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적응기간이 끝나고 이모라는 사람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나는 그 집의 두 번째 신데렐라가 되었다. 내가 왜 두 번째냐면 그 동생이 첫 번째 신데렐라이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나와 본인의 조카를 있는 힘껏 부려먹었다. 좋은 집에 저렴하게 있게 해 줬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히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식사준비, 설거지, 본인의 쌍둥이 아들을 돌보는 일, 심지어 온 식구의 빨래를 개는 일까지 전부 우리의 몫이었다. 이런 얘기는 없었지 않느냐고 다그치자 그제야 동생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본인이 너무 힘들어서 같이 해줄 사람이 필요했노라고.
나는 내 부모님이 얼마를 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어린아이가 안타까운 마음 반,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부모님께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마음 반으로 집주인의 요구사항을 들어줬다. 어떻게 그렇게 끝없는 욕심을 가질 수 있는지 나날이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고, 지나친 하대에 존엄성에 금이 가면서 나의 내면은 점점 시들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첫 번째 신데렐라가 못 버티고 먼저 한국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나는 그 집의 유일무이한 신데렐라가 되어버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아주 다행스럽게 나의 구원자가 되어줄 샐리와 만나게 된다.
샐리는 이 집 아들들의 영어를 가르쳐주는 과외 선생님이었다. 쌍둥이의 수업 간식을 챙겨주는 과정에서 안면을 트게 되었고, 내가 수업에 관심을 보이니 쌍둥이의 과외가 끝나면 수업을 해줄 수 있다고 하여 나는 마지막 순서로 과외를 받게 되었다. 샐리의 겉모습은 새빨간 사과를 연상시켰다. 목선까지 오는 빨간색 단발머리는 항상 손질한 것처럼 컬이 풍성했고, 빨간 테의 안경을 쓰고 다녔으며, 스퀘어 쉐입으로 길게 연장한 손톱에는 버건디에 가까운 빨강이 풀 코트로 입혀져 있었다. 대체로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네일이었지만 간혹 그녀의 기분에 따라 자글자글한 펄이 추가되기도 했다. 샐리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나에게 과외 선생님 이상으로 위로와 조언을 건네주며 우리는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이 무렵 나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내 부모님이 집주인 여자에게 얼마를 지불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액수는 한화로 200만 원. 내 첫 번째 집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 금액이었으며 동네에 형성된 하숙 시세의 두 배를 웃도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큰돈을 받고도 나를 상주 도우미 취급하며 온갖 집안일을 시키고, 기본적인 라이드도 제공하지 않은 채 왕복 두 시간 거리의 학교를 혼자 걸어 다니게 했던 것이다. 심지어 두 달이 넘는 방학을 맞아 한국에 가려고 할 때,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비용을 줄 테니 딸을 보내달라고 하는 내 부모님에게 액수가 적다며 거절을 하고선 나에게는 부모님이 요청한 바가 없다고 하는 등 방학 월세를 받을 목적으로 나를 한국에 보내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나의 한국행이 불발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나는 스트레스성 탈모가 생기고, 거식증으로 체중이 39kg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속수무책으로 집주인의 횡포에 시달리던 내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샐리였다. 왜 이 긴 방학 동안 한국에 가지 않았는지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의 긴 대화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고 샐리는 크게 분노했다. 항상 인자한 미소가 서려있던 얼굴이 그렇게까지 단호해진 모습은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다. 이 악의 소굴에서 나를 구원하기로 마음먹은 샐리는 행정 절차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내가 재학 중이던 학교에 은밀하게 내 상황을 알려 보호자 변경 신청을 냈다. 본인 집의 방을 하나 꾸며서 첫 번째 집과 같은 가격에 1인실과 통학, 공항을 포함한 모든 라이드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학교를 통해 나의 보호자가 변경된 사실과 자기가 부려먹던 신데렐라가 호박마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알게 된 그 여자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사이 내 캐리어를 뒤져 여권과 비자서류를 훔치려다 실패하기도 하고, 학교 행정실에 전화해서 언성을 높여 욕을 하는 바람에 학교 측에서 나에게 그 여자의 정신질환이 의심된다며 위험하니 그 여자와 단둘이 있지 말라고 주의를 줄 정도였다. 다행히 그 여자의 성격적 문제에 대한 부분은 온 동네사람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었고,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나를 살피러 집에 찾아온 덕분에 물리적으로 피해 입는 일은 없었다.