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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통증 없는 세상을 꿈꾸며

by 김운 Feb 27. 2025

어젯밤에 잠을 세 시간 밖에는 자지 못했다. 새벽 2시 반에 눈을 뜨고 뒤척이다가 더 이상 잠들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다. 밤이면 두세 번씩은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기 위해 애를 쓰다가 날을 새기 일쑤다. 이렇게 깊은 잠을 잘 수 없게 된 것은 등 통증 때문이다. 밤마다 통증이 덜한 곳을 찾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몸을 바꾸며 잠들기 위해 고통스러운 밤을 보낸다.  


등 통증은 누울 때만 생긴다. 누우면 등이 바닥에 닿고 몸의 압력이 등에 가해지면 점점 통증이 심해진다. 앉아있거나 서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가장 편안하게 누워 쉬어야 할 때 통증이 생기니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다. 몇 년 동안은 뭐 그러다가 없어지겠지 하였는데 점점 더 심해지더니 이제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아!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지? 이런 생각이 문뜩 들 때도 있다. 그런데 등 통증뿐이 아니다. 의자에 앉으면 엉덩이와 허벅지가 아파서 의자에 오래 앉을 수 없어 의자에 앉아 쉬는 것도 힘들고 책을 읽는 것도 어려워서 앉았다 서다를 반복하며 책을 보고 TV 시청을 하기도 한다. 가장 편한 자세는 서있는 자세인데 어디 종일 서있을 수가 있는가.


도대체 통증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몇 달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이 사고로 허리에 충격이 가해져 사진을 찍고 정밀 검사를 받게 되어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이제껏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노화현상쯤으로 여기고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려고 했는데 드디어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척추관협착증으로 인하여 척수 신경이 눌리고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나는 통증이었다. 


척추관협착증상이 심하여 수술을 권유한 의사도 있었지만 불과 몇 달 전에도 다른 수술을 하면서 몸에 칼을 대는 것이 얼마나 내 몸에게 몹쓸 짓인지 경험하였기에 수술은 피하기로 하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시술을 선택하여 눌린 신경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시술 후에도 통증은 전혀 변화가 없다. 단지 시술 전에 있었던 또 다른 증상인 걸음을 걷는데 불편함은 많이 줄어들었다. 신경에는 감각신경과 운동신경 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운동 신경은 많이 회복이 되었지만 감각신경은 손상을 입어 회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의 치료가 필요하였다. 다시 시술을 하기 위하여 10개월을 기다려 손상된 신경에 고주파 전자기파로 열을 전달하여 신경세포의 기능을 차단하고 통증전달을 강제로 억제하는 시술을 하였으나 효과를 볼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통증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태어날 때부터이다. 태어날 때부터 처음 맞이하는 의식은 통증으로 시작되고 죽는 날까지 함께 해야 하는 것도 통증이다. 수없이 다치고 아프고 통증을 느꼈고, 몸이 아플 때도 마음이 아플 때도 통증을 느꼈다. 통증은 내 인생을 따라다니며 함께 했지만 나는 통증이 왜 그토록 우리와 함께 해야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생활은 절제를 잃었다. 밤을 낮처럼 사용하고 욕망을 향해서 몸을 혹사시켰다. 나쁜 습관과 질서 없는 생활에 말을 하지 않는 몸은 속으로만 병들고 있었다. 간혹 통증이 신호를 보냈지만 그것을 보내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통증은 몸 곳곳에서 아우성치는데 또 다른 통증이 시작되었다. TV를 켜면 생기는 통증이다. 초등학생이 같은 학교 교사에게 희생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1년 전에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괴롭힘으로 삶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도 잇달아 일어났다. 제자를 사랑하지 않는 선생을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가르치는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학생이나 부모는 누구를 존중할 수 있을까? 존중과 존경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 아이들도 부모들도 ‘선생님’이라 부르는 말에는 존경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마음에 통증이 온다. 채널을 돌리면 불특정인을 상대로 사람들을 헤치겠다고 예고하는 글을 인터넷에 띄어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이를 실행하는 끔찍한 소식이 이어진다. 또 다른 채널에서도 무차별 흉기 난동이니 전쟁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내일은 또 무슨 일로 마음을 아프게 할까?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아픈 소리를 내고 마음에 통증이 늘어난다. 언제부터인지 뉴스 보는 것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아픔을 외면하면 통증은 잊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픔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통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감각이며, 통증을 피한다고 통증이 없어질 것도 아니고, 내 아픈 몸을 들여다보듯이 세상을 낱낱이 들여다보아야 하니 통증은 날로 심해질 수밖에 없다. 통증은 더 큰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예고하는 신호이며 손상된 신체나 마음을 회복하도록 보호하고 미래에 일어날 나쁜 상황을 대비하는 기능 한다. 


힘들고 괴롭지만 통증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설사 등에서 통증이 사라진다 해도 또 다른 통증은 언제든 찾아올 것이다. 세상을 보면서도 통증을 느껴야 한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건강하다는 뜻이 아닐까. 내 아픔만큼 타인의 아픔도 아파할 수 있다면 세상은 더 건강해질 것이다. 견디기 힘든 통증이지만 서로의 통증을 나누어야 한다. 고통스러운 통증은 죽음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통증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향하고 있으며 통증보다 더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라는 뜻일 것이다. 서로의 통증을 느끼며 몸과 마음과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 밤에도 통증은 찾아 올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통증 없이 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다. 통증 없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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