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은 가족의 밤이었다. 가족의 밤 참여는 처음 입주하면서부터 들었던 당부였다. 금요일 저녁에는 반드시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가족실에서 영화를 한편 본 다음 영화에 대한 후기를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가족 행사라고 했다. 물론 언니와 나는 좋아했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던 우리 자매의 동생이자 엄마 아빠의 아들은 굉장히 싫어했지만. 그때 본 영화 내용이 썩 기억에 남지 않는 것으로 보아 미국 부모님이 고른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때도 지금도 꿈과 희망이 가득한 디즈니를 선호하는 편이라 그 외 다른 장르의 영화에 흥미가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매주 금요일 밤이 좋았고, 나중에 내가 가정을 꾸리게 되면 나도 그런 규칙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장기에 필요한 가족 간의 사랑과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정적인 성인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들에게 평범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일상이 이어졌고, 미국 가족은 외출 시 나와 항상 동행했다. 친척집에서 열리는 생일파티, 할머니 집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등 각종 가족행사가 그랬다. 샐리의 부모님 소유의 아몬드농장과 포도농장도 구경시켜 주겠다며 데려갔었다. 뜨거운 태양아래 광활한 농장 부지는 서부영화에 나올 법 한 풍경이었다. 할아버지 농장에서 생산되는 아몬드는 품질이 너무 좋아서 알이 크고 고소한 아몬드를 양껏 먹을 수 있는 점이 너무나 좋았다. 프레즈노는 지역 특성상 여름이 굉장히 고온건조한 편이라 포도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나무에 매달린 채 건포도가 된다는 사실도 꽤나 놀라웠다. 용케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착 붙은 건포도는 태양열을 잔뜩 머금고 있었고, 뜨끈한 건포도를 먹는 것은 꽤나 매력적이었고 청포도를 말리면 더 맛있다는 것도 그날 알게 되었다. 건포도를 안 좋아하는 내게도 청포도 특유의 상큼함은 썩 괜찮게 느껴졌달까.
농장 투어가 끝나고 부엌에 둘러앉아 할머니가 만들어준 주키니파이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때 주키니파이가 너무 맛있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다음에 레시피를 알려주겠노라 약속했다. 이후 일정이 안 맞아서 만드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서로 짧게 마주칠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할머니는 내 손에 갓 구운 주키니파이를 들려주었다. 너는 특별하다고 손녀처럼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고 오히려 어쩌다 생겨버린 딸의 하숙생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순간적으로 두 번째 집주인이 나와 자기 조카를 맞은편에 앉혀두고 자기 아들의 밥숟가락에만 생선살을 발라 올려주며 너희는 이렇게 해줄 사람이 없어 안 됐다며 안타까워하던 어느 날의 기억이 떠올라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 여자를 만남으로 인해 샐리를 만나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저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