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곳에 자라나는 그슨대
그슨대를 조심해야한다네
그 어둠 속에서 언제 잡아먹힐지 모른다네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가로등이 깜빡-깜빡거리며 골목을 밝힌다. 하루 중 어둠이 대지를 덮는 시간이 되면 그제야 의식이 돌아온다. 오늘도 불비 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눈을 떴다. 지금부터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아니, 사실 언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다. 처음 기억하는 것을 이야기해 보자면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밖에서 기척이 느껴져 나가보니 한 사내가 망태기에 무언가를 넣고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자 무언가에 이끌린 듯 내달려 사내의 뒤를 쫓았다. 비틀비틀 걷는 모습이 곧 논으로 곤두박질칠 듯 위태롭고 이상했다. 그 사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그림자 밑으로 숨자 찾지 못하고 갸웃거리다 계속 걸었다. 그 사내와 가까워지자 갑자기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느낀 본능, 이 힘은 통제할 수 없었다. 갑자기 그 사내보다 내 몸이 3배 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사내는 뒤를 돌아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사내를 덮치고 삼켰다. 몸속에서 꿈틀거리던 것이 멈췄다. 이것이 첫 사냥의 기억이다.
그러고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억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새로운 것도 익혔다. 사람의 모습을 따라 할 수 있어서 어느 날은 작은 인간의 모습이었다가, 큰 인간의 모습이 될 수 도 있었다. 조금씩 인간들의 말도 흉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밝은 낮에는 돌아다닐 수 없었다. 어느 집 처마 밑에 숨어있다가 낮에 눈이 떠졌다. 이상한 객기가 생겨 손 한쪽을 내밀었는데 타들어 갈 듯 고통스러웠다. 익숙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다시는 빛으로 나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녔다. 한곳에 머무르며 사냥했더니 인간들이 횃불을 들고 밤거리를 밝히며 그림자를 쫓아냈다. 인간들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알아챈 듯 두려워하며 경계했다. 어둠에서 자라난 것이,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 행세를 하고 다니며 잡아먹는다나. 그래서 저녁이 되어도 마을 전체가 불로 밝혀지며 혼자 다니는 사람이 없도록 삼삼오오 뭉쳐 다녔다. 저녁을 틈타 산을 넘어 그 마을을 떠났다.
새로운 마을에 도착했는데 작은 인간들이 골목에서 떠들고 있었다. 담벼락 그늘에 붙어 그 모습을 보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물기, 얼굴에는 작은 횃불을 켠 듯 발그레한 얼굴, 입안에 누렇고 하얗고 빛나는 네모진 것들. 뭐가 그리 신났는지 지들끼리 떠들며 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 자라나는 그슨대~ 그슨대를 조심해야한다네~ 그 어둠 속에서 언제 잡아먹힐지 모른다네~”
그슨대? 그슨대가 뭘까. 어둠 속에서 잡아먹는다는 것은 나를 얘기하는 걸까?
인간들이 나에게 이름을 붙여준 듯했다. 그슨대라고.
멀어져가는 작은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마주친 작은 인간 중 하나의 모습으로 변해보았다. 그 모습을 하고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이놈!! 종남아! 저녁에 돌아다니지 말랬지!”
갑자기 한 인간이 나타나 나를 찰싹하고 때렸다. 아까 만난 작은 인간들보다 큰 여자 인간이었다. 내 팔을 이끌고 계속해서 언성을 높이며 저녁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둥, 혼자 있지 말라는 둥 말소리를 쏟아내며 어디론가 끌고 갔다. 대문을 넘어 집 안으로 향했다.
“종남이 이제 오냐? 어여 발 씻고 들어와서 저녁 먹어!”
