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파편들

by 키도

추격

어디를 달려가는지 알 수도 없다. 바로 코앞까지 밀려드는 안개만이 자욱하다. 늪과 같은 땅바닥을 박차고 치달린다. 점점 더 시커먼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뿌옇고 기분 나쁜 습도의 공기를 폐 가장 안쪽까지 들이마시며 헐떡인다. 더 시커먼 존재가 쫓아오고 있다. 여섯 번째 감각이 온몸에서 소리친다. 죽기 싫으면 도망쳐!!!!!!

손에 잡히는 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느 피아노 학원이다. 건반 아래로 몸을 구겨 넣는다. 거친 숨소리가 새어나갈까 두 손으로 코와 입을 움켜쥔다. 두 눈도 질끈 감는다. 숨 쉬는 법을 잊었다고 생각해. 물속에서 아가미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최면을 걸어.

미처 매듭짓지 못한 호흡을 헙-터트렸다. 그러자 불한당 같은 시커먼 것이 들이닥쳤다.

여기 있었구나 하고 피아노 밑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어깨를 붙잡고 차가운 금속을 거침없이 심장에 내리꽂는다.

명치를 움켜쥐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속삭임

뱀의 혀를 가진 자가 말한다. 이리로 넘어오라고 달콤하게 유혹한다. 시건방진 녀석의 숨통을 끊기 위해 목을 쥐고 거칠게 밀어붙인다. 모래가 손아귀에서 벗어나듯 미끄러지며 빠져나간다. 나약한 존재는 결국 매혹되어 무릎을 꿇는다. 뜨거운 것을 흘리며 금단의 열매를 맛본다. 너무 달아서 입천장이 벗겨질 듯하다. 현실의 쾌락이 아니다.

노크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것이 내 공간으로 침입하려 하자 고작 할 수 있는 건 철문을 세차게 닫는 것뿐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네가 문을 두드린다. 찢어진 입으로 경계를 풀라는 듯 다정하게 인사한다. 교활한 것이 문을 열고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려 한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구겨진 표정으로 머리를 허공에 연신 쾅쾅 부딪힌다. 시뻘건 피가 뚝뚝 현관 앞에 떨어진다.

메시아

세상은 좀비의 신음으로 가득하다. 소수만이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정부에서 그들을 구출하여 본부에 모집했다. 이들이 들어서자, 인류의 마지막 등불이라며 찬양을 시작한다.

연구실로 안내를 받았다. 차디찬 철제 의자에 앉자, 연구원이 팔뚝의 혈관을 찾아내 채혈을 한다. 완벽한 항체를 가진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다며 연구원 모두가 손뼉 친다. 이 항체의 비밀을 풀어 인류를 구원하자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화학식을 내밀며 나보고 풀라고 들이밀었다. 이 문제는 당신만 풀 수 있다고. 그래서 말했다. 전 문과인데요...?

날개

박제가 된 천사를 아시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날개가 돋아났던 그 사람 말이오. 처음에는 지붕만큼 높이로 뛰어오르더니 한 번 더 발을 구르니 아파트만 하게 날아올랐단 말이오. 그러더니 구름을 가르고 타오르는 태양으로 뛰어들었소. 사람들이 입을 아로 그리며 멀어져 가는 그 거룩한 존재를 쳐다보았소. 이윽고 천사는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얼굴과 불붙은 날개를 달고 지상으로 추락했고, 인간들은 달려들어 천사의 깃털을 차지하고자 서로의 멱살을 잡으며 치고받았소. 천사의 등에서 타다만 날개를 모두 뽑아내자 새하얀 피가 대지 위로 쏟아졌다오. 저마다 손에는 천사의 깃털을 쥐고 기하학적인 미소를 지은 채 돌아갔소.

단발머리

서걱 서걱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밤하늘같이 검고 고운 머리칼은

땅바닥에 뭉텅 뭉텅 흩어진다

울지 마라 아가야

머리카락은 금방 자라잖니

근데요

왜 제 손가락까지 자르시는 거예요?

손가락도 자랄걸? 이건 꿈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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