려고 하면 돋보기를 코끝에 걸쳐야 했다. 늘 아내가 앉아 있던 마루 가운데에 걸터앉았다. 늘 아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있으면, 바람이 실려 올 적에 꽃향기가 담뿍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머무르던 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보았다. 그 자리에 하도 앉아 있어서 그런지, 다른 마루보다 더 번들번들했다. 눈을 감고 아내에게 나던 포근한 향을 돌이키려 눈을 감았다. 이제는 둔해진 코끝으로 기억을 돌이켜보려 애를 쓰다가 주름진 입꼬리만 꾹 다물게 되었다. 그래도, 혹시 전해질지 모르니 은목서 나무 아래 편지를 묻었다. 피그시 웃던 아내처럼 올해 꽃이 활짝 필때, 그윽한 향과 함께 아내에게 전해지길. 그게 안 된다면 꿈에라도 꽃길따라 찾아와주길.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았지만, 추억이 가득한 집과 계절마다 향기를 흩뿌리는 고운 나무는 곁에 있었다. 영원한 청춘처럼 사시사철 푸른 잎을 보여주며 변함없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 있었다.
올해도 가을과 겨울 사이를 서성이던 은목서는 그대처럼 정숙하고 고귀한 향을 피워낼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