집 안의 문을 열고 남자 사람이 소리쳤다. 발이 뭔지, 씻는다는 건 뭔지 몰라서 멀뚱히 서 있다가 남자 사람이 소리친 곳으로 들어갔다. 인간들이 모여 있었다. 작은 불이 방 안에 켜져 있었다. 인간들이 둥그렇게 앉아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것을 먹고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따뜻한 분위기였다. 나도 그들을 따라 은색 기다란 것을 손에 쥐고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하얀 것을 떠서 입안으로 넣었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매요~ 저 왔어요! 밥 주이소~”
문밖에서 아까 작은 인간들 사이에 있던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서 나를 제외한 인간들의 눈이 모두 커다래졌다. 그들의 두 눈이 나를 향했다. 마지막으로 인간들이 먹던 하얀 그것을 푹 떠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입안에 무언가를 집어 넣어도 알 수 없는 배고픔이 느껴졌다. 통제 불가능한 감각이 다시 찾아왔다. 몸속에서 무언가 또 꿈틀대기 시작했다. 놀란 인간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내 몸은 그 방을 다 덮을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여자 인간의 몸이 떨리더니 두 눈에 물이 맺혔다. 그러더니 더 작은 여자 인간을 감싸안았다. 상관없다. 어차피 이 방에 있는 것들은 모두 잡아먹을 거니까. 그렇게 차례로 그 집 안의 인간을 모두 잡아먹었다. 다시 몸집이 작아진 후 방을 한번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반쯤 열린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어매요! 아배요! 오복아! 밥 먹다 말고 어디 간 거여요!!”
작은 인간이 소리치는 소리를 들으며 달려서 마을에서 가장 어두운 곳으로 몸을 숨겼다. 더 이상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인간들 사이에 숨어들어 그것들인 척 살아가다가 속에서 꿈틀거림이 느껴지면 인간들을 잡아먹었다. 수차례 마을을 옮겨 다녔다. 그 사이 인간들은 여러 모습으로 바뀌었다. 처음 인간세상에 나왔을 때는 모두 머리를 길다랗게 땋고 횃불을 들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도로에 전기라는 것이 들어오며 횃불이 아닌 것이 불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머리도 짧아졌다. 어느 날은 ‘대한독립 만세’ 하면서 온 마을 사람들이 소리치고 다녔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고서는 총을 들고 다니며 서로를 죽였다. 처음 듣는 말씨를 쓰는 인간들이 마을에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총을 들고 다니며 경계근무를 서는 것들을 잡아먹었다. 종간나 새끼가 우리 안에 있는 것 같다며 어떤 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소리치던 그놈도 변소를 가려고 홀로 나오길래 잡아먹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자 다시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 마을을 떠났다. 몇 개의 산을 넘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멀리 움직였고,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한밤중이라 마을은 조용했다. 이 정도면 나의 존재를 감추고 살 수 있겠다 싶어 마을 가운데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포대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벽에는 커다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인간들 무리에 숨어 여러 해를 살다 보니 인간들의 것을 더듬거리며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글도 작은 인간들처럼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창고 벽에는 ‘새마을운동’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창문 너머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창고 모서리 쪽으로 들어갔다. 어렴풋이 쌀 냄새가 느껴졌다. 마을을 넘어오기 전에 사냥을 많이 해둬서 그런지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며 기억이 흐려졌다.
끼익-
인기척이 느껴져 눈이 떠졌다. 벽에 뚫려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낮이 된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누가 들어왔는지 바라보았다. 작은 남자 인간이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밖에서는 ‘꼭-꼭-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작은 인간이 창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에 잡아먹은 건넛마을 작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작은 인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더니, 싱긋하고 웃었다.
“쉿!”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밖이 조용해졌다.
“넌 누구야? 여기 사는 거야?”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집이 아니라 창고인데? 너네 집이 여기라고?”
고개를 또 한 번 끄덕였다.
“그래? 그럼 너도 우리랑 같이 놀자! 밖에 친구들 있어. 지금쯤이면 술래가 숨은 친구들을 모두 찾아서 숨바꼭질도 끝났을 거야.”
숨바꼭질? 친구? 빛으로 가득한 지금 나가면 타들어 가는 듯 고통을 느낄 것이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럼 내가 좀 있다 저녁 먹고 놀러 올게. 그때 같이 놀자! 안녕!”
작은 인간이 손을 들고 열심히 흔들었다. 나도 그 모습을 따라 했다.
‘안녕-’
저녁이 되자 여기저기서 작은 인간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밥 먹자고 부르는 소리였다. 조금 기다리면 밥을 먹은 인간들이 잠에 들 테고, 그러면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이 마을에 들어오고 나서는 아직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으니 며칠 있다가 사냥해야겠다 생각했다.
끼익-
“야! 너 여기 있어?”
문이 열리더니 아까 만났던 작은 인간이 들어왔다. 구석에 있다가 얼른 고개를 내밀었다.
“왜 대답을 안 해~ 너 없는 줄 알고 놀랐잖아! 이거 봐. 내가 집에서 가져왔어.”
작은 인간이 불빛이 나오는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 끝에서 빛이 나왔다.
“우리 오늘 이걸로 같이 놀자. 내가 서울서 가져온 거야.”
쌀 포대 위에 빛이 나오는 길다란 막대를 올려두더니, 망태기같인 생긴 것을 열고 바닥에 쏟아냈다. 작고 네모난 것들이 쏟아졌다.
“이거 레고라는 거야. 본 적 있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삼촌이 미국서 사 온 거야. 이거 이렇게, 이르케 조립하고 노는 거래. 같이 해볼래?”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데 너 이름이 뭐야? 나는 최영민.”
“그…ㅅ은대.”
“너 말 할 수 있었구나! 너 이름이 은대? 이름이 은대야?”
“응.”
“은대야, 그럼 이거 가지고 우리 놀자. 너도 해볼래?”
고개를 끄덕이고 그 네모진 레고라는 것을 가지고 놀았다. 자동차 모양을 만들었다가, 집 모양을 만들었다가, 사람 모양을 만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작은 인간은 입이 길어지며 하아아-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눈에 물이 맺혔다. 그 모습을 나도 따라 하며 입을 길게 늘어뜨렸다.
“나 졸려서 이제 가야겠다. 내가 내일도 놀러 올게. 너 여기 있을 거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봐! 나 갈게! 안녕!”
아까 낮에 봤던 손을 휘젓는 몸짓을 했다. 그 모습도 따라 했다.
“아, 안녕!”
그 아이가 나가고 쌀 포대 위에 누웠다. 영민, 최영민. 작은 인간 사람과 레고라는 것을 가지고 놀았다. 영민이가 했던 표정 중 헤헤 웃는 모습을 따라 했다. 그리고 입으로는 슈웅~ 하며 자동차 레고를 만들었을 때 냈던 소리도 따라 했다. 나도 그 아이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다음 날 저녁이 되었다. 작은 인간 최영민은 오지 않았다. 밖에는 솨아아 하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몸속에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허기를 느끼며 창고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 그림자 밑에 숨어서 한참을 인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비가 오면 생~각 나는 그싸람~”
가까운 곳에서 인간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비를 막기 위해 커다란 우산을 들고 있는 인간이었다. 남자 인간이었다. 그 인간의 그림자 뒤에 숨었다.
“이상하네. 방금 시커먼 게 지나간 거 같은데?”
남자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몸이 그 남자 키를 훌쩍 넘어 가로등만큼 커졌다.
“으아아아아악!!!”
얼른 그것을 덮쳤다. 배고픔도 꿈틀거림도 사라졌다.
다음 날이 되자, 창고 밖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마을에 사는 김씨가 어제저녁에 돌아오질 않았다며, 그를 찾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그날 저녁이 되자 창고 문을 열고 최영민이 들어왔다.
“어제 못 와서 미안해. 비가 많이 오니까 작은어머니가 나가지 말라고 해서 못 왔어.”
최영민의 표정을 따라 했다. 가로로 입이 길어지는 것. 이게 웃는 얼굴이겠지?
“어제 김씨 아저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온 동네가 난리야. 그래서 오늘은 일찍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너 주려고 이거 챙겨왔어.”
하면서 네모난 것을 내밀었다.
“너 여기서 혼자 심심할 거 같아서. 이건 외국 사람이 쓴 동화책이래. 이모가 작년 생일에 선물해 주신 거야. 그럼 나 갈게. 안녕!”
최영민은 동화책이라는 것을 주고 창고를 나갔다. 창문에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영민이가 준 책을 열어보니, 글씨와 함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오데트 공주는 악마의 저주에 걸려 백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크프리트 왕자는 우연히 저주에 걸린 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오데트에게 저주를 건 악마는 자신의 딸을 왕자에게 보내 유혹하게 하고, 왕자는 그 유혹에 넘어가 악마의 딸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본 오데트 공주는 상처를 받고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러자 지크프리트 왕자가 나타나 오데트 공주를 구해주고, 사랑을 고백한다. 악마가 다시 나타나 자기 딸과의 결혼을 강요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두 사람은 춤을 추고 호수에 몸을 던진다. 그 순간 사랑의 힘으로 저주가 풀리고 악마는 사라지게 된다.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
저주? 그럼 어둠 속에 사는 나에게도 오데트 공주처럼 모습이 변하는 저주를 받은 걸까?
그런 거였음 좋겠다. 나도 밝은 낮에 나가서 놀고 싶다. 인간들처럼 낮에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따뜻한 집에서 자고 싶다. 둥글게 모여 앉아 연기가 나는 하얀 밥을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싶다. 나도 최영민네 집에 놀러 가고 싶다. 다시 레고를 가지고 같이 놀고 싶다. 그리고 최영민과 작은 인간들과 다 같이 숨바꼭질하고 싶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또다시 허기가 찾아왔다. 오늘은 비도 오지 않으니, 인간들이 좀 돌아다니겠지 싶어서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 그림자 밑에 숨어 있었다. 어제 사냥을 했기 때문인지 길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몸속에서 뭔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통제가 되지 않는 이 느낌이 싫다. 한참을 인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다 보니 산 너머로 해가 뜨려는 지 세상이 조금씩 밝아졌다. 어슴프른 새벽이 되자 곧 아침이 되겠다 싶어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끼익-
낡은 창고 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은대야! 나 왔어!”
배에선 여전히 무언가 꿈틀대고 있었다.
“은대야!”
배를 움켜쥐고 천천히 움직였다. 최영민은 나를 보자 싱긋 웃었다.
“나 내일 아침에 서울로 돌아가야해. 동네에 누가 없어졌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얼른 돌아오라고 하셨어.”
간다고? 최영민이 이 마을을 떠난다는 거지?
“인사하고 가려고 몰래 나왔어. 그리고 너한테 빌려준 책 받아 가려구. 다 읽었어?”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었지?”
“응.”
“오데트 공주가 너무 가여웠는데, 저주도 풀리고 행복해져서 다행이야.”
최영민의 목소리를 들으니 배 안에서 더욱 격렬하게 무언가 날뛰기 시작했다.
“참, 삼촌 기다리시겠다. 다음 방학 때 또 시골로 놀러 올게. 우리 그때 또 보자. 잘 지내! 안녕!”
최영민은 또다시 안녕이라는 말을 건넨 후 뒤돌아섰다.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움직임을 지배했다. 최영민의 그림자 뒤로 숨어들었다.
“은대야? 어디갔어?”
어제 읽은 동화에서 오데트 공주의 저주를 풀어주는 왕자님이 나왔다. 왕자님이 함께 어두운 호수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공주의 저주가 풀렸다. 작은 인간 최영민도 나의 왕자님이 되어 사람을 잡아먹고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는 나의 저주를 풀어줄 수 있을까?
“으..은대야? 너 은대지?”
최영민은 시커멓고 커다래진 내 모습을 보고 이름을 외쳤다. 그 맑은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아이의 두려움만큼이나 커다래진 내 몸이 창고를 암흑으로 가득 채웠다. 최영민의 눈에 물이 고여 있었다. 그 눈과 마주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는 힘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거칠게 최영민을 어둠 속으로 삼켰다. 그러자 꿈틀거림이 멈췄다.
“어둠속에 자라나는 그슨대- 그슨대를 조심해야 한다네- 그 어둠 속에서 언제 잡아먹힐지 모른다네”
작은 인간들이 예전에 불렀던 노래를 따라 했다.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내 세상 속에서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 왕자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다시 어둠 속에 혼자 남았다.
최영민이 나에게 했던 동작을 따라 했다.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말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